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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포즈가 아니다"

장편소설 <라이팅 클럽>(강영숙/자음과모음)

등록|2010.11.09 13:47 수정|2010.11.09 13:47

▲ 라이팅 클럽 ⓒ 자음과모음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자음과모음)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로 장편소설 <리나> 이후 4년 만에 낸 작품이다.

작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 타이피스트로 일하다가 1988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가 있으며 소설 <리나>로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피식~웃고 말았다. 이건 완전 나와 내 딸 이야기다. 글을 쓰는 엄마와 딸 이라는 점 때문에. 그리고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일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도. 오직 쓰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로 한 것 등... 우리 모녀 이야기였다.

무슨 일이든지 싫증을 빨리 내는 편인 내가 글쓰기만은 지치지 않고 외사랑으로 신열을 앓으면서 계속하고 있는 본질적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인자 속에 글쓰기 유전자가 들어 있었는지도. 성장소설의 성격을 띤 이 소설은 또 다시 다가온 11월에 신춘문예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과 글쓰기를 욕망하는 수많은 작가지망생들의 가슴을 또 한 번 울렁거리게 할 듯하다.

<라이팅 클럽>...그 엄마에 그 딸! 피는 못 속인다

이 소설은 글쓰기 아니면 죽음 그 자체인 두 모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영인은 엄마 김 작가와 계동글쓰기모임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면서 고교졸업 후 영어교재 판매, 차 심부름 등 마뜩찮은 직업을 전전하고 몇 번의 짝사랑과 연애와 동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하나 달랑 들고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이혼 경력까지 얻는다. 죽어라고 김 작가한테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죽어도 쓰리라고 다짐하던 영인은 일하고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를 읽으면서 글을 쓴다.

평생 작가지망생 김 작가. 생활엔 백치에 가깝고 글쓰기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병을 앓는 싱글맘이다. 서울 사대문 안쪽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은 글짓기교실을 열고 생계를 이어가는데 동네 꼬마들 드나들던 그곳이 계동주부글짓기교실로 변모한다. 정신병원에 뇌종양으로 입원하고서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김 작가는 기적적으로 퇴원, 늦깎이 작가로 문단에 데뷔한다.

영인은 아마추어들의 모임 라이팅 클럽을 연다. 엄마 김 작가를 이어 2대째 글짓기교실을 연 영인은 그 엄마에 그 딸임을 여실히 증명, 또 다른 김 작가를 예감케 한다. 두 모녀의 인생은 오직 글쓰기로 점철되어 있다. 글쓰기에 바쳐진 삶, 그 엄마의 그 딸이다.

소설로 쓴 글쓰기 교본?!

<라이팅 클럽>(강영숙/자음과모음)은 소설로 엮은 글쓰기 기법이다. 글쓰기 기법책이 이론으로 내용을 채운 것이라면, <라이팅 클럽>은 삶의 체험 현장이다. 길 위에서 배운 글쓰기다. 글쓰기 교재보다 더 생생한 체험 삶의 현장인 이 소설에는 보석처럼 글쓰기 기법이나 좋은 정보가 곳곳에 박혀 있다.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10) 사람들은 바보가 아냐. 소설을 쓸 때는 작가의 생각 따위는 아예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게 좋아."(p95) "학생은 왜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해?... 그래, 재미있어서 그래, 재미라는 게 뭘까? 아마 사람들이 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건 사람들 사는 모습이랑 소설이 제일 비슷하기 때문일 거야."(95) 등등 글쓰기를 위한 내용들로 온통 채워져 있다.

'설명하려 들지 말고 묘사를 하라' 하지만 묘사가 다가 아니다.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좋은 글, 좋은 소설이란, 묘사와 진술, 그 두 가지가 적절히 섞여야 한다.(160)' '묘사는 배워서 할 수 있어, 그러나 작가의 사고과정이 소설에 드러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구.'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갖으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p161)' 등 소설은 오직 글쓰기와 연관되어 있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소설이다.

소설 속 두 모녀를 통해 본 글쓰기, 쓰지 않음은 죽음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몸으로 자신의 생애를 올인시켜야 하는 육체노동이며 정신노동임을, 누구 못지않게 치열한 삶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시몬느 베이유가 하루를 바치는 노동자로 일하며 마른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에 불타 글을 쓰듯이, 김 작가도 영인도 늘 방안을 떠도는 흐릿한 연탄가스를 맡고 어지러움을 느끼는 아침이면 할머니 집에서 얻어온 동치미국물을 마시는' 어쩔 수 없는 가난 짊어지고 글쓰기로 계속 나아가듯이.

J작가의 말처럼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갖으려고 많은 대가를 치르고(p161)', 연애보다는 글쓰기를 선택하는 등 모든 생활 패턴이 글쓰기를 위한 모드로 바뀌어야 하고 쓰여 지지 않는 글을 붙잡고 소진하는 시간과 에너지... 이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 만만치 않은 삶과 마주하고 글쓰기냐 생업이냐 두 개의 추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그 괴리감을 맛보며 그 팽팽한 긴장을 견뎌야 한다. 외부적인 많은 악조건을 견디며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길이 나뉘어 진다. 글쓰기를 버리거나 껴안거나.

글쓰기는 '달팽이가 달팽이집'에 들어있는 것처럼, 삶을 떠날 수 없고 삶 속에 있다. 결국 삶 그 자체이다. 주인공 영인은 글을 쓰기 위해서 혼자만의 방이 필요했고 또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삶으로 걸어 나와야 했다.

김 작가는 삶 그 자체가 글쓰기만을 위한 것이었다. 뇌종양이라는 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서도 한 순간도 글쓰기를 놓지 않은 것처럼, 온 생애를 바친 글쓰기의 삶, 너무나 글을 쓰고 싶어서 죽을 수도 없었고 쓰지 않음은 곧 죽음이었다. 아직 작가로 등단하지 않았지만 일하며 글쓰기를 계속하는 영인, 글쓰기가 전부인 두 사람은 맨 몸으로 부딪혀 길 위에서 배운 글쓰기 수업이다. 인생은 포즈가 아니라고 누군가 그랬다. 글쓰기는 포즈가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치열한 삶이다.

글쓰기, 그것은 생애를 건 모험 

개인 블로그, 카페, 개인 홈페이지 등 다양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시대. 내남없이 글을 쓰는 요즘 세상에서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까. 전문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글을 쓴다는 정서가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 그 진정성을 다시 묻게 한다.

글쓰기는 곧 삶 그 자체이다. 글쓰기로 살기로 선택한 삶, 글쓰기에 올인하기로 한 삶의 방식이다. 해서 글쓰기는 그 어떤 노동 못지않게 치열한 전투장이다. 삶의 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고 광야에서 오체투지하듯 하는 삶, 맨 몸으로 헤딩하는 삶이다. 글은 그렇게 태어난다. 야생의 언어, 살아있는 언어, 깨어 있는 언어 말이다.

편안하게 글쓰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글쓰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이상하게 삶은 자꾸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들로 휘몰아갈 때가 있다. 그런 시간을 견디고 끝까지 글쓰기를 붙잡고 가느냐 마느냐 에서 길이 나뉘는 것 같다.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게 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 일 외에 다른 일에서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임신초기의 울렁증처럼 평생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도가 심해지면 바보가 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저 병을 앓는다."(p198)

그렇다. 글쓰기란 가장 돈 안 드는 하나의 취미나 포즈, 테크닉이 아니다. 생애를 건 모험이요 선택이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에게게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아직까지도 준비운동만 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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