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좋다는데, 내 눈에는 영 징그럽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36] 고흥군 안남어촌체험마을에서 고흥군 도양읍까지
10월 23일(토)
정확히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이렇게 무리를 하는 이유는 안남마을에만 있는 신기한 돌을 볼 수 있다고 해서다. 돌이 쪼개져 두 개가 됐다가 다시 붙어 하나가 되었다는데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그 돌을 볼 수 있는 바닷가로 들어갈 수 없어, 늦어도 오전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자칫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일찌감치 서둘렀다. 해도 뜨지 않았다. '기적의 돌'을 보는데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기적의 돌은 엇석(단층역)으로 불린다. 돌멩이가 촘촘히 박힌 거대한 암석이 단층이 지면서 살짝 쪼개져 나간다. 그때 암석에 박힌 돌멩이들도 같이 쪼개진다. 그 암석이 땅 속 깊이 침강하면서 지하에서 엄청나게 뜨거운 열을 받는다. 그렇게 수백만 년이 지나는 사이 돌멩이들이 다시 붙는다. 그 암석이 다시 땅 위로 솟아나 사람들 앞에 엇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엇석이 있다는 해안 절벽 아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닷물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을 더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벽에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박혀 있다. 절벽이 중간 중간 세로로 단층이 져 있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절벽 아래에 쪼개진 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널려 있다. 하지만 엇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기적의 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수석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이 엇석을 닥치는 대로 채취해 갔다고 한다. 엇석을 보고 신기해하지 않을 사람들이 없다. 그 바람에 크게 엇나간 돌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깨졌다가 다시 붙은 게 확실해 보이는 돌 몇 개는 내 두 눈으로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본드로 붙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다. 수백만 년에 걸쳐 기적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이 이 기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몽돌해수욕장에만 가도 사람들이 몽돌을 가지고 나가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엇석은 몽돌 이상으로 보존 가치가 큰 돌이다. 더 이상 엇석이 사라지는 걸 방치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바위에 촘촘히 박힌 돌멩이들 ⓒ 성낙선
▲ 다시 붙은 흔적이 남아 있는 엇석 ⓒ 성낙선
저 놈들 끓여 먹으면 맛이 좋다고 하는데
안남마을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어제 하루 무리를 하지 않은 까닭인지, 오늘은 몸이 비교적 가볍다. 허리 통증도 크게 완화됐다. 여전히 원인을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조심을 했던 게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남마을을 떠난 이후로는 한동안 내륙을 달린다. 해안을 지나가는 도로가 거의 없어, 해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바로 그 길을 되돌아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상남리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도천리까지 직행한다. 어느새 고흥반도다. 고흥반도 역시 어마어마한 해안선 길이를 자랑한다.
고흥반도 해안을 돌아나가는 데 최소 4일은 걸릴 것이다. 반도 끝에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2개 섬이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다. 산 너머 산이 아니라 섬 너머 섬이다. 이제는 단번에 뭘 끝내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국도에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게 느긋한 여행을 즐기다 도일리의 한 포구에서 엄청난 수의 짱뚱어와 마주친다. 트럭 위에 욕조만한 고무대야가 세 개나 실려 있고, 그 대야마다 짱뚱어가 그득하다. 그런데 짱뚱어가 겨우 어른 엄지손가락만하다.
너무 크기가 작아 처음에는 짱뚱어 새끼인 줄 알았다. 아니란다. '깨짱뚱어'라고 이게 다 자란 거란다. 짱뚱어는 그물로 잡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 어떻게 이 많은 걸 다 잡았는지 물었다. 이맘때 물이 밀려들어올 때, 이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기 때문에 그물로 잡아 올린단다. 하여튼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이 짱뚱어로 추어탕을 끓이듯이 탕을 끓여 먹는다. 식당에 넘기면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일 년 내내 탕을 끓여 판다고 한다. 맛이 참 좋다는데 내 눈엔 도무지 식욕이 돋지를 않는다. 깨알 같은 두 눈이 하늘을 향해 오똑하게 솟아 있는 놈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지, 형제들 머리 위를 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 엄청난 수, 엄청난 양의 깨짱뚱어 ⓒ 성낙선
점심 무렵에 대전해변에 도착한다. 고흥반도를 한참을 달려왔는데 해변에 도착해서 보니까 바다 건너 코앞이 바로 오늘 아침에 출발한 안남마을이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대전해변을 떠나 풍류해변까지 가는 길에 길을 헤맨다. 그 바람에 다시 해안으로 다가가는데 산을 하나 넘는다. 조금 마음이 급해진다.
오후에 풍류해변에서 후릿그물 체험행사가 있다. 가능하면 행사가 진행되기 전에 도착해 호흡을 가다듬고 싶다. 하지만 풍류해변을 지나쳐 다시 되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지체한다. 결국 내가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후릿그물 체험행사가 끝난 뒤다. 아쉬운 마음에 해변 한쪽 갯바닥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체험객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제와 오늘에 이어 두 군데 어촌체험마을을 지나오면서, 요즘 어촌이 내가 평소 알고 있었는 어촌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서해에서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잦아, 어촌체험마을이 남해처럼 시끌벅적한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안남어촌체험마을과 풍류어촌체험마을에서 실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행사가 진행이 되는 걸 보면서, 어촌이 도시 사람들의 입맛만 만족시키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마음과 공허한 정신까지 살찌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해, 남해, 동해를 가릴 것 없이 가까운 해안 마을에서 다양한 어촌체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어촌체험에 바다 생물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그 마을의 특색에 맞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어촌체험마을(www.seantour.org)'과 '바다여행(www.seantour.com)'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재미있고 유익한 체험 정보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교육적인 목적의 '체험'을 즐기기 위한 행사라는 것이다. 물고기나 바지락을 잡는 행사가 있다고 해도 그 양이 대부분 체험을 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가는 게 좋겠다. 양에 연연하지 않으면 바닷가에 사는 갖가지 생물을 구경하고 직접 채집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 풍류어촌체험마을, 풍류해변에서 바지락을 줍는 아이들. ⓒ 성낙선
삼송 마을에서 세 번째 펑크가 났다
풍류해변을 지나서는 용동해변을 지나 도양읍까지 달려간다.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거리를 달려 왔다. 녹동선착장에 도착해 바다 건너 소록도를 건너다보는데 그 섬이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놀랐다. 수영에 자신만 있다면 충분히 헤엄쳐 건널 수도 있는 거리다. 그 소록도에 평생을 갇혀 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소록도 안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이용도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소록도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소록대교가 건설된 이후로 정작 소록 주민들의 육지 나들이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몸이 불편한 소록도 주민들이 인도가 없는 소록대교를 이용하는 게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목포 앞의 압해도도 그렇지만, 연륙교를 놓으면서 주민들이 오갈 수 있는 인도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송마을에서 세 번째 펑크가 났다. 날카롭게 갈린 철사 끝이 타이어를 뚫고 들어왔다. 가지 가지 물건이 펑크를 내고 있다. 펑크를 수리하고 있는 사이, 멀리 농로에서 트럭 한 대가 논으로 처박히는 광경을 목격한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게 보인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0km, 총 누적거리는 2662km다.
▲ 도양읍 녹동항. 멀리 보이는 다리가 소록대교. ⓒ 성낙선
▲ 길가에 '효열부' '효자' 비가 유난히 많이 서 있는 고흥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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