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삼년산성, 누구도 범하지 못한 숭고한 4개의 문

등록|2010.11.20 17:24 수정|2010.11.20 17:24

▲ 새로 축조된 삼년산성 ⓒ 최지혜


2000년 방송되었던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이곳을 신라통일의 교두보라는 의미를 두고 있다. 바로 충북 보은군 어암리에 자리한 오정산 정상을 두르고 있는 삼년산성이다.

얼마나 위압적일까? 2010년 11월 13일 가을이 저물어가는 어느 주말오후, 한 여행작가의 가이드를 받으며 기대를 한 껏 품고 그곳으로 향한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삼년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정산이 해발 325m의 낮은산이긴 하지만 약간의 경사는 있다. 흙길이 아닌 잘 포장된 시멘트길이라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날 삼년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그 옛날 적들이 올라야했던 길이 아니라니 적장의 마음으로 삼년산성을 바라보자 생각했던 나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요즘 부쩍 험한 길을 많이 다녀서인지 단숨에 오를 수 있었다. 5~10분여를 걸어 도착하니 삼년산성의 입구. 아무리 평화의 시대라고 하지만 철옹성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어서야.

▲ 적장의 눈으로 바라본 성벽 ⓒ 최지혜


입구를 향하고 봤을 때 오른쪽으로는 회색빛깔의 성벽이, 왼쪽으로는 흙색빛깔의 성벽이 둘러져있다. 우(右)는 리모델링된 새것이며, 좌(左)는 예전 그대로의 성벽인 듯 하다. 역시 옛것 그대로가 더 운치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쌓인 돌들의 모양도 새로 쌓은 성벽은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너무 반듯해 재미가 없다.

반면, 흙빛의 돌들은 제각각의 모양과 크기를 뽐낸다. 이게 진짜다. 삼년산성은 애초에 돌들을 쌓기만 해서 축조된 것이 아니다. 우물정자의 형태로 돌을 가로 세로 엇물려서 쌓은 것이라고 하니 흔히 즐기는 보드게임 '젠가'라는 것이 불현듯 떠오른다. 또한 수평을 잡기 위해 틈에 맞게 손으로 직접 돌을 다듬었다.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천만개 정도의 돌을 다 직접 다듬었다니 그 정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1톤 트럭으로 대략 25만대의 분량이라니 그 양이 짐작이나 되는가?

함께한 여행작가는 그 돌들이 하나하나 모두 사랑스럽다며 성벽에 대고 볼을 비벼댄다. 옛 신라인들의 정성이 그저 아름답단다. 온몸으로 그곳을 느끼고 있는 그 역시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다.

▲ 서문의 흔적 ⓒ 최지혜


성벽을 올려다보며 걷느라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다. 문이 세워져 있던 흔적. 삼년산성을 누구도 범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절벽 위에 지어졌다는 점도 크지만 무엇보다 각기 다른 4개의 문 때문이라는 것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삼년산성에는 정문인 서문을 비롯해 동문, 남문, 북문 이렇게 4개의 문이 있으며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것도 있다.

KBS 역사스페셜을 참고하여 이 4개의 문에 대해 잠깐의 이야기를 해본다. 우선 정문격인 서문의 특징으로 바깥쪽으로 쌓여진 옹성을 들 수 있다. 문을 방어하고 성벽 위에 군사들을 배치해 아래쪽을 공격할 수 있어 1차방어에 유리하게 된다. 또한 놀라운 것은 그것을 뚫고 문까지 도달했다 하더라도 서문은 쉽게 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은 잡아당겨야 열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이것은 그 당시 성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설사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고 해도 바로 앞엔 연못이라 물 속으로 풍덩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현장을 직접 보니 그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야심차게 달려왔을 적군들의 당황하는 기색들이 역력해 살짝 실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발굴작업이 한창인 동문터 ⓒ 최지혜


서문이 있으면 동문도 있는 법. 동문은 그 형태가 남아있지 않고 현재 추가발굴 작업으로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 하지만 조사에 의하면 Z자 모양으로 꺾인 형태로 역시 쉽게 진입이 불가하다고 한다.

북문은 또 어떠한가. 북문은 문 앞에 두 개의 석축을 쌓아 S자형으로 길을 틀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시간을 잡아먹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는 동안 적들은 위에서 쏘아대는 불화살에 몸을 맡겨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남문이 있다. 남문은 문이라기보다는 창문에 가깝다. 성벽 위에 매달린 문을 오르기 위해서는 5m이상의 사다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4개의 문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고심하여 이 성벽을 쌓았는지 알 수 있다. 굳이 성을 한바퀴 다 둘러보아야 할 이유가 생겼는가? 입구에서 사진만 대충 찍고 돌아간다면 이런 흥미로운 사실들을 직접 확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삼년산성을 내려오는 길 피처럼 붉게 물든 하늘이 처연하다 ⓒ 최지혜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성벽길을 따라 둘러볼 만하다. 멀리 보은평야가 펼쳐진 모습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다. 그곳 역시 신라와 백제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으며 그 흔적으로 말무덤이 남겨져있다고 한다. 역사의 한페이지로 살짝 들어가보는 기분도 신선하다. 중간중간 허물어져 있는 성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 한구석도 함께 무너져내리는 듯 처연함이 밀려온다. 한때는 한 나라를 지켜낼만큼 위압적이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게 느껴져 슬퍼지기도 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황제와의 회담장소로 선택할 정도로 신라의 자랑이었던 그 위풍당당한 산성이 이제는 슬쩍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삼국 중 가장 약체로 평가받던 신라를 당당하게 지켜준 삼년산성. 그곳을 돌아 내려오는 길, 하늘이 물들어간다. 그곳에 뿌려졌던 수많은 군사들의 피처럼 붉게.
덧붙이는 글 http://dandyjihye.blog.me/140118451422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