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3일 째, 10월 3일 일요일을 맞았다. 오늘은 우리 일행들이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각자 행동하기로 한 것이다.
나로서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너무 좋았다. 나에게는 역마살이 끼어 있는 듯하다. 집이라든지 건물 안에 있으면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그냥 쏘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피부에 와 닿는 찬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다. 오늘도 파리 시내를 지도하나 들고 나 혼자 쏘다닐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좋았다.
아침에 예배를 보기 위하여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6루블이다. 우리 돈으로 9천원 쯤 되니 우리 물가와 비교를 하면 무척 비싼 물가이다. 아들이 특별이 이곳에 가서 예배를 보라고 권유를 했기에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의 파리지부를 찾아서 갔다. 나는 처음에는 우리의 서울처럼 생각하고 굉장히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파리라는 도시가 우리의 서울보다는 굉장히 좁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택시 기본료이고 걸어 다닐 만한 거리였다.
그 곳에서 예배를 보고 나는 파리의 나그네가 되었다. 나는 그 날 특별한 목적도 없었다. 갈 곳도 없었다. 같이 간 일행 중에 나주의 박재후 화백 부녀가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를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퐁피두센터를 잘 들어 보지는 못했는데 박화백 말로는 퐁피두가 파리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라는 것이다. 루우브루 박물관은 주로 고전작품을 전시하고 퐁피두는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현대작가들의 경향을 알려면 퐁피두센터에 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너무 행복했다. 나는 이런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을 꿈꿨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백인들의 틈새에서 걷고 싶었다. 파리의 거리는 어제 밤에 비가 와서 길바닥이 촉촉하고 공기도 늦가을의 날씨처럼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파리도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싶다. 나는 세느강 남쪽에서 세느강을 건너 북에 있는 퐁피두센터를 가는 것이다. 파리지도를 보고 무작정 세느강 건너 퐁피두센터를 향하여 걷다보니 길옆에 웅장한 고색이 찬연한 고딕양식의 건물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그 건물 앞에 있어서 호기심으로 가 보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오래 된 성당쯤이나 되는 건물로 생각했었다. 무슨 건물인가 보려고 여기저기를 살폈더니 건물 벽에 "Ecole Sorvorne'라고 새겨 있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바로 여기가 그 유명한 프랑스의 소르본느대학이란다.
프랑스에 가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르본 캠퍼스에 가보고 싶었는데 오늘 우연하게 소르본 대학을 만난 것이다. 소르본 대학의 문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게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학 캠퍼스와는 달랐다. 문으로 살펴보니 운동장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한복판에 건물만 달랑 있었다. 파리의 13개로 이루어진 대학들 중 제4대학이라는 소르본 대학, 아름다운 켐퍼스와 젊은 파리 대학생들의 낭만이 있는 꿈의 대학 켐퍼스를 연상했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조금은 실망을 했다.
1253년에 신부 로베르트 소르몽에 의해 신학교로 창립되어 신학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소르본 대학,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중세의 고딕 건물에 운동장도 숲도 없는 삭막한 대학이다. 어떤 지식의 상아탑이라기보다는 마치 무서운 비밀을 간직한 크렘린 궁처럼 무섭게 철문이 내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봤는데 소르본 대학본부와 문과대학만 그 곳에 있고 나머지 단과대학은 파리 곳곳에 나눠져 있다고 했다.
지도를 보면서 서투른 영어로 물어가면서 퐁피두센터를 향하여 걸었다. 결국 세느강의 다리를 건넜다. 퐁피두센터 가까이 왔다.
거리의 귀퉁이에 웬 멀쩡한 녀석이 앉아서 모자에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반듯해서 보통거지는 아닌 것 같다. 호기심에 모자에 2달러짜리 동전을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무척 고마워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내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는데 지금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것이다. 벨기에에서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걸어서 파리까지 왔다나. 사진 좀 찍자고 하니 좋아라 하면서 포즈를 잡아 주었다. 그는 참 재밌는 서양 나그네였다.
