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행복 뒤에 불행, 불행 뒤에 행복...그게 삶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이 쓴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등록|2010.11.08 08:55 수정|2010.11.08 12:48

책겉그림<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 은행나무

얼마 전 '행복전도사'로 살아왔던 그녀가 생을 접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남이 모르는 남다른 고통이 그녀에게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코치해 줄 때에도 정작 자신은 더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육체가 주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까닭이었을까? 종교적인 참된 안위를 얻지 못한 까닭이었을까? 타인의 고통엔 함께 아파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고통을 나누는 일에는 회피하고 있었던 것일까?

고통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고통과 행복은 결코 홀로 오는 법이 없으니까. 고통을 겪은 자만이 행복의 진면목을 아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혼자서만 만족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자신의 소유와 상처와 삶을 더불어 나누는 데 달려 있다.

"현재 우리는 1950년대와 비교해 볼 때 세 배나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세 배로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나온 사회보고서에서도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나라 중 하나로 판명되었습니다."(362쪽)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이 쓴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에 들어 있는 일침이다. 행복은 부의 증식에 달려 있는 게 아님을 꼬집고 있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에 비해 더 좋은 집과 더 넓은 아파트가 많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동반상승한 건 결코 아니다.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라 해도 결코 다르지 않다.

독일인의 평균수명도 예전에는 34살에서 현재는 77세로 늘어났단다. 그렇지만 수명의 연장이 곧 행복의 연장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이지 않다. 자본증식과 수명연장과 환경개선이 행복의 절대적인 요건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지붕 세 가족 아래에 오순도순 살 때가 더 행복했다. 마른 떡 한 조각으로도 화목하며 살던 때가 참 행복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욕망의 불꽃>은 그 흐름을 잘 대비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이야기하는 걸까? 워런 버핏이 살고 있는 현재의 집도 1958년에 산 집이라고. 금메달이나 은메달을 목에 건 이들보다 동메달을 딴 이들이 더 행복하다고. 대저택에서 겪는 고독감을 키우기보다 작은 집에서 살가움을 맛보며 살라고. 유형의 소유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무형의 경험에 더 많이 투자하라고. 예컨대 여행과 같은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우정과 행복을 더 가득 쌓아가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짐승을 사육과 수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어렸을때부터 그네들을 그렇게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네들을 벗으로 대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였다. 헌데 개와 같은 짐승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교량역할을 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독일인 열 명 중 한 명이 자연광 결핍을 앓는다는데, 그들을 자연과 빛과 사람에게로 초대하는 역할을 그네들이라 한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사람들 가운데는 사후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내세의 신앙관을 지닌 이들이 대체로 그렇다. 개인적인 천국의 입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들이 그들이다. 헌데 이 책은 내세의 개인적 행복보다 현세의 남은 이들을 위해 더 많은 행복에 눈뜰 것을 종용한다. 장기기증과 같은 일을 통해 6명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베푸는 일이 그것이다.

아무쪼록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전도사로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행복은 홀로 그리고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행복은 유형의 소유보다 무형의 경험에 더 가득 쌓인다는 것도 잊지 말자.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며 산다면 그는 분명 행복한 자다. 그리고 그 삶을 더불어 나눈다면 그가 바로 '행복 전도사'일 것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