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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귀농은 금물,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인터뷰] 경남 창원 '좋은 예감' 강창국 대표

등록|2010.11.11 15:20 수정|2010.11.11 15:21

▲ 15년전 귀농해 억대 부농으로 일어선 다감농장 일터. ⓒ 임현철


"귀농, 참 힘들다."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살던 터전을 버리고 새롭게 둥지를 튼다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수입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귀농은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성공적인 귀농이 가능할까?

지난 6일, 귀농 후 경남 창원시 대산면에서 다감농장을 운영하며 영농조합법인 '좋은 예감' 대표를 맡고 있는 강창국(50)씨를 만났다. 강 대표는 연소득 300만 원이 전부인 귀농 길에 올라 연소득 2억여 원에 달하는 부농이 됐다. 다음은 강창국 대표와 인터뷰다.

▲ 백화점에 명품 단감으로 납품하는 '좋은예감'을 선보이는 강창국 대표. ⓒ 임현철


귀농, 할 일 없으면 농사짓는다? 이런 사람은 안 돼

- 자신에게 땅이란 어떤 의미인가?
"땅은 내가 살아 있을 때 빌려 쓰고 가는 공간이다. 내가 땅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건 농사짓기 편하기 위함이지만 빌려 쓰는 것이다. 지금은 2만여 평으로 늘었다."

- 귀농할 때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 거주할 것인가? 작목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등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선택한 품목이 그 지역 기후와 기온에 맞는지, 지역 특산물이나 연계 농산물, 각종 단체 등에 대한 정보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귀농한 사람을 만나 교육 받고, 실제 체험과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중요하다. 또 귀농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고, 정부가 귀농자에게 주는 보조금 500만 원까지 지원받으면 좋다. 귀농은 연령, 조건, 능력 등에 따라 그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귀농 후 1~2년은 벌이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귀농한다면 찬성인가, 반대인가?
"형편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직접 만나보고 '가능하다', '아니다'로 판단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농촌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사람은 찬성이다. 왜냐면 농사는 혼자서 일하기에 외롭다. 할 일 없으면 농사짓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안 된다. 농사는 엔터테인먼트가 돼야 견딜 수 있다."

- 귀농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건 무엇인가?
"먹고 살기 위한 귀농과 노후를 위한 귀농은 차이가 있다. 연금 등으로 생활비 50% 이상을 대처하고, 나머지는 농사에서 댈 생각이면 행복한 귀농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입을 농사에 의지한다면 쉽지 않다. 젊은 층의 귀농은 교육을, 노인층은 의료와 문화 등도 신경 써야 한다."

▲ 감에 대해 설명하는 강창국 대표. ⓒ 임현철


4500만 원 들고 귀농, 연 소득 2억여 원 달해

- 본인이 귀농한 이유는 무엇인가?
"15년 전 1995년에 귀농했다. 당시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집에 할머니, 어머니, 앞 못 보는 누나만 남아 어른을 모시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아내 반대도 없었다."

- 귀농 전 농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서울로 공부 유학을 했기에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귀농 전, 청주에 있는 부동산 토지평가사무소에서 일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지만 아무 것도 몰랐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다." 

- 얼마를 가지고 귀농했고, 현재 연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4500만 원을 들고 귀농했다. 귀농 후 처음에는 연 소득이 300여만 원에 불과했다. 2003년, 현대백화점에 감을 납품하면서 수입이 늘었다. 지금은 단감, 수박, 메론까지 백화점에 납품하면서 단감 와인, 감잎차 등도 만든다. 이것으로 인터넷 거래, 체험장 등을 운영한다. 매출은 총 5억여 원에 소득은 1억8000만 원이다. 빚은 3000만 원 있다."

- 대개 백화점 납품 후 반품으로 골치인데 이런 적은 없었는가?
"단감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메론은 몇 번 반품 당했다. 반품을 없애기 위해 납품 과정을 분업화, 전문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 귀농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모두가 힘들었던 기억이다. 아버지께서 남긴 땅 1080평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힘들어 두 손 들고 서울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 뒤 마음을 다잡고 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배울 곳조차 없었다. 그 때 단감연구소가 생겼다. 여기서 배우고, 연구하고 기술개발 등을 했다. 또 자연재해로 농작물 손실을 입을 때는 정말 막막했다."

- 지금은 농업 기술 배우는 여건이 어떤가?
"농사는 1~2년 지나면 웬만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3년 정도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여기저기 대학과 농업기술센터 등에서도 배울 기회도 있고,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 귀농에 대해 말하는 강창국 대표. ⓒ 임현철


막연한 귀농은 금물,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 농사짓는 어른들 보면 골병으로 고생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가?
"나도 골병 들었다. 내 경우 운동을 했는데도 한쪽 다리를 거의 못 쓴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고, 편안하게 쉰 날은 생각하건대 하루도 없다. 매일 일에 매달린다."

- 도시생활과 시골 생활의 차이는?
"도시는 남에게 관여 안하고 산다. 농촌은 옆 집 수저가 몇 개인지까지 안다. 이게 불편하다. 이는 계나 품앗이 등이 좋지 않게 발전한 측면이다. 이걸 좋게 성공적으로 적용한 게 영농조합이다. 왜냐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일하기 때문이다."

- 일상생활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고향이라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시골에서 귀농자를 모임에 끼워 주지 않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귀농자 70~80% 정도가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돈 못 버는 것보다 이런 게 견디기 힘들다. 달리 생각하면 농촌은 보수적이라 그런 것 같다. 농촌은 따뜻하다지만 외롭고, 도시는 삭막하다지만 외롭지 않은 아이러니가 있다."

- 텃세로 이해되는데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시골이 폐쇄적이라 그런 것 같다. 외부에서 온 사람은 비교적 똑똑해 마을에서 주도권을 행사할까 봐 경계하는 경향이다. 귀농자들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 귀농자에게 힘이 되는 조언을 한다면?
"지속적인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일에 임해야 한다. '어떻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된다'란 믿음이 중요하다. 또한 가장 이상적인 귀농은 여자가 농사짓고, 남자는 나가서 버는 게 좋다. 귀농에서 성공하려면 여자가 적극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막연한 귀농은 금물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천'과 농사를 짓기 위한 '귀농'은 구분된다. 귀농은 단계를 거쳐야 하고, 최소 자기 살 집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 또 농촌을 즐길 수 있고, 도시와 접목하는 능력이 있으면 더욱 좋다."

- 아내에게 한마디?
"항상 고생하고 힘들어도, 남편을 믿고 따라줘 고맙다."

▲ 강창국 대표의 다감농장에는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다음과 SBS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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