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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총리를 스탈린주의자로 만들었다"

[해외리포트] 호주 언론, 길라드 총리인형 복장오류에 분통...서울시 해명도 논란

등록|2010.11.12 16:43 수정|2010.11.13 13:09

▲ 서울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등축제에 전시된 줄리아 길라드 총리 인형이 오스트리아 의상을 입어서 호주 언론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 쿠리어메일


'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의 인형에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힌 소동 때문에 호주 언론이 이틀째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번처럼 호주 신문방송이 서울발 기사를 대대적으로 다룬 사례는 흔치 않다.

첫 보도가 나간 어제(11일)만 해도 간혹 발생할 수 있을 수 있는 소동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특히 TV와 라디오 진행자들은 해당 기사를 재미난 해외토픽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며 웃어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2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 정체성에 관한 한국의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길라드 총리 인형의 복장이 알프스 여성에서 수녀(nun)와 스탈린주의자 사무원(Stalinist officer)의 중간쯤으로 보이게 바꾸어놓았다"고 보도했다.

한편 12일 아침, 호주국영 abc-TV '블랙퍼스트' 프로그램은 "<디 오스트레일리안>이 이틀 연속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고 해당 지면을 화면에 비춰주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 원인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을 뒤늦게 알게 된 서울시가 해명했으나 오히려 서울시 해명이 혹을 하나 더 붙인 격이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1일 서울시청 관광과 관계자는 "10일 의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오스트리아와 호주를 혼동한 것은 아니다. 호주의 역사가 짧아 전통의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뭇잎으로 만든 옷이 전통의상으로 알고 있는데 총리에게 그 옷을 입힐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오스트리아와 호주가 같은 유럽권이라 생각해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다"며 다소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호주 언론 못지않게 한인동포들도 분통 터트려

▲ 서울시는 길라드 총리 인형의 복장을 급히 바꾸었으나, 이번엔 '스탈린주의자' 같다는 힐난을 듣고 있다. ⓒ 시드니모닝헤럴드


"이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호주 국민은 G20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울 G20'을 확실하게 홍보한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호주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미안하고 창피한지..."

"외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헷갈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시드니에만 1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데..."

앞은 호주 한인동포 이원준(47)씨의 반응이고, 뒤는 현지인 브렌다 루이스(62)의 반응이다. 이렇듯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인한테는 안타깝고 씁쓸한 하루였고, 호주 언론은 이틀 연속 비아냥거리는 분위기였다.

반면에 한인동포 김아무개(71)씨는 호주 언론의 호들갑이 못내 섭섭한 듯 "호주에 오래 살았지만 이렇게 한국 뉴스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예는 흔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호주 방문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호주 언론이 이럴 수 있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구글 탓이 아니다"라는 댓글도 달려

▲ 호주 백인 남성의 전통복장 ⓒ 호주관광청

11일자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아마 구글(Google)에서 정보를 얻어서 오스트리아 옷을 입힌 것으로 보이는데, 호주 국민들은 옷도 옷이지만 길라드 총리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강머리가 아닌 것도 크게 아쉬워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구글 검색이 거론되자 한 독자는 "구글을 잘못 검색한 탓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혼동하는 사례는 많다. 마치 호주인들이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를 혼동하듯이"라는 댓글을 달아놓았다.

한편 11일자 <쿠리어메일>은 말콤 파 기자의 서울발 기사를 통해서 "요들송 콘테스트에 출전한 여성이 호주 국기를 들고 있는 형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한 독자는 "도대체 어떤 스타일이 호주 전통의상인가? 그런 게 있기나 한가?"라고 반문했다.

이렇듯 호주에서도 두 나라에서의 국명에서 오는 혼동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호주의 전통복장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 연유로 2007년 시드니에서 열렸던 아펙(APEC) 정상회의 당시 "각국 정상들에게 어떤 형태의 호주 의상을 입힐 것인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호주 전통의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주인 대부분은 개척시기에 야생말을 잡아서 조련한 목동들의 옷을 전통의상으로 여긴다. 마치 쇠가죽으로 만든 비옷처럼 생겼는데, 이 복장은 '호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밴조 페터슨의 시 '스노위강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Snowy River)'에 나오는 남자들이 입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호주 전통의상으로 늘 입는 옷이고, 2007년 아펙 정상회의 당시에도 각국 정상들이 이 옷을 입었다. 일부에서는 너무 투박하고 칙칙하다는 비판을 하지만 호주인의 강인한 정신력이 담겼다는 이유로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열릴 당시에는 호주 중고등학교에서 "왜 이 나라를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부르게 됐나?"를 가르쳤다. 그걸 학생들에게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외신기자들에게도 적극 홍보했으면 오늘 같은 혼란은 줄었을 것이다.

▲ 2007년 APEC 정상회담에서 존 하워드 총리(왼쪽)가 입은 호주 전통의상. ⓒ APEC웹사이트


왜 오스트레일리아와 호주로 이름 붙였을까?

호주의 정식 국가 명칭은 호주 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다. 라틴어 '테라 아우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에서 유래됐다. 테라는 '땅'이라는 뜻이고 아우스트랄리스는 '남쪽'을 뜻한다. 호주가 오랫동안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티나(남쪽에 있는 미지의 땅)'으로 불린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계몽주의와 함께 근대가 열리던 시기였던 1770년, 영국 국적의 쿡 선장이 호주 대륙을 발견한 다음 조지 3세의 식민지로 선포해서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그후 1788년에는 11척의 선단에 실려 온 죄수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주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네덜란드인이었다. 그들은 '新네덜란드(New Holland)'라고 부르면서, 뉴질랜드를 포함한 대양주 일대의 섬들을 통틀어서 '남쪽의 땅(Terra Australis)라고 일컬었다. 나중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그걸 차용해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나라 이름을 정한 것.

한편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濠洲)라는 한자로 표기하는 이유는 19세기 초의 중국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호태랄리' 발음했기 때문이다. 그 첫 자인 호(濠)에다가 땅을 뜻하는 주(洲)를 붙여서 호주라고 부르게 된 것.

▲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습니다'라고 써붙인 오스트리아 쇼윈도우. ⓒ .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와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을 일으키는 유럽국가 오스트리아(Austria)는 왜 그런 국명을 갖게 됐을까? 독어로 오스트리아는 '동쪽의 왕국'을 의미하는 Österreich다. 독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두 나라를 헷갈리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서양 부인과 함께 귀국하면서부터로 추측된다. 프렌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태생인데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오해하여 '호주댁(濠洲宅)'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이런 혼동은 오스트리아에서도 발생한다고 한다. 해외관광을 주로 소개하는 호주 TV프로그램이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다"라고 쓴 홍보물을 소개한 것. 오스트리아를 찾아오는 일부 관광객들이 호주와 혼동하면서 "캥거루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기 때문이라고 리포터는 전했다.

11일에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막됐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서울 회의에서 뾰족한 방책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뿐만 아니라 "G20 서울 정상회의가 미국과 중국이 담판을 벌이는 G2 정상회의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사진만 찍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도 간간이 들려오고.

더욱 안타까운 건 호주 국민 대부분이 G20 정상회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 길라드 총리 인형의 옷 소동이 아니었으면 G20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힘들게 'G20 서울'을 준비한 한국으로서는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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