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전세대란이 옥탑방까지 삼켜버렸다. ⓒ 오창균
며칠전, 동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옥탑방(1개) 전세가 3500만 원에 나왔다. 아파트 전세대란 여파가 옥탑방까지 닥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옥탑방이라고 하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올라가는 곳이 아니던가?
옥탑방 전단지의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중국교포였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전셋값을) 3200만 원으로 내렸다"면서 방이 크고 전철역과 가깝다며 위치까지 자세하게 일러준다. 계약이 만료되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300만 원 올린 것을 겨우 사정해서 자신의 전세금 만큼 다시 낮췄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날이 추워지기 전에 나도 빨리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집주인이 방이 나가야 돈을 준다고 해서 미치겠어요. 처음에는 월세로 나온 것을 전세로 했어요. 이렇게 안 나갈 줄 몰랐는데…. 방은 크고 좋아요. 일단 보러 오세요."
▲ 중국교포들이 밀집한 지역에는 중국간판이 더 많다. ⓒ 오창균
을씨년스러운 날씨만큼 거리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 저리 바람이 부는대로 날리고 있었다. 상가의 간판들이 한글보다는 무슨 뜻인지 모를 한자로 된 것들이 많아서 중국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동산 간판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지만 셔터가 내려진 채 '임대' 종이를 붙여놓은 곳만 연달아 찾는 낭패를 봤다. 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도 있었다. 버스정류장 한 켠에 붙은 작은 부동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난로를 쬐며 TV를 보고 있었다. 근방의 전·월세에 대해 물으면서 최근 전셋값도 물어봤다.
"전세 물량이 요새는 별로 없어요. 있어도 많이 올랐고 집 주인들은 월세를 좋아하지. 방2칸 짜리가 작은 것은 5000, 큰것은 6000~7000만 원 해. 월세는 보증금 1000/월 45~50만 원은 하지. 옥탑방 전세도 2500~3500은 줘야지."
그는 기록해둔 장부를 펼쳐 현재 나온 것들을 불러주며 요즘처럼 집값이 요동치는 경우는 부동산 일을 시작한 후로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 전에는 보증금 없는 월세방들이 넘쳐나서 당장에 급한 사람들이 한 달치 월세만 들고 찾아온 동네였단다. 얼마 전에도 일가족 세 명이 백만 원으로 방을 구하러 왔는데 그냥 보낸 것이 가슴 아팠다며 말끝을 흐렸다.
▲ 거래 물량이 줄어서 '임대'로 나온 문 닫은 중개업소. ⓒ 오창균
근처의 부동산에서도 물량은 적고, 값은 올랐다며 거래가 없어서 부동산도 문을 닫는 실정이라며 임대로 나온 부동산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아파트 전셋값 오른 것이 이 동네의 집값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고 했다.
같은 지역구이지만,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겉으로 보여지는 집만 보더라도 부의 격차가 커보이는 건너편으로 넘어왔다. 전철역에 연결된 백화점과 주상복합쇼핑몰, 아파트단지 언덕 아래의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한 곳에 있는 부동산에 들어갔다.
이곳도 전셋값이 많이 올랐으며, 그 원인을 아파트전세 폭등이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쏠리다 보니 공급 물량이 줄고 당연히 오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방 2칸짜리의 전세는 8000만 원~1억 원, 3칸짜리는 1억2000~1억4000만 원이라고 한다. 방의 크기는 60~73m²(18~22평) 정도이며, 근처의 아파트 전세는 80m²(24평)이 1억8000만원~2억 원으로 매매가의 70~80%라고 한다.
"여기는 역세권이고, 중국(교포) 사람들 거의 없어요. 있어도 단칸 월세지. 그들(수입)으로 여기서 못 살아요."
▲ 주변에 전철역과 아파트,쇼핑몰같은 편의시설이 인접한 곳은 더 많이 올랐다. ⓒ 오창균
건너편보다 집값이 비싼 이유에 대해서 인접한 전철역과 아파트의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내년 봄이면 물량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집값이 좀 떨어질 것으로 전망을 했지만, 인근의 다른 부동산에서는 오히려 봄에 값이 더 오른다며 그 이유로 아파트(전세)값이 더 오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보도를 슬슬 지피기 시작하고 같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한국의 부동산 신화에 언제나 등 터지는 것은 가난한 서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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