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너무 힘겹게 다투며 살기 때문에
[그림책이 좋다 100] 나카야마 치나츠·+하세가와 요시후미, <안돼 삼총사>
― 안돼 삼총사
(나카야마 치나츠 글,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장지현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2007.7.10./8000원)
그림책 <안돼 삼총사>에서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 셋은 집을 나옵니다. '안돼'는 아버지가 너무 꾸중을 하는 바람에 터벅터벅 걸어서 집을 나오고, '안된다'는 어머니가 몹시 성을 내는 바람에 울면서 집을 나오며, '안된당께'는 애틋한 동무 둘을 걱정하는 바람에 머리를 깎다가 불쑥 집을 나옵니다.
나어린 세 동무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지만 길을 나섭니다. 꾸중하고 나무라는 어른들 틈바구니를 떠나,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찾아나섭니다. 세 동무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새로운 동무를 사귑니다. 이를테면 '안되지비'랑 '메이요'랑 '다메'랑 '이테키'랑 '하파나'랑 '나아'랑 '넷'이랑 '나인'이랑 '노'랑 '농' 같은 동무들입니다.
어른들은 어린 세 동무 앞에서 늘 골을 부리거나 성을 냈습니다.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일삼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기만 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렇게 해 볼까"라든지 "이처럼 하자" 같은 말은 좀처럼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당신 잣대와 눈높이에서만 생각하고 살피며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못난쟁이 어른들한테서 자라나던 아이들이 따스하며 넉넉한 말과 꿈을 펼칩니다. 아이들이 꺼내는 말은 어른들하고 똑같은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이지만, 이 말을 쓰는 자리와 느낌이 사뭇 달라,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으며 살가이 웃는 매무새로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를 읊으니 자꾸자꾸 새로운 동무를 사귈 수 있습니다.
.. "이봐 이봐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이기든 지든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어쨌든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 (31쪽)
이제 막 스물일곱 달로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섭니다. 늘 걷는 산길로 가 볼까 하다가 오늘은 다른 산길로 가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이가 아빠 손을 잡아끌며 "이리로, 이리로!" 하는데, 아빠는 아이가 잡아끄는 대로 가다가는 "응, 오늘은 다른 데로 가 볼까?" 하니까 "응?" 하더니 고분고분 따라 줍니다.
멧기슭 산골집으로 들어온 지 석 달이 지나고 넉 달째이지만 막상 '길이 안 나 있는' 산길을 타 본 적은 없습니다. 오늘은 겨울이 오기 앞서 길 없는 산길을 올라 보고 싶어 아이 손을 붙잡고 나무다리를 건너 비알진 기슭으로 넘어갑니다. 아이는 외나무다리가 무섭다며 웁니다. "살살 건너면 돼. 한 발씩 옆으로 가 봐." 하고 말하지만 한 발씩 떼지 못합니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아이를 덥석 안아 건넙니다.
길이 없는 산길이기에 잔가지를 헤치며 걷습니다. 비알진 기슭에 아이를 내려놓으니 안아 달랍니다. 아직 이런 산길을 걷기엔 너무 힘들겠지,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안고 차근차근 비알진 산길을 오릅니다.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헤치며 올라섭니다. 가다가 한 번 쉬며 풀숲에 앉습니다. 아이도 풀숲에 앉힙니다. "자, 저기 봐. 저 나무 사이에 우리 집이야. 그치? 우리 집하고 풀숲하고 고작 요만큼만 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보니까 무척 다르게 보이지?"
살짝 쉬었다가 다시금 산길을 탑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영차영차 오릅니다. 집에서 아이하고 복닥일 때에는 아이랑 제대로 놀지 못하며 을러대기 일쑤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아빠나 엄마는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오로지 아이하고만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랑 제대로 놀 마음을 못 냈다고 느낍니다. 스물네 시간 고스란히 둘이서 놀 수 있으면 더 좋을 테지만, 스물네 시간 내처 함께 놀지 않더라도 그림책을 함께 보고, 빨래할 때에 옆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며, 밥할 때에는 불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면서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 때에 아이를 불러 마당에서 신나게 뛰도록 하면 되고, 이불을 털면서 아이보고 너도 함께 이불을 털어 보렴 하고 얘기하면 됩니다.
