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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끝난 들녘에 웬 공룡알?

볏짚은 농토의 자양분이다

등록|2010.11.12 14:08 수정|2010.11.12 14:13
가을이 깊다. 늦가을의 서정이 쓸쓸하고 아름답다. 산야에는 나무들이 형형색색으로 채색되고, 성급한 나무들은 벌써 잎을 다 떨어뜨린 채 겨울을 채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린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기댈 곳을 찾아 헤매지만 빈들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과 마주칠 뿐이다.

10월 말까지만 해도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물결치던 농경지는 모두 수확을 끝내고 긴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빈 들녘 흑갈색의 논바닥에는 베어낸 벼 포기에서 푸른 움이 돋아 초원처럼 영롱하다.

농경지 여기저기에는 하얀 볏짚 곤포 사일리지가 공룡알처럼 신비롭다. 나락을 털어낸 볏짚을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여 곤포시킨 후 가축사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일리지를 만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볏짚을 대부분 논바닥에 깔아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는데, 세계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국제곡물가격과 사료가격 상승으로 축산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정부에서 새롭게 시책을 마련해 추진하면서 생겨났다.

곤포 사일리지 한 롤당 평균 600~800㎏라고 하니 사람의 힘으로는 옮기지도 못하고 중장비를 동원해야 한다. 최근 친환경농업이 확산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 살포량이 줄어들어 축산농가들이 선호하는 조사료(粗飼料)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사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그럴만도 하겠다. 사일리지 한 롤에 약간의 수입건초와 배합사료 등을 섞어 큰소 30~40마리 정도는 하루 동안 족히 먹일 수 있단다.

정부에서는 이 사업의 효과를 확인하고 볏짚 사일리지뿐만 아니라 청보리와 풋벼 등을 사료화 함으로써 비용도 절감하고 남아도는 보리와 쌀 문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탬을 주고 있다.

볏짚 곤포 사일리지 추수 끝난 빈 들에 흩어져 있는 볏짚 곤포 사일리지가 공룡알처럼 신비롭다. ⓒ blog.invil.org



예전에는 볏짚의 용도가 참으로 다양했던 것 같다. 특히나 초가에서는 겨울에 이엉을 엮어 만든 마름으로 새롭게 지붕을 개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였다. 이뿐 아니라 새끼, 가마니, 멍석 등 농경사회에서는 짚을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로 활용해 왔다. 그리고 남으면 일부 지방에서는 가축사료나 땔감 등으로도 활용했다.

어린시절 외양간 옆 두엄더미에는 지붕에서 걷어낸 썩은 이엉과 축분, 농산부산물이 섞여 부패하면서 퀴퀴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이것이 완전 부패하면 그보다 더 좋은 퇴비가 없다. 자연에서 거둔 것을 모두 그런 식으로 발효시켜 농경지로 돌려 줬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삶인가?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연순환농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볏짚을 사료화 한 이후 농경지는 자꾸 황폐화되어 간다. 논으로 돌아가야 할 볏짚이 모두 가축의 사료로 활용되다 보니 다시 농경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자꾸 인위적으로 만든 석회, 규산, 유기물 등을 투입하여 농토를 살리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노력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볏짚으로 만들어진 사일리지가 농토의 자양분을 빼앗아 축산농가의 부담을 덜어주는 샘이다.

2012년부터 축산분뇨의 해양투기가 금지됨에 따라 정부에서는 그동안 먼 바다에 버렸던 소와 돼지의 똥을 액비로 만들어 활용하고자 많은 재정을 투입하여 축산분뇨 자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볏짚이 비료가 되어 농토로 돌아가는 양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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