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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불법에 대한 저항이지 '강도질'이 아니다

[주장] '기무사 사찰' 피해자 안씨의 2심 판결을 보고

등록|2010.11.22 13:44 수정|2010.11.22 15:36
지난 11월 1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재판장 이성호)는 강도상해죄로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았던 안중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검찰에 의해 기소된 특수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는 1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고, 2심 역시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안씨가 폭행을 행사한 혐의는 인정되어 공동상해죄 취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석방하였다.

안씨는 2009년 8월 3일 평택역에서 쌍용자동차 관련 민주노총 집회에서 캠코더로 사찰하던 국군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를 폭행하고 캠코더 테이프와 메모리칩, 신분증, 수첩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올해 5월 구속기간 만기로 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 7월 23일 의정부지법 합의 11부(임동규 부장판사)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에 대해서는 무죄, 캠코더와 신분증 등을 빼앗은 혐의로 강도상해죄에 대해서는 징역 3년 6월의 유죄가 선고되어 법정 구속되었다.

항소심 판결로 강도상해죄와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안씨는 신 대위를 때리기는커녕, 붙잡지도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 상고심을 통해 진실 공방을 더 이어가야 할 것이다.

안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기는 했지만 그에게 강도상해 죄를 뒤집어 씌우고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1심 판결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권활동가라는 직업상 이런저런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직접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서야 할 때도 있고 진정인의 사건을 방청하거나 주요한 인권침해 사건의 재판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은 중요한 업무의 한 부분이다.

멀게는 60년대부터 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군사정권하에서 고문과 협박으로 날조된 조작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억울한 진실이 밝혀지며 모두 무죄판결을 받는 장면들도 목격했고, 대학 학생회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적단체의 일원이 되어 어이없는 국가보안법 옥살이를 한 경우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판결처럼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사건은 처음이다. 억압받는 노동자들과 소외받는 이웃의 편에서 살던 한 대학생을 하루아침에 강도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루아침에 강도가 되어 버린 친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당과 일부 여당의원들이 특별검사제도까지 도입하자고 하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파동이 알려지기 전, 지난해 8월 불법 민간인 사찰사건의 '원조'격인 국군기무사의 민주노동당 당직자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이 있었다. 당시 평택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강제진압 항의집회를 은밀하게 촬영하고 있던 한 남성에게 참가자들이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참가자들이 그의 수첩과 신분증 등을 확인하여 그가 국군기무사 신아무개 대위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캠코더에는 후에 민주노동당 당직자로 밝혀진 한 사람의 일상을 촬영한 동영상과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찍은 동영상이 있었다고 한다. 또, 수첩과 서류들에서는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민간인들의 행적이 날짜별, 시간대별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군사법원법 44조 '군에 관련한 첩보 수집 및 수사'로 법률에 의해 제한되어있는 직무범위를 넘어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명백한 불법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신 대위를 폭행하고 카메라를 빼앗았다며 강도상해 혐의로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대학생 안씨의 경우가 앞에서 언급한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판결이다.

의정부지법은 안씨에게 적용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면서도, 신 대위의 팔을 꺽고 폭행하고 그의 가방에서 국군기무사 소유의 캠코더와 메모리칩, 신대위의 수첩, 신분증 등을 강취하였으며 반성의 기미가 없어 실형을 선고한다고 판결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진보정당의 당원이며 대학생인 안씨가 백주대낮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회 장소에서 생면부지의 주변사람들과 공모하여 신아무개 대위를 협박하고 구타한 후, 그의 캠코더와 수첩, 신분증 등을 '강도질' 했다는 의정부지법의 판결은 국민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다.

집회에 참석하러 갔던 대학생이 강도가 된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들을 모아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요일 아침 TV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이야기가 아닌가? 안씨는 수사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집회에는 참석하였지만 신 대위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신 대위의 물건을 빼앗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신 대위의 증언 외에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를 적용할 수가 없게 되자 어이없게도 강도상해죄를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성적인 판결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총리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의 수사가 흐지부지 되고 있는 것이나, 여당의 유력정치인들이 불법사찰의 피해를 입었다며 전면에 나서도 꿈쩍 않는 정보기관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가 공권력에 의한 불법 민간인 사찰에 얼마나 관대한가를 알 수 있다.

군사정권시절부터 수없이 반복된 일들에 대해 불감증이 생긴 것은 아닌가하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여기에 법원마저도 이로 인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절망적이다.

정부기관과 그 소속 공무원들의 활동은 법률에 근거해야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안씨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백번 양보하여 신 대위의 캠코더와 수첩 등이 민주노동당에 인계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자체'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안씨가 신대위의 불법 활동에 대한 증거확보 차원에서 한 일이고, 공공의 안전과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동일 것이다. 공권력은 온갖 편법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에게 소환장이며, 벌금고지서를 날려대면서 그러한 불법을 저지하고 폭로하기 위한 국민의 저항을 '강도질'로 만들어 옥살이를 시켜 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정의와 양심을 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항소심에서나마 1심 판결의 잘못을 바로잡고 기무사의 불법사찰을 인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강도'가 되어 1년이 넘게 재판을 받고 두 차례나 구속이 되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안씨의 세월과 억울함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무리한 기소를 감행한 검찰과 억지 판결로 한 청년의 인생을 망칠 뻔했던 1심 재판부는 안씨에게 정중히 사과해야한다.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공무원의 품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면 미안하다고 안씨에게 문자라도 한 통 보내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강도상해'의 피해자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불법사찰을 당하고, 이메일과 휴대전화가 감청되고, 공항을 지날 때마다 벌거벗겨져야 하는 국민이다.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배후를 캐는 나라, 강도상해의 피해자가 국민이면 강도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지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덕진 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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