야트막한 산기슭을 다 오르니 반반하게 길을 잘 닦은 산길이 나옵니다. 나무와 풀과 잔가지를 모두 쳐 놓은 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죽 뻗어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길을 잘 냈을까 궁금합니다. 왼쪽 길은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마을길로 이어지겠다 싶은데 오른쪽 길은 어디로 이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길로 가 보기로 합니다. 아이는 "아빠, 손!" 하고 부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걷습니다. 얕은 멧자락 풀숲인데, 이 얕은 멧자락 풀숲에 깃들어 있어도 아주 포근합니다. 숲이란, 나무란, 풀이란 너그러운 품이라고 새삼 느낍니다. 이 너그러운 품에 몇 가지 멧짐승이 살아가겠지요. 다람쥐이든 고라니이든 멧돼지이든 멧비둘기이든 까마귀이든 꿩이든 오순도순 제 보금자리를 하나씩 마련하여 지낼 테지요.
제법 깊이 들어왔다 싶을 무렵 무덤 하나 나타납니다. 어, 이런 데에 무덤이 있네. 아이도 "어, 뭐 있네?" 하고 놀랍니다. 무덤 앞에 섭니다. 꾸벅 인사를 합니다. 길이며 무덤이며 손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산임자는 당신 어버이를 이곳에 보듬어 놓았군요. 이 나라에는 산에 들에 무덤이 너무 많다는 말들을 하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볕 잘 들며 고즈넉한 한켠에 어버이 무덤 하나 써 놓으면 퍽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바글바글 도시에서는 꿈꿀 수 없으나, 느긋하며 한갓지게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이렇게 산길을 찬찬히 올라 어버이 무덤에 찾아가는 일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날마다 아이 손을 잡고 산길을 올라 무덤 앞에서 밥 한 끼니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도 즐거우니까요.
.. 옆집에 사는 안돼가 집을 나갔다. 아빠가 너무 꾸중하셔서. "이거 하면 안 돼. 저거 하면 안 돼. 가서는 안 돼. 안 가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3쪽)
어른들이라고 처음부터 아이들 앞에서 윽박지르고 싶어 윽박지르리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였고,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얼마나 개구지게 놀았겠어요.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에도 당신 어버이께서는 당신을 윽박지르기만 했을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당신 어버이는 너그러우며 따사로운 품으로 고이 쓰다듬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도시로 나와 살면서(또는 처음부터 도시에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따뜻한 사랑과 너른 믿음을 잃거나 잊고 맙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더 치고받으며 내 배를 채워야 하는 삶에 젖어드니까요. 알맞춤하게 모인 사람들이 알맞춤하게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겨루거나 다투면서 이웃이나 동무 등을 타고 올라야 하니까요.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내내 겨루거나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식구들하고 자꾸자꾸 겨루거나 다투는 삶이 됩니다.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한결같이 사랑스레 어울리거나 어깨동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살붙이랑 오순도순 지내며 보듬는 삶이 될 테지요.
가장 좋기로는 엄마나 아빠가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아이는 엄마한테만 맡긴다든지 할머니한테 맡긴다든지 어린이집에 맡긴다든지 하지 말고, 엄마와 아빠가 집에서 아이하고 줄곧 지내는 삶입니다. 더 벌어서 더 번 돈을 어린이집과 학원과 바깥밥에 쏟아붓기보다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버는 만큼 작으며 조촐히 온 식구 따사로이 어우러지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만 이처럼 지낼 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일자리를 나누며 살 수 있어요. 밤샘 일을 하거나 여덟 시간 일을 마친 뒤에도 더 일을 하지 말고, 아니 여덟 시간조차 일을 하지 말고 네 시간이나 여섯 시간 일을 하면서 일삯은 적게 받으며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자리를 마련하는 가운데, 적게 버는 만큼 단출하며 가볍고 작은 살림을 꾸리면 됩니다. 이러는 동안 집식구하고는 더 오래 더 많이 더 가까이 어울리면 좋아요.
즐겁게 살자면서 버는 돈인데, 정작 돈은 벌지만 내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어깨동무할 겨를은 잃어버리는 오늘날 삶이거든요. 넉넉히 살자면서 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돈을 더 벌어도 이 돈을 우리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알뜰살뜰 재미나게 쓸 틈이란 거의 없는 요즈음 삶이에요.
..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는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이 점점 늘었다 .. (21쪽)
아이하고 산길을 내려오다 밤나무밭에서 밤 세 알 줍습니다. 산임자가 돌보는 밤나무에서 웬만한 밤은 산임자가 다 따 가셨는데 꼭 한 송이가 흙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에, 요 한 송이를 벌려 세 알을 줍습니다. 엊그제 이웃 이오덕학교 선생님들하고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함께 캤습니다.
