작지만 운치있는 정자, 표현할 수 없는 기품 넘쳐
고려 문신 조승숙이 지은 교수정
▲ 교수정고려 말의 문신인 덕곡 조승숙 선생이 세웠다는 교수정 ⓒ 하주성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도로변에 커다란 노송 숲이 있다.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낮은 담에 둘러쌓인 고풍스러운 정자 하나. 고려 말기의 문신인 덕곡 조승숙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태조 7년인 1398년에 세운 교수정이다. 이곳에 정자를 세운지 600년이 넘었다.
▲ 교수정경남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도로변에 서 있다 ⓒ 하주성
▲ 교수정낮은 담장 안에 서 있는 교수정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76호이다. ⓒ 하주성
소나무 숲속에 선 교수정
교수정 주변은 소나무 숲이다. 지나는 길에도 고목으로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띤다. 낮은 담장을 둘러친 교수정은 정면 삼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집이다. 정자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안에 정자를 지은 이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지금이야 도로변이지만, 아마 이 정자를 처음 지었을 때는 주변이 숲이었을 것이다.
정자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있다. 뒤편에 있는 작은 능선을 생각해보면, 이 정자의 처음 모습이 떠오른다.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있는 산 밑, 냇가 곁에 이 정자를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의 아이들이 글을 배우러 오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선생은 일어서 미소를 띄우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을 것이다.
▲ 교수정정면 삼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집으로 지어진 교수정 ⓒ 하주성
▲ 방정자 한편 뒤편으로 몰아 드린 방 ⓒ 하주성
▲ 편액작은 정자에는 많은 편액들이 걸려있다 ⓒ 하주성
성종이 내린 사제문
교수정을 바라보면 좌측 뒤편에 방을 드렸다. 정자에 방을 놓을 때는 중앙에 놓거나, 아니면 뒤편 중앙에 놓는다. 그러나 교수정의 방은 뒤편 한 편으로 몰아놓았다. 정면으로 두 칸, 측면에 한 칸 방을 놓고 이곳에서 기거라도 했던 것일까? 방 앞에서 마을을 바라다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들녘이 시원하다.
여기저기 걸린 편액에서 이 정자의 모습을 본다. 밖으로 나와 냇가곁에 가니 비가 한 기 서 있다. 비에는 음각을 하고 붉게 칠을 한 글이 적혀있다.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이란 글이 있다. 이 글은 그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성종이 <사제문(賜祭文)>을 내렸는데, 그 중에서 뽑은 글귀라는 것이다.
▲ 비성종이 내린 하사문 중에서 뽑은 문구라고 한다 ⓒ 하주성
▲ 교수정어디서 보아도 교수정은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정자이다 ⓒ 하주성
비는 정자의 담 밖, 냇가 바위 위에 서 있다. 자연 암반 위에 세운 비를 보려고 내려가다가 발을 헛딛고 말았다. 그래도 겨우 비문을 찍고 돌아선다. 이 비 앞에서 보는 정자의 운치가 남다르다. 그래서 이곳에 비를 세운 것일까? 넘어지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또 다른 정자의 멋. 그래서 세상은 '새옹지마'라고 한 것일까?
정자를 한 바퀴 더 돌아본다. 참으로 작지만 풍취가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기품이 있다. 노송과 어우러진 작은 정자 하나.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까? 잘 정리가 된 주변이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일각문을 나서면서 뒤돌아보니,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하는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자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감흥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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