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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제주도 살린 은인들, 여기 다 있수다"

[2010 제주올레 걷기 축제] 올레 축제를 빛내는 주인공들

등록|2010.11.13 11:37 수정|2010.11.13 11:54

▲ 세계 유명 트레일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산과 들,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트레일 코스는 제주올레가 유일하다"고 극찬했다. ⓒ 이주빈



길을 연 지 3년. 제주올레는 이제 누구도 부인 못할 한국 도보여행의 대표가 됐다. 그동안 축적된 힘으로 제주올레는 올해 처음 '제주올레 걷기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13일까지, 하지만 제주올레를 찾는 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번 축제를 통해 제주올레는 세계 유명 트레일(도보여행길)로 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코츠월드 웨이(영국)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일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축제를 주관하고 있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는 12일 현재까지 올레꾼 약 5000명이 참여했고, 축제 마지막 날인 13일에는 올레꾼 약 3000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처음 열린 축제에 연인원 약 8000명이 참가하는 대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 축제를 이렇게 빛내고 있는 주인공들은 누굴까.

제주올레 축제를 빛내고 있는 으뜸 주인공은 제주도의 빼어난 풍광이다. 걷기 축제에 참석하러 온 외국 도보여행자들은 "산과 들과 바다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트레일 코스는 세계적으로 제주올레가 유일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봉긋하게 오른 오름과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바다. 돌담을 따라 바다로 난 길을 걸으면 제주바람이 살포시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는 망막한 바다. 한눈에 반하고, 걸으며 반하고, 추억하며 반하게 되는 길이 바로 제주올레다. 

바다에 미쳐, 바람에 미쳐... 제주 올레에 미친 사람들

▲ 거리공연에 나선 제주도 성산포 주민들과 제주오름민속무용단원들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함께 <감수광>을 부르며 거리공연을 자축하고 있다. ⓒ 이주빈


올레축제를 빛내고 있는 두 번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제주도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마을마다 올레꾼을 위한 간이천막을 치고 먹을거리 등을 팔거나 길을 안내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직접 공연판까지 벌이며 제주 민속노래 등을 들려주고 있다.

성산 일출봉이 지척인 한도만 무대에서 난타공연을 한 강형년(성산포·65) 할머니는 "북이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두드린다"고 농담하며 "스트레스 풀어서 좋고, 스트레스 푸니 집안 화목해서 좋고, 이렇게 제주 알리는 축제에 나와 공연해서 좋으니 일석삼조"라고 자랑했다.

고정의(63) 할머니도 "이 나이에 난타하며 제주도 홍보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냐"며 "다른 사람들은 하기 힘든 좋은 경험을 제주올레 축제를 통해 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처음 하는 축제여서 몇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는데 오히려 마을주민들이 '처음 하는 일이니 괜찮다'고 하신다"며 "마을 주민들께서 열심히 준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축제 3일 동안 내내 울고 다녔다"고 감동을 고백했다.

올레축제를 빛내고 있는 세 번째 주인공은 1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올레코스에서 길을 안내하거나 올레꾼들의 참가 접수를 받는 일 등을 하고 있다. 특히 제주올레 축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거리공연도 공연을 자청한 30개 팀 300여 명의 출연자들이 하고 있다.

▲ 올레 걷기 축제의 거리공연을 총연출하고 있는 정도연 감독. 공연연출 십년 경력의 베테랑인 그가 총감독을 자청해 '아날로그적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이주빈


올레 걷기 축제 공연을 총괄하고 있는 정도연 감독은 공연연출만 10년 넘게 해온 베테랑이다. 정 감독 역시 올레를 걸어본 뒤 공연감독을 자청했다. 정 감독은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제주도의 속살 같은 공연을 보며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공연을 테마로 잡았다"며 "제주바람이 소리가 되고, 제주도 풍경이 무대가 되고, 햇살이 조명이 되는 아날로그적 그림을 연출하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제주오름민속무용단 최길복 단장도 단원들과 함께 거리공연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최 단장은 "저나 우리 단원들은 공연을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작은 행복을 느끼지만 제주도를 찾는 올레꾼들은 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레 축제를 빛내고 있는 네 번째 주인공은 수많은 올레꾼들이다. 축제 기간에만 약 8000명의 올레꾼이 제주올레를 걸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천안에서 온 조규상(7) 어린이도 올레축제를 빛내고 있는 당당한 주인공.

조 어린이는 "아빠와 함께 여섯 살 때부터 올레를 걸었다"면서 만만치 않은 올레 이력을 소개했다. 조 어린이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반주 삼아 즉석 춤 공연을 선보여 지나는 올레꾼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택시기사도 칭찬했다, "죽어가는 제주도 살렸다"

▲ 일곱 살 조규상 어린이가 올레길을 걷다가 쉬는 시간에 춤 실력을 뽐내고 있다. ⓒ 이주빈


제주올레 축제를 빛내고 있는 마지막 주인공은 올레길을 내고, 올레축제를 연 이들이다. 다름 아닌 서명숙 이사장을 비롯한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람들이다. 한 택시기사의 말을 빌리면 이들은 "죽어가는 제주도를 살린 제주도의 은인들"이다.

이들이 낸 올레길엔 연일 관광버스들이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걷기 코스가 관광 코스가 돼버린 것이다. 외지 자본이 만든 호화 리조트에서 자며, 빌린 차로 안에서 제주도 풍경만 보고 스쳤던 외지인들. 그들이 이젠 제주도를 두 발로 걸으며, 마을에서 민박하고, 마을 식당에서 국수 먹으며, 골목가게에서 생수를 사고, 다리가 아프면 동네 택시를 부른다. 제주도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택시기사의 말처럼 제주경제 살리기에도 제주올레가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다. 이보다 더 큰 무형의 공헌은 제주관광 트렌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보기 좋은 경치도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나 '놀멍(놀면서) 쉬멍(쉬면서) 걸으멍(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그때의 나를 찾기 위해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라도 제주올레를 다시 찾기 마련이다.

서 이사장이 "제주도 섬 문화를 연구한다는 한 중년남자가 찾아와서 '제주도 식물들이 서 이사장에게 부친 편지'라고 주더라"라며 편지를 살짝 공개했다.

편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동안 제주도 꽃과 나무, 풀들은 이름 있어도 이름 없는 존재로 무시와 외면을 받고 서럽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올레길이 열리고 나서 사람들이 천천히 걸으며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 제주올레길에 쏟은 사랑과 정성으로 잊힌 우리가 다시 기억되고 잊힌 제주도가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주의 나무, 꽃과 돌, 바위와 파도가 이렇게 고마워하며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편지를 읽는 서 이사장의 눈에 이슬이 스쳤다.

▲ 제주 주민들은 서명숙 이사장을 한가족처럼 대했다. 서 이사장이 "어렵게 공연을 준비했는데 관객이 적어서 어쩌냐"고 위로하자 주민들은 "이사장님 오셨으면 됐지요"라고 답할 정도였다. 난타공연을 한 성산읍 난타동아리 소속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서 이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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