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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만찬주 들던 순간, 당신 죽음은 묻혔지요

700만원과 바꾼 당신 목숨... 매월 학자금 갚을 때마다 기억하렵니다

등록|2010.11.16 12:52 수정|2010.11.16 15:25

▲ 지난 12일 G20 특별 만찬 및 문화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만찬주로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지난 12일. 한 공기업에서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마음 한켠이 내내 먹먹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퇴근 후 그간 쌓아놓은 그릇들을 씻어놓고 밀려있던 빨래까지 탁탁 털어 널었지만 개운치가 않다. 혼자 늦은 저녁을 먹으며 보는 TV에서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며칠 지난 인터넷 기사만이 맴돌고 있었다. 대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G20 열리던 때, 700만원 때문에 세상 등진 한 청년

여대생 학자금 못 갚아 자살

모 대학교에 휴학중인 21살 여대생이 학자금 700만원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오다가 이것도 여의치 않아 직장을 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학자금 원리금 납입이 수 회 밀려 심한 심적고통을 받다가 끝내 목을 매 숨져...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어 자살로 추정.

미안하고도 슬픈 현실이지만 작년, 올해 계속되는 사람들의 '자살' 소식에 이제는 그 충격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학자금 700만 원'이라는 기사 내용은 무뎌지고 있던 나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하나는,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삶을 놓아버린 그 친구에 대한 원망이었고,
하나는,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21살 청년을 보내버린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학자금 대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나도 4년제 대학을 다니면서 생활비 포함 학자금 대출을 총 2800만 원이나 받았다. 한 달에 최고 60만 원에 달하는 원리금 상환을 위해 졸업도 하기 전에 무작정 알바부터 시작해야 했다. 졸업도 안한 나에게 정규직 일자리는 면접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심적 고통', 빚져 본 사람만이 안다. 공부하는 학생임에도 원리금 상환이 하루만 지나도 빚쟁이 취급을 당한다. 만약 한 달이라도 연체될라치면 '신용불량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가해진다.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당해 본 사람만 안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아르바이트로도 학자금 대출 빚이 감당 안 돼 직장을 구하려고 몇 번이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감당했던 그녀가 마지막까지 느꼈을 심적고통을.

학자금 상환할 때마다 그녀를 기억하렵니다

▲ 이명박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이 낙제점이라고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퍼포먼스 모습. ⓒ 권우성


그런데 이 사회는 그녀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났던 날마저 시작도 안 한 'G20 정상회의'에 대해서만 열을 높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청년들의 자살과 학자금대출, 취업대란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책마련도 너무 중요한데 그저 일상적인 사건사고로 여겨지는 것만 같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현 정부가 대학등록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며 자신있게 '대학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를 발표한 게 언제라고 학자금 700만 원 때문에 졸업도 안 한 21살 학생이 자살을 택해야 하는지, 취업대란에서 '눈높이'가 아닌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청년 자살률이 왜 점점 증가하고 있는지. G20에만 눈이 팔려있던 이 사회는 그렇게 한 청년의 죽음을 묻어 버렸고 사람들은 그녀를 잊어 버리고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년유니온'은 지난 두 달간 서울과 인천 등 각지에서 청년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했다. 청년들의 절반이 빚을 지고 있었고 다시 그들 중 절반이 1000만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고 답했다. 빚을 진 가장 큰 이유는 '학자금'이었다. 그 무슨 경제효과가 수백조, 수십조라는 회의가 끝나고 나서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나? 그 수십조, 수백조의 경제효과가 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 그녀에게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이 세상에 없어도 그녀의 학자금 빚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세상에 나는 남아있다. 2014년 8월은 내가 진 학자금 빚 상환이 모두 끝나는 때이다. 아마도 최소한 그때까지라도 난 매달 학자금 융자 빚을 갚을 때마다 그녀가 생각날 것이다. 그것이 잊혀져가는 그녀를 내가 기억하는 방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지혜 기자는 청년유니온 기획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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