이때에 우리들은 찬찬히 캔다고 캤으나 틀림없이 미처 못 캐고 지나쳐 땅속에 고이 묻혀 있는 고구마도 어느 만큼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못 캔 고구마는 흙으로 되돌아간다든지 멧짐승 먹이가 될 테고, 산임자가 미처 모르고 못 주운 밤톨 또한 멧짐승 먹이가 되겠지요. 자잘한 밤톨이 제법 바닥에 굴러다니기에 우리 세 식구 몫으로 꼭 세 알만 줍습니다.
이제 집에 닿습니다. 아빠는 빨래를 걷습니다. 이불을 털어 걷습니다. 이불을 털 때에 아이는 옆에서 아빠가 하는 몸짓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두 손으로 넓게 이불을 잡고 털 때에는 저도 두 손을 벌려 흔들고, 이불을 주섬주섬 접어 한손으로 탕탕 칠 때에는 또 요런 움직임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아빠는 지난주부터 고뿔에 걸려 해롱거리는 몸입니다. 아침에도 끙끙대며 누워 있다가 밥을 차리며 빨래를 했고, 아이하고 조금 놀다가도 몸이 무거워 다시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이렇게 벌떡 일어나서는 산길 마실을 했습니다.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 그만 드러눕습니다. 아이는 엄마랑 조금 더 놀더니 어느새 제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듭니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늘 느낍니다. 이 그림책들은 아이들한테만 보여주려고 일군 책은 아니지 싶습니다. 어떠한 그림책이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들이 뭔가 좀 제대로 알거나 느끼며 옳고 바르게 살아가라며 빚은 책이지 싶습니다. 어설프며 어줍잖은 어른들이 그동안 지나 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슬기롭게 이끌 좋은 슬기를 찬찬히 곱씹으라고 도움말을 건네는 책이라고 봅니다.
<안돼 삼총사>도 이러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스스로 읽으라고 던져 준다든지, 어린이 나이에만 읽힌다든지 할 책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왕창 장만해서 집구석에 꽂아 놓을 책이 아니에요. 어버이부터 책방 마실을 하여 스스로 읽고 기꺼이 장만할 책이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마음으로 받아안을 책이며,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과 글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서로서로 즐길 책입니다. 함께 즐기면서 고운 빛과 재미난 이야기를 받아먹는 그림책입니다.
(나카야마 치나츠 글,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장지현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2007.7.10./8000원)
그림책 <안돼 삼총사>에서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 셋은 집을 나옵니다. '안돼'는 아버지가 너무 꾸중을 하는 바람에 터벅터벅 걸어서 집을 나오고, '안된다'는 어머니가 몹시 성을 내는 바람에 울면서 집을 나오며, '안된당께'는 애틋한 동무 둘을 걱정하는 바람에 머리를 깎다가 불쑥 집을 나옵니다.
▲ 겉그림 ⓒ 웅진주니어
나어린 세 동무는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모르지만 길을 나섭니다. 꾸중하고 나무라는 어른들 틈바구니를 떠나,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찾아나섭니다. 세 동무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새로운 동무를 사귑니다. 이를테면 '안되지비'랑 '메이요'랑 '다메'랑 '이테키'랑 '하파나'랑 '나아'랑 '넷'이랑 '나인'이랑 '노'랑 '농' 같은 동무들입니다.
어른들은 어린 세 동무 앞에서 늘 골을 부리거나 성을 냈습니다.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말을 일삼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리기만 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렇게 해 볼까"라든지 "이처럼 하자" 같은 말은 좀처럼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당신 잣대와 눈높이에서만 생각하고 살피며 말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못난쟁이 어른들한테서 자라나던 아이들이 따스하며 넉넉한 말과 꿈을 펼칩니다. 아이들이 꺼내는 말은 어른들하고 똑같은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이지만, 이 말을 쓰는 자리와 느낌이 사뭇 달라,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으며 살가이 웃는 매무새로 '안 돼-안 된다-안 된당께'를 읊으니 자꾸자꾸 새로운 동무를 사귈 수 있습니다.
.. "이봐 이봐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사이좋게 지내야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이기든 지든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어쨌든 싸움은 안 돼 안 된다 안 된당께." .. (31쪽)
이제 막 스물일곱 달로 접어든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섭니다. 늘 걷는 산길로 가 볼까 하다가 오늘은 다른 산길로 가 보기로 마음먹습니다. 아이가 아빠 손을 잡아끌며 "이리로, 이리로!" 하는데, 아빠는 아이가 잡아끄는 대로 가다가는 "응, 오늘은 다른 데로 가 볼까?" 하니까 "응?" 하더니 고분고분 따라 줍니다.
