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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SSM에서도 문제는 FTA야

[주장] 오는 11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ISD 독소조항 반드시 제거해야

등록|2010.11.08 17:47 수정|2010.11.08 17:47
근래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 상인단체에선 이례적으로 중앙부처와 국회 상황을 연일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른바 중소상인 보호법 개정안(유통산업발전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하나는 골목상권에서 대형유통기업의 거리제한을 두는 것이고(유통법) 또 하나는 탈법적으로 개업·운영되고 있는 SSM 가맹사업을 사업조정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이다(상생법).

애초에 전국 중소상인들은 대형유통기업에 대한 허가제 도입(유통법)과 사업조정제도의 전면적인 손질(상생법)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영국기업인 테스코 홈플러스와 영국정부의 통상압력에 굴복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단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좀 더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잠깐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첫 번째 장면. 2009년 10월 9일, 영국의 만델슨 장관(영국 기업혁신기술부)이 한국에 날아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을 앉혀 놓고 자국 유통기업인 테스코 홈플러스가 사업조정제도에 막혀 곤란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문을 신사적으로(?) 하고 돌아갔다. 뒤이어 영국은 테스코 홈플러스의 로비에 맞춰 상공부 장관 등을 앞세운 후 한-EU FTA 체결을 빌미로 한국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였다.

테스코 홈플러스의 통상압력 규탄 기자회견(영국대사관 앞) 전국중소상인대표단이 주한 영국대사관 앞에서 부당한 통상압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이승진



영국의 유통기업이 각종의 통상압력을 통해 한국의 골목상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야 제국주의 정책으로 약소국의 단물을 빨아 먹어본 그네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치자. 그러나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한국 정부가 '외국기업의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자국 중소상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영 납득하기가 어렵다. 여러분은 이러한 정부 태도가 이해되는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영국은 자국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거나 최소한 공멸을 늦추기 위해 각종의 규제를 실행중이다. 당사자인 테스코 역시 SSM 입점의 경우 사전에 지역 상인들과 충분한 협의와 토론을 갖는다. 한부모와 미혼모 우선 채용 등 지역 사회 기여에 대한 공헌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테스코는 자국에서 매장의 규모와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운영한다.

- 엑스트라(Extra/3000평) : 대형마트
- 슈퍼스토어(Superstore/500평) : 대형슈퍼
- 메트로(Metro/300평) : 중형슈퍼
- 익스프레스(Express/30~50평) : 소형슈퍼

두 번째 장면. 2010년 10월 6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한-EU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됐을 때 한국 중소상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부가 우리나라 유통기업이 프랑스 소매업에 진출하려면 해당 지역의 기존 매장 수와 이에 따른 영향, 인구밀도, 교통조건에 대한 영향, 새로운 고용창출을 고려해서 점포 개설을 규제한다는 협정문에 합의해줬기 때문이다. 국내 SSM에 대한 입점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고 주장해온 한국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는 통 크게 규제를 양허해준 것이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참고로 프랑스 파리에는 대형마트가 하나도 없다. 오직 지하철 종점 정도의 거리에 한두 개 들어와 있을 뿐이다. 이는 파리시가 지역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대형유통기업의 입점을 철저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어떠한가? 프랑스는 자치단체가 나서 직접규제를 하는데도 한국은 정부가 나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세 번째 장면. 2010년 10월 25일, 울산지역의 재래시장 상인들과 도소매 사업자들이 북구청 앞에 모여 상인대회를 개최했다. 미국의 창고형 유통기업인 코스트코(Costco) 입점을 막기 위해서다. 북구청장이 땅주인인 진장유통단지사업협동조합의 건축허가심의서를 반려하면서 행정심판이 제기되고 이후 행정소송까지 예고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과의 출혈경쟁으로 자고 나면 폐업이 줄을 잇고 있는데 여기에 창고형 할인매장까지 들어오면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절박함에서 마련한 자리다.

그런데 이러한 겉모습 뒤에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유명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독소조항이다. 예컨대 북구청과 상인들이 미국기업 코스트코 입점을 반대하면 여지없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걸려 고초를 겪어야 한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과 동시에 골목상권은 그야말로 초토화될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이를 '독소조항'으로 규정하고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양국은 이미 11월 8~9일 한미 통상장관회의를 통해 막바지 담판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몇 가지 장면들을 살펴보면 한국정부가 중소상인들을 얼마나 야만적으로 대하는지 알게 해준다. 대기업의 수출(어떤 이익이 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지만)을 위해서라면 나머지는 모두 희생해도 된다는 정부(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인식. 정말 몸서리쳐지는 현실이다. 잘 생각해보자.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유통법과 상생법을 국회가 당장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FTA가 체결되면 무용지물이다.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는 순간 외국계 유통기업들은 초법적 권한들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EU국가들도 미국의 지점이나 페이퍼 컴퍼니로 얼마든지 제소 가능).

한나라당사 앞 유통법 상생법 동시처리 요구 기자회견▲ 전국중소상인대표단이 서울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유통법과 상생법 동시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 이승진



그럼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집단은 어디일까? 그렇다. 바로 국내 대기업과 재벌기업들이다. 한국 정부는 외국기업에 대한 특혜를 핑계로 이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고 한다. 지금 이 상황대로라면 국내외 대형유통기업의 독과점화와 프랜차이징의 습격을 피할 도리가 없다.

지역 중소상인과 자영업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맞물리고 정부가 내주는 대출빚과 어정쩡한 지원정책에 휘둘려 세 가지 선택만을 앞에 두고 있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다. 이것이 한미 FTA와 한-EU FTA가 국회에서 비준될 경우 골목상권을 뒤덮을 중소상인들의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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