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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바친 멋진 금반지...니가 있어 가능했다

[2010 나만의 특종] 오마이뉴스를 만나서 행복했어요

등록|2010.11.17 19:34 수정|2010.11.18 11:32
올 한해는 평생 잊지 못 할 한해였음이 분명하다. 사람을 얻은 해였기 때문이다. 상큼하고 싱그럽다 못해 너무 시어서 앙하고 오만상이 일그러지는 처자 하나와 고로롱거리는 중간치 노인네 한분을 얻었다.

상큼한 처자는 다름이 아니라 씨가 다르고 배가 다른 누이 하나를 얻었는데 엉덩이 실룩거리며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가슴은 풋풋해진다. 다만 항상 물가에 내어놓은 것처럼 어떤 녀석이 함부로 몹쓸 짓할까보아 쓸데없는 걱정이 대단하다. 이다음에 내 장례식에서 유일하게 맥주를 대접받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배다른 누이 얘기는 이쯤 해두자. 왜? 아내가 질투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분이 바로 고로롱 선생인데 글의 문맥상 편하게 '선배님'이라고 칭한다. 사람은 살면서 몇 번의 기회가 오지만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고로롱 선생, 아니 선배님은 내게 찾아온 기회를 포착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신 분이다.

9월초였던가? 선배님 느닷없이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란다. 응? 내가 무슨 신문기자도 아닌데 무슨 기사를 쓰냐며 깔깔거리며 웃었더니 종 주먹질을 해대신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보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왜 기사 안 쓰느냐는 재촉전화다. 내가 쓰는 글들은 그저 개인의 일기장에나 씀직한 그런 글들임을 잘 알기에 이번에는 내 쪽에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만 해놓고 또 보름이 흘렀다. 어라! 이 양반이 이번에는 직접 찾아오셨다.

▲ 오마이뉴스 상암동 본사 ⓒ 조상연


▲ 오마이뉴스 사무실 풍경 ⓒ 조상연


자리에 앉자마자 오마이뉴스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대강 이렇다. 사회적 이슈를 이슈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사를 바탕으로 사회를 아름답게 정화 시키겠다, 또한 사람 사는 모습이 사람답게 보이도록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부정부패 등등 도덕적 가치기준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히 파헤쳐 엄히 다스리겠다는 것이 <오마이뉴스>의 대표 오연호씨의 말이고 지금껏 보아왔을 때 크게 어긋남이 없다, 기사 중에 '사는이야기' 쪽에 비중이 보이는 것만 봐도 다른 신문과는 차별이 많다. 이외에도 오마이뉴스와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 된 점을 한참이나 말씀을 하셨는데 일일이 열거를 하자니 글이 길어질 것만 같아 그만두련다.

어쨌든 선배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내 글이 무슨?" 반신반의하면서 2010년 10월 7일 '깜장고무신의 칸타타'라는 제목으로 첫 기사를 송고했다(송고라는 말을 사용하니 왠지 근사해 보인다).

기사라고 하지만 에세이 형식의 일기 같은 글이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보니 '사는이야기' 메인면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신기했다. 그 뒤로도 하루에 하나씩 기사를 보냈는데 연달아 행운이 따랐다. 10월12일에는 '애비 죽으면 노래방기계를 갖다 놓거라'라는 기사가 메인에 실리고 주간지에도 실리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는 '10월의 뉴스게릴라'에 선정이 됐으며 '엄지짱'에도 당선이 되는 행운과 영광도 뒤따랐다. 암튼 10월7일부터 11월16일까지 오마이뉴스 입성 40일 만에 쉽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겪은 것 같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님기획*르포기사공모전 시상식에서 인사말씀. ⓒ 조상연


▲ 르포기사 시상식 ⓒ 조상연


16일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창간 10주년 기념 기획-르포기사공모전 시상식이 있었다. 편집부에서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참석을 했는데 응? 내가 뽑힌 '이달의 뉴스게릴라'는 상패나 상장도 없다. 에이, 딸들한테는 상 타러 간다고 큰소리 치고 나왔는데 빈손으로 들어가려니 뻘쭘했다. 좌담회를 하는데 내 인사 차례가 왔다. 일단 두 다리 건너 옆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주었다. 나 좀 찍어달라는 얘기다.

"안녕하십니까? 조상연이라고 합니다. 제가 사실은 뭐라도 줄 줄 알고 목욕재계까지 하고 온 사람인데 아무 것도 없네요. 해서 딸내미들에게 보여줄 인증샷이라도 찍어야겠습니다. 저 좀 열심히 찍어주십시오."

장내는 웃음이 돌았고 덕분에 분위기는 환해졌다.

"저는 정치에는 실망을 너무 많이 해서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오마이뉴스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보편적 철학과 도덕적 내용이 담긴 사는 이야기의 사람 냄새나는 글들이 많이 실려서 일선의 학교 선생님들이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자재로 선택이 될 만큼 발전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상패도 안주고해서 인사말은 짧게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시상식 후에 단체사진 ⓒ 조상연


조상연 기자.상패 안줬다고 삐졌음. ⓒ 조상연


이상이 오마이뉴스 40일간의 경험이다. 잠깐 어제 있었던 아내와의 대화 한토막..

아내가 사진관을 놀러왔다. 마침 워드로 <오마이뉴스>에 보낼 기사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춥다며 뜨거운 물을 한 컵 가지고 와서 옆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일은 안하고 뭘 그렇게 장난만 치냐고 타박이다. 한마디 해줬다.

"기록은 망각과의 투쟁이라는 말 몰라?"
"뜨거운 물 확 끼얹는다."
"아이~ 사람 참! 왜 그래?"
"기껏 사람 만들어 놓았더니 내 앞에서 문자 써?"
"아니 그게 아니구..."
"카드나 내놔! 친구가 놀러왔네."
"당신 보여줄게 있는데 오마이뉴스 원고료 많이 모았다. ㅎㅎ"
"얼마나 되는데? 그 돈 뭐 할 거야?"
"당신 반지 선물하려고!"
"응? 이제야 사람 만들어 놓은 보람이 있네."
"..."
"당신은 내가 사람 만들어 놓은 거 잊으면 안 돼!"

아내의 마지막 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도 생각 없이 막말할까봐 가끔은 겁이 난다. 나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오마이뉴스> 40일 동안에 모아놓은 원고료 가지고 아내에게 멋진 알이 들어간 금반지를 기념으로 선물했음은 물론이다. <오마이뉴스> 원고료 통장은 따로 만들었는데 통장의 돈은 인출을 안했다. 왜냐하면 원고료 통장은 이다음에 딸에게 선물을 할까해서이다. 빈 통장을 선물할 수는 없지 않은가?

▲ 활짝 웃는 기자 ⓒ 조상연


▲ 멀리 상주에서 올라오신 이종락 기자님. ⓒ 조상연


내가 글 밥 먹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내 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선배님의 말씀도 있고 해서 <오마이뉴스>에 내 글의 객관적 평가를 맡겼던 것이다. 그래도 "오 마이 뉴스" 편집국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던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오는 글 중에 내 글이 전문가들에 의해서 선택되었다는데 일단은 마음이 흐뭇하다.

암튼 2010년은 <오마이뉴스>로 인해서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것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지만 나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있다는 것을 오마이뉴스가 확인 시켜 주었다. 2010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다는 뿌듯함에 오늘도 가슴을 쭉 펴고 시커먼 아스팔트 위를 나는 걷는다. 아주 당당하게.

"나도 이제 기자다. 오 마이 뉴스 기자! 파~ 하하하~~~"
덧붙이는 글 2010, 나만의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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