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제 도랑을 강으로 만드시려고요?

정부 '고향의 강 조성사업' 때문에 대전지역 진잠천 몸살

등록|2010.11.09 14:02 수정|2010.11.09 15:43
초등학생 시절 작은 도랑이나 개울가에서 족대를 들고 물고기를 세차게 몰며 고기를 잡던 기억이 난다. 작은 도랑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고기들이 살았는지! 족대에는 매번 고기들이 끌려왔었다. 물뱀이 걸려서 족대를 집어던지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던 기억도 아련하다.

고기잡는 기술이 늘어나면서, 미꾸라지를 잡아 시장에 팔아 개인적인 용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용돈을 넉넉히 탈수 없는 집안형편에 미꾸라지는 고마운 존재였다. 도둑고양이가 밤새 미꾸라지를 훔쳐먹는 바람에 아침에 통곡하며 울던 기억도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된 듯하다.

대전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고향에서 봤던 작은 도랑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이곳에 있는 갑천, 대전천, 유등천은 내가 고향서 보던 도랑에 비해 너무 크고 화려했기에 어렸을 적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하긴, 고향에 가도 작고 아름다웠던 도랑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보와 높은 제방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렵게 변해버렸다.

나는 4년 전 우연히 대전 지역 진잠천 답사를 했다. 진잠천을 답사하면서 고향의 도랑과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작고 아담하지만 많은 물고기와 수초들이 자라고 있어 어릴 적 고향에서 만난 도랑의 모습 딱 그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진잠천에 찾아가 족대질을 하곤 했다.

진잠천 상류의 모습저수로는 좁지만 수량이 적어 보이지는 않는다. 진잠천 주변 식생들이 잘 자라고 있으며 다양한 생명들이 물 속에 서식하고 있다. ⓒ 이경호




진잠천달뿌리풀 등이 넓게 서식한 진잠천은 아름다웠다. 이곳을 어떻게 정비하려고 하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 이경호

그런데, 최근 MB 정부가 <고향의 강 조성사업>을 들고 나왔다. 환경부 지방하천 살리기 사업을 국토부에서 가져가 진행하는 사업의 일환. 현재 15개의 지방하천을 선도사업으로 지정하여 실시설계 중이다. 전국 지방하천 230여 개로 이 사업을 확대할 경우 2조 8000억 원의 국비와 1조 8000억 원의 지방비 등 총 4조 6000억 원이 투자된다. 바로 이 선도사업 15개의 지방하천중에 대전의 진잠천이 포함돼 있다.

고향의 강 조성사업은 제목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강과 하천, 도랑의 정확한 개념이나 차이는 없지만 통념상 강이 제일 크고 다음이 하천, 다음에는 도랑의 형태다. 강이라는 개념은 일정한 규모를 가진 큰 하천을 부르는 것이다. 진잠천은 대전의 서쪽의 도안동과 봉명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갑천의 지류로 길이가 약 10km ,저수로 폭이 30m 남짓하는 작은 도랑이다.

강으로 불리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고향의 도랑'이라면 뭐를까 '고향의 강'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발상이란 말인가? 물가에서 도랑치고 가재를 잡을 수 있는 현재의 진잠천을 개발해 당으로 만들겠다니···.

진잠천 상류맑은 물에 하늘이 반사될 정도로 깨끗한 도랑의 모습. ⓒ 이경호


178억 원을 들여서 진잠천 상류 3.2km를 정비하는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은 38m 하천 단면을 60m로 확대하는 것이다. 하천유역을 넓히는 것은 어찌보면 좋은 사업이다. 하지만 정비중인 진잠천 하류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물이 많지 않은 진잠천에 저수로를 넓히는 것은 하천의 수량을 부족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사중인 진잠천고향의 강 조성사업의 미래 모습. 공사 전의 진잠천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듯 하다. ⓒ 이경호

현재 진잠천 하천폭이 좁기 때문에 진잠천에 맞는 양의 하천수가 흐르고 있었다. 저수로가 늘어나면 하천에 물이 없어지기 때문에 수량확보를 위해 시설물을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 보든 역펌핑이든 댐이든 인공시설물은 하천의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또한, 매년 비슷한 양의 하천수가 흐르던 진잠천의 생물들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 적응에 실패하면 멸종되고 말 것이다. 하천폭을 확보하는 것은 저수로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저수로 주변의 배후습지나 둔치 등을 확장하는 형태로 조성되는 게 맞다.
  

서남부 사업으로 공사중인 진잠천 하류진잠천 하류에서 '고향의 강 조성사업'이 진행중이다. ⓒ 이경호

4대강 사업으로 강을 호수로 만들더니, 이제는 도랑을 강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천을 무리하게 정비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사업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모든 하천의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실제 하천의 특성을 파악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 전 하천을 수 없이 돌아보고 느껴봐야한다. 지도보고 대충 그림 그리는 형태의 하천 개발은 하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지금처럼 급하게만 사업을 추진하고, 단순히 돈을 쓰기 위한 수단으로 하천을 바라본다면 대한민국에 하천의 미래는 없다.
덧붙이는 글 이경호 기자는 대전환경운동연합 소속 활동가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