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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89회)

뇌공도(雷公圖) <1>

등록|2010.11.19 08:33 수정|2010.11.19 08:33
날짜가 경과한 탓에 관측대에 올린 사내의 주검에선 악취가 고약하게 풍겼다. 젊은 데다 살이 쪘으니 문드러지는 건 당연했으나 주검이 발견된 양재역 부근은 깊은 산속의 기후라 해도 이상이 없을 정도로 일기의 변화가 심했다.

살(矢)에 맞아 죽은 시신은 지난 여름에도 있었으나 현장에 나간 정약용은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서과야, 끓는 물이나 술 또는 초를 데워 시체에 덮어두면 상처난 부위가 부어오르고 희게 변한다. 다른 곳은 푸르고 검게 변한다. 확실하게 상흔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더러운 냄새가 풍긴다고 겉으로 드러난 형체만 살핀다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이 가는 부위나 피부가 까진 상처가 있다면 반드시 피부를 벗겨 확인해야 한다. 손상된 곳은 피맺힌 자국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탓에 서과는 관측대 위에 주검을 올리고 살(矢) 맞은 부위를 살펴나갔다. 흔적 뿐인 두 개의 구멍은 흉당(胸膛)과 그 아래 부분인 심감(心坎)이었다. 가슴 한 가운데인 흉당과 그 아래쪽 심감을 화살이 뚫었으나 상처흔적이 고른 건 아니었다.

'가만···, 서리배들은 살을 한 개만 뽑아갔다고 했다. 꽂힌 화살을 뽑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상처를 살피면 흉당 쪽은 화살 맞은 자리에 물기가 어리고, 심감엔 염증이 일어났다. 살 맞은 자국은 흉당 쪽이 얕고 깊게 패인 것으로 보면 이것은 한 사람의 솜씨로 보긴 어려운 일 아닌가.'

서과는 검시의가 뽑은 살촉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주검의 상흔은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더구나 사내의 손은 칼을 쥐고 살아온 도적떼의 한 사람으로 보기 힘들 만큼 매끄러웠다.

이 점에 대해 정약용도 같은 의혹을 느꼈다. 송찰방 집을 찾아온 도적이 정보를 잘못 전한 졸개에게 화살을 날렸다면 굳이 화살을 뽑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사체를 발견한 주변을 위주로 반경 서른 자 안팎의 지점을 샅샅이 살피게 하자 도둑이 쏘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살이 발견됐다. 화살깃은 꿩털로 장식했지만 독사의 머리를 닮은 살촉은 놋쇠를 부어 만든 것이었다.

이게 상대방에게 적중되면 설령 뽑아낸다 해도 고통이 따를 것이다. 관측대가 놓인 곳에서 서과와 주검을 살피던 검시의가 정약용 앞에 다가와 뜻밖의 의견을 내놓았다.

"화살 맞은 자린 두 곳이지만 염증 난 곳이 하나라 이상히 여겼습니다만, 이제야 원인을 알았습니다."

"뭔가?"
"두 개의 살은 각기 다른 사람이 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

"우선은 살 맞은 자리의 흔적이 다릅니다. 흉당에 맞은 자린 얕고 깊습니다. 이것은 사헌부 금리(禁吏)들이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찾아낸 살과 같습니다."
"검시의가 알았다는 원인은 어떤 것인가?"

"나으리께서도 살이 꽂혔던 상흔을 보아 아실 것입니다만, 그 화살엔 독이 묻혀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독성이 몸에 퍼지기 전엔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살을 날린 자가 쓴 살촉은 은(銀)을 적당량 섞어 만들었기 때문으로, 과녁이 살에 맞으면 그때야 독성이 흐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검시의의 소견처럼 사체에선 뜻밖의 물건이 발견됐다. 두복(肚腹)이란 곳이었다. 흔히 가슴 한가운데를 흉당이라 부르고 그 밑이 심감, 그 아래가 두복이다.

살을 맞은 사내가 휘청대자 살을 뽑기 위해 다가갔지만 사내는 죽기 전 살대를 꺾어 살촉을 찾지 못하게 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다면, 주검엔 살촉이 남았을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소인이 주검에서 찾아낸 건 살촉에 은을 입힌 예전(禮箭)이었습니다."

"예전? 허면, 도적들이 사용한 건 뭔가?"
"편전(片箭)입니다."

편전은 살이 작지만 나는 힘이 강하다. 촉이 뾰쪽해 두꺼운 갑옷도 뚫을 수 있어 도적떼가 이용하기 좋다. 문제는 예전이다. 이 살은 궁안의 활쏘기 대회나 여흥에 취해 연사(燕射) 하는 게 대부분이다.

도적의 괴수가 날린 살에 목숨을 잃었다기 보다 예전을 쓰는 누군가의 활에 맞아 목숨이 끊겼다는 게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외에도 정약용이 생각한 게 있었다. 그것은 도적떼 괴수가 송찰방에게 전한 내용이다. 자신들이 송찰방을 턴 것은 정보가 잘못 됐기 때문이라고 한 것으로 볼 때, 도적들이 원하는 상대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관측대 쪽에 있던 서과가 다가오며 목소릴 높혔다.

"나으리, 사체엔 양안쌍정(兩眼雙睛)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쌍정이 없다니?"

