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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의 노숙인, 담배 한갑 놓고 왔습니다

은행나무에게 띄우는 엽서

등록|2010.11.15 17:33 수정|2010.11.15 17:33
가로수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나고 있는 은행나무에게 너무도 궁금한 것이 있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털 있는 동물들도 겨울이 오기 전에 털갈이를 하고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 대비합니다. 은행나무 당신보다는 삶에 대한 마인드가 많이 부족한 인간이지만은 저도 역시 겨울이 되면 나름 준비를 하지요. 사람이고 동물이고 간에 겨울이 오면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벅차 난리를 칩니다만 은행나무 당신께서는 어찌 겨울이 오기 전에 은근한 노란 불꽃으로 입고 있던 옷을 태워 버리는지요. 저는 참으로 그 깊은 뜻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궁금했으나 이제야 용기를 내어 여쭈어 봅니다. 한겨울의 길고도 매서운 추위를 견디어낼 수 있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푸릇해질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바라건대 매서운 한파에 못 견디어할 저와 불쌍한 이웃들을 위하여 돈수백배하고 귀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추위에 움츠린 쓸쓸한 인간들을 생각하시어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 ⓒ 조상연


이른 아침 출근길 놀이터에서 라면상자를 덮고 누워계신 분을 보니 그 옆에 서서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처럼 그리 추위를 못 느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노숙인이 안 계셨는데 웬일인지 모르겠다. 주머니에 있던 담배 한 갑 꺼내놓고 오는 일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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