멧기슭 산골집으로 들어온 지 석 달이 지나고 넉 달째이지만 막상 '길이 안 나 있는' 산길을 타 본 적은 없습니다. 오늘은 겨울이 오기 앞서 길 없는 산길을 올라 보고 싶어 아이 손을 붙잡고 나무다리를 건너 비알진 기슭으로 넘어갑니다. 아이는 외나무다리가 무섭다며 웁니다. "살살 건너면 돼. 한 발씩 옆으로 가 봐." 하고 말하지만 한 발씩 떼지 못합니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아이를 덥석 안아 건넙니다.
길이 없는 산길이기에 잔가지를 헤치며 걷습니다. 비알진 기슭에 아이를 내려놓으니 안아 달랍니다. 아직 이런 산길을 걷기엔 너무 힘들겠지,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안고 차근차근 비알진 산길을 오릅니다.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헤치며 올라섭니다. 가다가 한 번 쉬며 풀숲에 앉습니다. 아이도 풀숲에 앉힙니다. "자, 저기 봐. 저 나무 사이에 우리 집이야. 그치? 우리 집하고 풀숲하고 고작 요만큼만 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보니까 무척 다르게 보이지?"
살짝 쉬었다가 다시금 산길을 탑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영차영차 오릅니다. 집에서 아이하고 복닥일 때에는 아이랑 제대로 놀지 못하며 을러대기 일쑤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아빠나 엄마는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오로지 아이하고만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랑 제대로 놀 마음을 못 냈다고 느낍니다. 스물네 시간 고스란히 둘이서 놀 수 있으면 더 좋을 테지만, 스물네 시간 내처 함께 놀지 않더라도 그림책을 함께 보고, 빨래할 때에 옆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하며, 밥할 때에는 불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면서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 때에 아이를 불러 마당에서 신나게 뛰도록 하면 되고, 이불을 털면서 아이보고 너도 함께 이불을 털어 보렴 하고 얘기하면 됩니다.
야트막한 산기슭을 다 오르니 반반하게 길을 잘 닦은 산길이 나옵니다. 나무와 풀과 잔가지를 모두 쳐 놓은 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죽 뻗어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길을 잘 냈을까 궁금합니다. 왼쪽 길은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마을길로 이어지겠다 싶은데 오른쪽 길은 어디로 이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길로 가 보기로 합니다. 아이는 "아빠, 손!" 하고 부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걷습니다. 얕은 멧자락 풀숲인데, 이 얕은 멧자락 풀숲에 깃들어 있어도 아주 포근합니다. 숲이란, 나무란, 풀이란 너그러운 품이라고 새삼 느낍니다. 이 너그러운 품에 몇 가지 멧짐승이 살아가겠지요. 다람쥐이든 고라니이든 멧돼지이든 멧비둘기이든 까마귀이든 꿩이든 오순도순 제 보금자리를 하나씩 마련하여 지낼 테지요.
제법 깊이 들어왔다 싶을 무렵 무덤 하나 나타납니다. 어, 이런 데에 무덤이 있네. 아이도 "어, 뭐 있네?" 하고 놀랍니다. 무덤 앞에 섭니다. 꾸벅 인사를 합니다. 길이며 무덤이며 손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산임자는 당신 어버이를 이곳에 보듬어 놓았군요. 이 나라에는 산에 들에 무덤이 너무 많다는 말들을 하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볕 잘 들며 고즈넉한 한켠에 어버이 무덤 하나 써 놓으면 퍽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바글바글 도시에서는 꿈꿀 수 없으나, 느긋하며 한갓지게 살아가는 터전에서는 이렇게 산길을 찬찬히 올라 어버이 무덤에 찾아가는 일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날마다 아이 손을 잡고 산길을 올라 무덤 앞에서 밥 한 끼니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도 즐거우니까요.
.. 옆집에 사는 안돼가 집을 나갔다. 아빠가 너무 꾸중하셔서. "이거 하면 안 돼. 저거 하면 안 돼. 가서는 안 돼. 안 가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3쪽)
어른들이라고 처음부터 아이들 앞에서 윽박지르고 싶어 윽박지르리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였고,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얼마나 개구지게 놀았겠어요.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에도 당신 어버이께서는 당신을 윽박지르기만 했을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당신 어버이는 너그러우며 따사로운 품으로 고이 쓰다듬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도시로 나와 살면서(또는 처음부터 도시에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따뜻한 사랑과 너른 믿음을 잃거나 잊고 맙니다. 서로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더 치고받으며 내 배를 채워야 하는 삶에 젖어드니까요. 알맞춤하게 모인 사람들이 알맞춤하게 어울리는 도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겨루거나 다투면서 이웃이나 동무 등을 타고 올라야 하니까요.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내내 겨루거나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식구들하고 자꾸자꾸 겨루거나 다투는 삶이 됩니다. 집 바깥에서 뭇사람하고 한결같이 사랑스레 어울리거나 어깨동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삶일 때에는 집 안에서도 살붙이랑 오순도순 지내며 보듬는 삶이 될 테지요.
