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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학교 다녀봤지만... 결론은 "나랑 안 맞아"

제도학교 한 달 체험기

등록|2010.11.21 17:06 수정|2010.11.21 17:06
* 이 글은 제도 학교를 한 달 다닌 뒤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쓴, 일 년 전의 글을 조금 고쳐 쓴 것이다. 자칫 내가 다닌 제도학교를 비난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좋은 담임선생님도 계셨고 좋은 친구들도 많았다. 다만 내게 제도학교가 참 맞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고, 그리고 교육을 꼭 학교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은 것이다.... 기자주 

1. 나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만 열두 살이다. 학교라면, 엄마가 산골공동체배움터라는 아주 작은 산골대안학교를 꾸리고 계셔서 그곳에서 한 경험이 전부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제도학교를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릴 때는 약 3년 동안 엄마를 따라 7개국의 공동체 마을과 대안학교들을 보고 배우며 다녔고, 그 후로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 있던 어머니의 실험적인 학교가 지금 살고 있는 산골로 합쳐져서 몇 해 동안 대안학교처럼 상설로 열려 형아, 누나들과 함께 공부하며 약 4년을 보냈다. 이후 아예 집에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홈스쿨링을 해오고 있다.

2. 난 한동안 혼자 공부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지식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인간관계를 잘 익히지 못하지는 않을까?", "커서 친구가 없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래서 엄마께 제도학교에 다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엄마는 먼저 제도학교를 체험해 보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먼저 제도학교 일일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체험한 학교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자그마한 초등학교였다. 마침 엄마가 그 학교 선생님들께 하는 강의가 있어 가게 됐는데, 거기는 시골이라서 애들도 착하고, 순했고, 학교도 2층 규모로 큰 규모가 아니어서 딱 우리가 다니고 싶은 학교였다. 다만 문제는 너무 멀어서 현실적으로 약간 불가능한 면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가 처음으로 제도학교를 가는 것이었으므로 정말 긴장되고, 떨렸다.

하필 그 날이 영어말하기 대회가 있는 날이어서 나는 하나도 준비를 안 해갔지만 그래도 당장 그 자리에서 영어로 몇 마디를 했다. 그러자 다른 애들이 발표할 때는 박수 한 번 치지 않던 애들이 갑자기 선생님까지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날 약간 배려해 준 듯했다.

그 다음 수업은 다행이도 내가 대충은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발표를 할 때, 학교를 다니는 자기들보다 낫다고 "아~혈압 오른다"라고도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 학교를 온 친구에게 그 아이들이 참 따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작은 학교여서 분위기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장 재밌었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학교 도서관에서 했던 영어수업이었다. 나는 교재가 없어서 그냥 친구들을 도와주고, 그리고 말하기 같은 것들을 했는데 애들이 "야~ 너 영어 되게 잘한다"라고 했을 정도다.

솔직히 나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애들이 많이 잘하지 않아서 그냥 평균 정도의 실력이 나온 것이다. 어쨌건 애들이 교재로 뭘 하는 시간에 나는 현지 영어교사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데도 영어를 할 줄 알고, 또 잘 알아들어서 놀라워하는 눈치였다(나중에 엄마한테 와서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작아서인지, 애들이 착해서인지 아무튼 정말 재밌었고, 즐거웠다. 이 학교를 가봄으로 인해서 나는 제도학교가 꼭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애들에 비해서 많이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 점 역시 있다는 생각도 했다.

두 번째로 하루 체험해 본 학교는 내가 사는 군의 한 초등학교였다. 같은 군인데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1시간 거리다. 저번에 한번 제도학교를 체험해 봤던 터라 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

수업은 매우 재밌었다. 하지만 이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드디어 학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학교가 가기 싫어진 거다. 저번 학교에 비해서 조금 크니까 그만큼 훨씬 더 행정적이고 조직적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너무 재미가 없었고, 아이들이 많은데도 외롭기도 했다.

이때부터는 학교를 다녀보겠다는 내가 학교를 다니지 말자고 하고, 엄마가 학교를 다녀보자고 하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엄마는 사회를 경험해 보고 친구도 좀 사귀며, 세상에 대해서 좀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를 학교에 보내려는 것이었고, 나는 우리 집 만으로도 사회이고, 친구들이야 엄마가 꾸리는 학교에 오는 친구들도 많고, 세상에 대한 것은 차차 알면 된다고 생각해서 학교를 다니지 말자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때로 부모의 뜻을 따라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엄마 뜻을 따라서 5학년 2학기를 제도학교에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3. 난 먼저 5학년 수학능력이 되는지 알아보는, 나한테 부담되지 않는 쉬운 시험을 보고(공부 정말 많이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역시 학교는 다니기 싫은 곳이었다. 첫 개학날부터 "이제 하루 다닌 건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한 학기를 버틸지 정말 걱정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그동안 공부하는 게 재밌고 좋았는데, 즐거운 공부가 학교를 가니 즐겁지가 않았다.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 찾아가며 하다가 앞에서 선생님이 다 가르쳐주고 있으니 재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둘째, 아무래도 제도교육은 틀이 짜여 있고, 그 틀 안에 학생을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학생에 따라 다른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학교에서 만들어주는 틀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즉 학교가 너무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교육을 좀 재밌고 신나게 해야 하는데, 수준도 맞지 않고, 그냥 공부도 시험 잘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데, 그 재미가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셋째, 급식도 힘들었다. 음식을 자기 양에 맞게 덜 수도 없고, 남기기가 뭐해서 별로였다. 밥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텐데…….