이처럼 여행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는 재미다.
나로서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너무 좋았다. 나에게는 역마살이 끼어 있는 듯하다. 집이라든지 건물 안에 있으면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그냥 쏘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피부에 와 닿는 찬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다. 오늘도 파리 시내를 지도하나 들고 나 혼자 쏘다닐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좋았다.
그 곳에서 예배를 보고 나는 파리의 나그네가 되었다. 나는 그 날 특별한 목적도 없었다. 갈 곳도 없었다. 같이 간 일행 중에 나주의 박재후 화백 부녀가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를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퐁피두센터를 잘 들어 보지는 못했는데 박화백 말로는 퐁피두가 파리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라는 것이다. 루우브루 박물관은 주로 고전작품을 전시하고 퐁피두는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현대작가들의 경향을 알려면 퐁피두센터에 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너무 행복했다. 나는 이런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을 꿈꿨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백인들의 틈새에서 걷고 싶었다. 파리의 거리는 어제 밤에 비가 와서 길바닥이 촉촉하고 공기도 늦가을의 날씨처럼 조금은 차갑게 느껴졌다.
▲ 파리의 거리현대와 지난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 현대의 자동차가 주차되어진 거리를 지난시대의 마차가 달리고 있다 ⓒ 조갑환
파리도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듯싶다. 나는 세느강 남쪽에서 세느강을 건너 북에 있는 퐁피두센터를 가는 것이다. 파리지도를 보고 무작정 세느강 건너 퐁피두센터를 향하여 걷다보니 길옆에 웅장한 고색이 찬연한 고딕양식의 건물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그 건물 앞에 있어서 호기심으로 가 보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오래 된 성당쯤이나 되는 건물로 생각했었다. 무슨 건물인가 보려고 여기저기를 살폈더니 건물 벽에 "Ecole Sorvorne'라고 새겨 있지 않은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바로 여기가 그 유명한 프랑스의 소르본느대학이란다.
▲ 소르본느대학 정문마치 중세의 성당처럼 보인다. 미국식의 대학 켐퍼스를 상상했다가는 큰 실망이다. ⓒ 조갑환
프랑스에 가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르본 캠퍼스에 가보고 싶었는데 오늘 우연하게 소르본 대학을 만난 것이다. 소르본 대학의 문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게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학 캠퍼스와는 달랐다. 문으로 살펴보니 운동장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한복판에 건물만 달랑 있었다. 파리의 13개로 이루어진 대학들 중 제4대학이라는 소르본 대학, 아름다운 켐퍼스와 젊은 파리 대학생들의 낭만이 있는 꿈의 대학 켐퍼스를 연상했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조금은 실망을 했다.
1253년에 신부 로베르트 소르몽에 의해 신학교로 창립되어 신학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소르본 대학,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중세의 고딕 건물에 운동장도 숲도 없는 삭막한 대학이다. 어떤 지식의 상아탑이라기보다는 마치 무서운 비밀을 간직한 크렘린 궁처럼 무섭게 철문이 내려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봤는데 소르본 대학본부와 문과대학만 그 곳에 있고 나머지 단과대학은 파리 곳곳에 나눠져 있다고 했다.
지도를 보면서 서투른 영어로 물어가면서 퐁피두센터를 향하여 걸었다. 결국 세느강의 다리를 건넜다. 퐁피두센터 가까이 왔다.
거리의 귀퉁이에 웬 멀쩡한 녀석이 앉아서 모자에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반듯해서 보통거지는 아닌 것 같다. 호기심에 모자에 2달러짜리 동전을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무척 고마워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내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는데 지금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것이다. 벨기에에서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걸어서 파리까지 왔다나. 사진 좀 찍자고 하니 좋아라 하면서 포즈를 잡아 주었다. 그는 참 재밌는 서양 나그네였다.
▲ 퐁피두 센터 옆에서 만난 거지(?) 그는 거지가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유럽을 여행중인 무전여행가였다. ⓒ 조갑환
이처럼 여행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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