가장 좋기로는 엄마나 아빠가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아이는 엄마한테만 맡긴다든지 할머니한테 맡긴다든지 어린이집에 맡긴다든지 하지 말고, 엄마와 아빠가 집에서 아이하고 줄곧 지내는 삶입니다. 더 벌어서 더 번 돈을 어린이집과 학원과 바깥밥에 쏟아붓기보다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버는 만큼 작으며 조촐히 온 식구 따사로이 어우러지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에만 이처럼 지낼 수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일자리를 나누며 살 수 있어요. 밤샘 일을 하거나 여덟 시간 일을 마친 뒤에도 더 일을 하지 말고, 아니 여덟 시간조차 일을 하지 말고 네 시간이나 여섯 시간 일을 하면서 일삯은 적게 받으며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자리를 마련하는 가운데, 적게 버는 만큼 단출하며 가볍고 작은 살림을 꾸리면 됩니다. 이러는 동안 집식구하고는 더 오래 더 많이 더 가까이 어울리면 좋아요.
즐겁게 살자면서 버는 돈인데, 정작 돈은 벌지만 내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어깨동무할 겨를은 잃어버리는 오늘날 삶이거든요. 넉넉히 살자면서 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정작 돈을 더 벌어도 이 돈을 우리 식구랑 동무랑 이웃이랑 다른 살붙이랑 알뜰살뜰 재미나게 쓸 틈이란 거의 없는 요즈음 삶이에요.
.. 안돼와 안된다와 안된당께는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이 점점 늘었다 .. (21쪽)
아이하고 산길을 내려오다 밤나무밭에서 밤 세 알 줍습니다. 산임자가 돌보는 밤나무에서 웬만한 밤은 산임자가 다 따 가셨는데 꼭 한 송이가 흙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에, 요 한 송이를 벌려 세 알을 줍습니다. 엊그제 이웃 이오덕학교 선생님들하고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함께 캤습니다.
이때에 우리들은 찬찬히 캔다고 캤으나 틀림없이 미처 못 캐고 지나쳐 땅속에 고이 묻혀 있는 고구마도 어느 만큼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못 캔 고구마는 흙으로 되돌아간다든지 멧짐승 먹이가 될 테고, 산임자가 미처 모르고 못 주운 밤톨 또한 멧짐승 먹이가 되겠지요. 자잘한 밤톨이 제법 바닥에 굴러다니기에 우리 세 식구 몫으로 꼭 세 알만 줍습니다.
이제 집에 닿습니다. 아빠는 빨래를 걷습니다. 이불을 털어 걷습니다. 이불을 털 때에 아이는 옆에서 아빠가 하는 몸짓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두 손으로 넓게 이불을 잡고 털 때에는 저도 두 손을 벌려 흔들고, 이불을 주섬주섬 접어 한손으로 탕탕 칠 때에는 또 요런 움직임을 따라하며 웃습니다.
아빠는 지난주부터 고뿔에 걸려 해롱거리는 몸입니다. 아침에도 끙끙대며 누워 있다가 밥을 차리며 빨래를 했고, 아이하고 조금 놀다가도 몸이 무거워 다시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이렇게 벌떡 일어나서는 산길 마실을 했습니다.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 그만 드러눕습니다. 아이는 엄마랑 조금 더 놀더니 어느새 제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듭니다.
그림책을 볼 때마다 늘 느낍니다. 이 그림책들은 아이들한테만 보여주려고 일군 책은 아니지 싶습니다. 어떠한 그림책이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들이 뭔가 좀 제대로 알거나 느끼며 옳고 바르게 살아가라며 빚은 책이지 싶습니다. 어설프며 어줍잖은 어른들이 그동안 지나 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슬기롭게 이끌 좋은 슬기를 찬찬히 곱씹으라고 도움말을 건네는 책이라고 봅니다.
<안돼 삼총사>도 이러한 그림책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스스로 읽으라고 던져 준다든지, 어린이 나이에만 읽힌다든지 할 책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열 권 스무 권 왕창 장만해서 집구석에 꽂아 놓을 책이 아니에요. 어버이부터 책방 마실을 하여 스스로 읽고 기꺼이 장만할 책이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마음으로 받아안을 책이며, 아이를 무릎에 앉혀 그림과 글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서로서로 즐길 책입니다. 함께 즐기면서 고운 빛과 재미난 이야기를 받아먹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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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