넷째, 학교에 가서는 외롭기도 했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고, 모르는 공간에 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을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학교가 학생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고, 좀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째, 정말 이해가 안가고, 이상하며, 진짜 어이없는 일이 학교에 있었다. 바로 애국조회다. 땡볕에 학생을 세워놓고, 막 "정렬!" 등을 하는 게 진짜 싫었다. 가뜩이나 힘든데, 정말 날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애국조회도 '세뇌'인데 정부가 앞장서서, 변질된 이상한 사회주의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군국주의 시대의 유물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니…….

여섯째, 애들은 다 일기를 제출해서 검사를 한다고 한다. 난 그게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내가 쭉 일기를 잘, 제대로, 빠짐없이 써왔는데, 검사를 한다는 건 선생님이 날 못 믿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리고 검사를 맡으면 일기가 솔직해지지 못할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난 일기가 내 추억을 보관하는 상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검사를 받으면 그렇지 않아질 것 같아서이었다. 지금도 왜 일기를 제출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글쓰기가 필요하면 주제를 주고 글쓰기를 하면 될 것이다.

일곱째, 너무 피곤하고, 적응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내 흐름과 학교의 흐름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여덟째, 6년 동안 CD롬 한 장도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꽁꽁 매어두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똥도 못 누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를 가서 문제집을 그대로 칠판에 쓴 것을 다시 공책에 옮겨 적고, 하루 종일 수업하고, 방과 후 공부 또 하고, 집에 가서 숙제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학교가 그런 목적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겠지만 나는 참 제도학교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학교는 학생을 규격품처럼 만들지 않으면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학교가 행정적이고 제도적인 규정 안에서만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정말 오히려 똑똑한 아이들을 판에 찍어서 바보로 만드는 일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와 자유를 주면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되고, 더욱 더 아이들이 똑똑하고 사람다운 어른으로 자라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에서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장점도 있기는 하다.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 사회적 행동의 기준을 배워 비사회적인 행동들을 덜하게 되었고, 단체생활을 경험해 본 것, 그리고 실험 등을 직접 해봐서 못해봤던 경험을 하게 된 것과 영어, 수학 등을 많이 쓰고 연습해 봐서 실력이 많이 는 것 등이 있었다.

내가 제도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그동안 제도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다니는 애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제도학교를 다니는 애들보다 더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사유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제도학교는 나에게 너무 힘들고, 맞지 않고, 적응이 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타고난 내 본성인지, 아니면 홈스쿨링을 하면서 몸에 익고 마음에 다져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4. 그리하여 결국 어머니, 아버지하고 가족회의를 해서 5주째에 그만 다니게 되었다. 마지막 날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포옹도 하고 했다. 사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너무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친해진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게 많이 서운했다. 그렇지만 학교야 다시 다니면 되고, 엄마 아빠가 같이 선택해주신 것이니까 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만난 어른들 말고도 엄마 아빠를 비롯해 내가 만나는 많은 어른들과 내가 읽는 책이 좋은 선생님들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나는 예전같이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이곳 농사도 돕고, 어머니가 하시는 일도 돕고, 그리고 공부도 해나갈 것이다. 머리로 하는 공부 못지않게 몸으로 하는 공부도 중요하다. 공부도 너무 느긋하게 하지 않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며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역 도서관에 나가서 하던 서예, 문인화도 계속 열심히 할 것이고, 피아노 연습이나, 교과학습 같은 것 등도 꾸준히 할 것이다.

내 꿈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꿈은 정치인, 고고학자, 경제학자, 과학자, 기업경영인, 프로그래머 등이다.

정치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우리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국민에게 이롭고, 민주적이고,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 까닭은 고고학자가 되면 여러 가지 고대유물들을 볼 수 있고,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볼 수 있으며, 또 재미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역사를 알면 거기서 얻은 지혜로 더 잘 살 수 있다.

경제학자가 되고 싶은 것은 내가 경제에 관심이 많고, 그쪽 분야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아서이다. 사실 경제가 재밌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잘 먹이는 경제구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부터는 앞으로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써 나갈 생각이다. 즉 차차 '실력'을 키워나갈 것이란 말이다. 교육이란 사람의 참다움을 배우고,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후회되지 않고,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남을 사랑할 줄 알고, 은혜를 잊지 않으며, 뭐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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