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도시야, 좀 천천히 늙으면 안 되겠니?

[서평] 김대홍씨가 쓴 <도시의 속살>

등록|2010.11.20 11:18 수정|2010.11.20 11:18

▲ <도시의 속살> 겉그림. ⓒ 포토넷

언젠가 내가 쓴 기사, "제발 흙길을 그냥 두세요!"를 읽고 한 통의 쪽지를 받았답니다. 그러고 보니, 2007년 11월 이맘때였네요.

"흙길, 골목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많은데 왜 이런 길들이 계속 사라질까요. 아마 자기 문제가 아니라서 그렇다는 생각은 들어요. 몸은 이미 그런 삶과 먼데, 마음만 그립다고 하는 거지요. '전원생활 좋지~!'하는 투로 말이지요. 내 삶을 흙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그럴 때 우리 주위가 흙에 가까운 형태가 되겠지요. 지금은 '흙이 좋아', '골목이 좋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봐요."

우리 부부처럼 자전거를 타고 산길(임도)로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늘 느끼지만, 산에서 흙길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정겨운지 모른답니다. 푹신한 흙을 밟으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기분이 무척 좋지요.

때론, 그 느낌을 몸으로 느끼기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일부러 걸어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지난날 흙이 자리했던 길조차도 시멘트로 덮어놓은 곳이 많답니다. 무척 씁쓸하지요. 그러나 마냥 안 좋게만 여길 수는 없는 일이랍니다. 어쨌거나 산속 길은 혹시라도 산불이 났을 때, 소방차가 손쉽게 오를 수 있어야하니까요. 하지만 산에 오르는 이들에겐 흙길로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요.

그가 도시 속으로 뛰어들게 된 까닭은?

위 쪽지 글은 최근 <도시의 속살>을 펴낸 김대홍씨가 내게 보내준 것이었답니다. 위 글처럼 흙길, 골목길을 남달리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분이라 그런지 역시 그가 쓴 책에서도 그 마음이 오롯이 잘 나타나있더군요. 그래서 무척이나 반가웠고 읽는 내내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꼈답니다.

우리 부부는 늘 자전거를 타고 시골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찾아가곤 했는데, 우리와 달리 이분은 자전거를 타고 도시 속으로 들어갔네요. 그렇게 다니면서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도시의 속살을 하나하나 벗겨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도시였기 때문에, 그가 펴낸 책 '여는 글' 속 표현대로 시골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았던 도시에서 만든 좋은 추억들이 그를 도시 속으로 뛰어들게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릴 적 추억을 좇아 자전거를 타고 20~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그는 또 다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거리들을 안고 돌아왔네요. 그게 바로 이 책 <도시의 속살>이 아닐까 싶네요. 오징어와 석탄이 넘치던 까만 바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읍에서 떠나 "온 도시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 표현한 대구시 중구까지 두 바퀴를 쉼 없이 굴려 달려온 그. 책을 읽고 나니, 나 또한 그와 함께 자전거를 탄 것 같은 기분이랍니다.

흙길산길에 자전거 타고 올라가면 이런 흙길을 더러 만납니다. 무척이나 반갑고 정겹지요. 요즘은 시골 마을에 가도 흙길을 보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데 이런 산 속 흙길도 자꾸만 시멘트로 덮이곤 한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한쪽으로는 이런 길이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고 또 그립답니다. ⓒ 손현희


흙길이 시멘트길로 확 바뀌었어요. 앞서 올린 사진과 똑 같은 곳이랍니다. 두어 달 앞서 찾아갔는데, 어느새 이렇게 흙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어요. 흙길 뿐 아니라 옛 것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것, 도시의 개발에 떠밀려 역사도 전통도 문화도 자꾸만 뭍히고 사라져가는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지요. ⓒ 손현희


도시도 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나이가 든다

김대홍씨는 어릴 적, 집 앞 가게 아저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것을 보고 날마다 보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 퍽이나 놀라운 일이었다고 했는데요.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 같고 눈에 익숙하며 추억이 배어있는 도시가 '개발'에 떠밀려 자꾸만 사라지고 바뀌는 것이 얼마나 또 안타까웠을까요.

도시도 태어나고, 또 사람과 함께 자라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안겨줍니다. 그가 찾아간 많은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그땐 좋았지!'라고 말합니다. 김대홍씨가 충청도 광천땅 옛 '옹암포구'였던 옹암리에서 만난 '삼거리슈퍼' 아주머니 처럼요.

"우리 친정집 방이 대여섯 개 정도 됐는데, 장이 열리면 사람이 얼마나 오는지, 하루에 쌀 몇 말씩 했어요. 그때는 수도가 없으니 샘에서 물을 길어야 했는데, 집 뒷산에 열 번도 넘게 오르내렸다니까요."