쌍정은 눈동자니 그게 없다면 두 눈알을 뽑았다는 얘기다. 눈의 속이 빠져나가고 눈두덩이라 부르는 양안포(兩眼胞)만 덮인 상태다. 게다가 그 옆엔 가지가 셋으로 나뉜 매화나무 그림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흐음, 매화나무라···.'

두어 달 안쪽에 나타난 가지가 셋인 매화나무 그림은 송덕상이 이끈 문인방 패거리와 벽파를 뒷전에서 끌고 나간 정순왕후가 연합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도적들은 자신의 패거리가 정보를 잘못 전해주어 송찰방에게 허물을 남겼으니 졸개의 목을 베고 눈알을 파 사죄한다고 나귀에 증표를 실어보냈었다.

'그 자들이 원했던 상대가 송찰방이 아니라면 누구인가. 정보를 잘못 받았다는 건 상대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정약용은 주위를 서성거리며 더욱 골똘해졌다. 조선의 도둑이라면 협객 도둑을 묘사한 유희의 <도협서(盜俠敍)>가 있고 <강도의 기록(紀盜)>을 쓴 양형선도 있었다.

홍길주의 <수여방필(睡餘放筆)>이란 책엔 먹물로 매화를 그려놓고 가는 '묵매(墨梅)'라는 신출귀몰한 도둑도 있었다.

도둑의 괴수가 나귀에 실어 보낸 주검에 가지가 셋인 매화나무 그림이 있었다는 건 묵매와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송나라 때엔 '내가 왔다 간다'는 아래야(我來也) 도둑이 글씨를, 일지매는 매화그림을 남겼다. 명나라 때엔 의적의 소행을 변화무쌍한 용에 비유해 '귀신같은 도둑'이란 의미로 난룡(嬾龍)이라 했다. 그렇기에 조선 백성들은 말하지 않던가.

"일지매(一枝梅)의 본명은 난룡이다. 하루 종일 잠을 안 자는 변화무쌍한 용과 같기 때문이다. 물건을 손에 넣으면 매화가지를 그리되 검은 곳은 하얗게 분칠하고 흰 벽은 숯으로 검게 그렸다."

그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해 철통같은 방비에도 여유있게 물건을 훔쳤다. 그에겐 원칙이 있어 힘없는 백성들은 좋아했다. 부녀자를 강간하지 않고, 선량한 사람이나 우환이 있는 집엔 들어가지 않으며,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키고, 가난한 사람에겐 재물을 베풀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있는 정약용에게 서과가 다가와 문밖 소식을 정한다.

"나으리, 손님이 왔습니다."
"누군가?"

"도화서 최가원 별제가 밖에 계십니다."
"안으로 뫼시게."

의례적인 인사를 치르고 최가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도화서 안에 있던 내밀한 일을 끄집어냈다. 자가 여삼(汝三) 호가 현은(玄隱)인 화원 김덕성이란 자에 관해서였다.

"도화서 화원에 김덕성이란 자가 있는데 지난 임오년에 사도세자가 죽기 전 그를 만나 그림 하날 그렸네. '벽화지매(壁畵枝梅)'라는 것인데 신출귀몰하는 일지매를 그린 것으로 전하네.  헌데, 일지매라는 도둑이 궁에 들어와 보위를 찬탈한다는 얘기가 선대왕 귀에 와전돼 들어가자 대왕께선 크게 노하여 김덕성에게 <뇌공도>를 급히 그리게 하고 뒤이어 나경언의 참소가 있자 사도세자를 뒤주에 집어넣는 참변이 벌어졌네. 결국 사도세자가 죽게 되자 김덕성은 도화서에 선발된 화원이 일구월심 그리는 대나무(竹) · 산수 · 인물 · 화초 · 영모를 놓아두고 신장(神將)을 열심히 그렸다네. 그러다가···, 천둥과 번개를 일으킨다는 뇌공(雷公)에 관심을 기울여 선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 <뇌공도(雷公圖)>에 손을 댔다네. 그 화원의 소식은 그 동안 끊겼는데, 어찌된 셈인지 지금에 이르러 일지매가 다시 나타났다지 않는가."

'다시 나타났다?'
"해괴한 소문은, 일지매가 간룡척(看龍尺)을 노린다는 것이네. 소문을 들은 예판 대감께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네. 도성 안엔 의협심 높은 일지매 얘기가 떠돌아 좌우 포청에선 숙종 조에 이름을 날린 장붕익(張鵬翼) 대장이 있어야 도둑을 잡는다는 우스갯말이 떠돈 모양이네. 이보시게 사암, 예판 대감의 걱정은 어느 못된 자가 김덕성의 그림을 앞세워 일지매 행세를 하는 것 같으니 사실을 알아보라 하시네."
"으음."

"다행스럽게도 도화서에선 김덕성이 그린 '벽화지매'란 그림을 찾았네만, <뇌공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네. 일지매인가 묵매인가 하는 자가 새삼스럽게 나타난 이율 알아야 하지만···, 만약 그 자가 <뇌공도>를 찾는 게 분명하다면 이건 반역에 가까운 일이네."
"반역?"

[주]
∎벽화지매(壁畵枝梅) ; 사도세자가 김덕성에게 그리게 한 일지매 그림
∎금리(禁吏) ; 사헌부 하급관원
∎뇌공도(雷公圖) ; 김덕성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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