경기도 안성 땅의 '우전 대장간' 아저씨도 "한창때는 말도 못했어요,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했죠, 나 말고도 일꾼이 두 명이나 더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도시도 몇 번이나 탈바꿈을 하는 탓에 영화를 누렸던 포구가 사라지고, 탄광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또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둘레에서 화려하게 보냈던 이들의 삶도 아련한 '옛것'이 되곤 합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바뀌면서 도시도 '개발 바람'에 떠밀리고, 자꾸만 옛것은 사라집니다. 도시가 좇아가는 사업에 따라 사람들의 삶도 많이 바뀌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도시가 품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만 하는 건 아니네요. 옛것을 잘 살려 오롯이 전통으로 남기거나, 문화로 자리 잡은 그것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가슴에 깊히 박힙니다. 전주 한옥마을이나 화려한 도자기 문화가 꽃피었던 남원 땅에서는 솜씨 좋은 명장들이 만들어낸 목기와 도자기에 이어 '남원식도(남원시의 지역 특산품인 음식을 만들 때 쓰는 생활용품)'라는 명품이 생겨났습니다. 이렇듯 '꾸준히 그 땅의 문화를 이어가는 일도 도시가 퍽이나 곱게 늙어가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를 어찌 그리 잘 알아낼까

몇 해 앞서, 김대홍씨에게 우리나라 곳곳에 널려있는 문화재를 잘 갈무리해 만든 파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우리 부부가 둘레에 있는 문화재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보내준 것이었지요. 그때 얼마나 고맙든지, 그리고 파일을 열어보고 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많은 양에도 놀랐지만 지역 곳곳의 문화재들을 빽빽하게 적어놓은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문화재가 있었나'하며 참 놀랐었지요. 그 파일을 참고로 내가 사는 지역 가까이에 있는 것만 찾아다녔는데도 아직 다 못 가봤으니 말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김대홍씨의 남다른 열정을 또 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꼼꼼하게 찾아내고 갈무리했는지를 보면 아마 누구나 다 놀랄 거예요. 우리는 기껏해야 마을 사람들한테 들은 옛 이야기가 다이고, 좀 더 살핀다고 하면, 인터넷에 올라있는 '동사무소 누리집'을 들어가 찾는 얘기가 다인데 말이에요.

아마도 틀림없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연구하고 자료를 찾아내며, 손수 찾아가서 눈으로 보고 마을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도 들으면서 그렇게 갈무리를 했을 거예요. 그 정성과 발자취가 책속에 오롯이 배어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자전거를 타고 마을마다 찾아다닐 때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어디를 가더라도 먼저 다 알고 가지 말자. 자칫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어쩌면 우리가 먼저 익히고 공부한 만큼만 보고 올 수도 있을 거야. 또 어떤 선입견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올 수도 있잖아."

그땐 그랬어요. 참말로 아무 정보도 없이 가니까 오로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더욱 큰 감동을 받게 되더군요. 어쩌다가 마을 할머니라도 만나면, 마을에 전해지는 옛이야기라든지 할머니 기억 속에 있는 오랜 역사들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은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녀오고 나면, 늘 한 가지씩은 꼭 놓치고 올 때가 많았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문화재도 찾아보고 이야기도 듣고 했던 그곳 바로 곁에 더 많은 얘깃거리가 있었다는 걸 다녀와서야 알게 된 거지요. 그때부터는 먼저 어느 마을에 가고자 하면, 그 마을 숨은 이야기까지 샅샅이 찾아보고 공부를 하고 가곤 한답니다.

여행을 할 때는 먼저 그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을 웬만큼은 알고 가는 게 큰 도움이 되곤 한답니다. 이렇듯이 김대홍씨도 먼길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익히고 연구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잘 갈무리 된 역사나 문화 이야기를 읽을 때 퍽이나 감명 깊었던 게 바로 그 까닭이었을 거예요. 

도시도 자전거 속도만큼 느리게 늙을 수 있다면

사람도 나고 자라고 무르익고 늙어가는 것처럼, 도시도 세월을 따라 참 많이도 바뀌어 가고 있지요. 더구나 요즘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어 갑니다. '변해간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책 속에서 이야기하듯이 곱게 나이가 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고 일어나면 '개발 바람'에 떠밀려 새 길이 나 있고, 또 눈 뜨면 아파트가 우뚝 솟아있는 그런 변화보다는 지킬 것은 지켜나가고 옛것이라도 다시 세울 것은 세우면서 그렇게 천천히 바뀌면 좋겠어요.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을 이으면서 올곧게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지요.

'미니벨로 스트라이다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서 도시 속으로 뛰어든 김대홍씨가 이 책을 펴내고 어떤 마음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동안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쉼 없이 두 바퀴를 굴려 찾아간 곳곳에서 만나고 봐왔던 것들, 그것들을 이 책 한 권에 모두 담아내기에는 너무 좁지 않았을까? 때론 가파른 언덕길도 굴리고, 때론 골목길을 서성이며 일부러 내려서 끌고 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다니며 사진기에 담고 가슴에 담아 온 이야기를 모두 싣지는 못했을 거예요.

도시도시도 느리게 늙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손현희


엊그제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읽었던 '도보여행'을 하신다는 어떤 분의 글이 가슴에 남습니다. 15km밖에 안 되는 시골마을 자전거 길을 딸과 함께 걸었는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네요. 걸으면서 꼼꼼하게 둘레 풍경을 사진기 속에 하나하나 담고, 딸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그렇게 걸었다고 하네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우리도 때때로 너무 빨리 지나쳐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걸어가면 더욱 더 알차게 다닐 수도 있을 텐데…'하는 생각을 많이 한답니다. 그런 것들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보는 이 풍경이 언젠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꾸만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가슴에 담아두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의 속살>을 덮으면서, 남원 땅 어느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를 찍은 아주 작은 사진 곁에 덧붙인 글귀가 오래도록 맴돕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자라고 나이가 들어가는 도시 속에 뛰어들어 발로 뛰며 펴낸 책을 갈음하면서 김대홍씨가 느꼈을 간절한 바람이 담긴 듯도 했답니다.

'그들은 자전거를 탔고, 도시는 자전거 속도만큼 흐르는 듯이 느껴졌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