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혓바닥으로 쓸어내리는 그 맛, 참 좋은데...

손 편지 부치러 우체국에 갔더니, 우표 대신 스티커

등록|2010.11.24 11:46 수정|2010.11.24 11:46

대구의 벗에게 보내는 연서.. ⓒ 조상연


작년 여름이었던가? 석류 속살처럼 상큼한 인연들이 생겼다. 연애시절에나 써보았던 편지가 오가기 시작했는데 워낙이도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핑계 김에 만년필도 하나 샀다. 그래도 손 편지는 만년필로 휘갈겨 써야 손맛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쓰는 대부분의 손 편지는 소포와 함께 보내져서 우표를 붙일 일이 별로 없었다.

며칠 전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소녀에게서 온 편지의 답장을 토요일 써놓고 우체국이 문을 닫아 못 부치고 있다가 어제 아침 우체국을 찾았다. 우체국을 시도 때도 없이 하도 들락거려 우체국장님이나 직원 분들하고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

"오늘은 소포가 아니네. 연애편지 써 오셨어?"
"예."
"우리 우체국에 손 편지 쓰는 사람이 세 분 계시네요."
"그러세요?"
"두 분은 칠십 가까운 노인네예요."
"예, 우표 주세요."

우표를 달라고 했더니 우표가 아닌 스티커 한 장을 붙여놓고 됐으니 가란다.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우표에 침 발라 붙여야 편지모양이 나지 이게 무슨 편지냐"며 발을 동동 굴렀더니 우표가 있기는 있는데 요즘은 이렇게 한단다.

우표는 간 곳 없고 웬 스티커?. ⓒ 조상연


다음부터는 우표를 드릴 테니 직접 침 발라서 붙이시란다. 가만히 지켜보던 우체국장님이 웃으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며, 우체국도 옛날의 그 우체국이 아니라 자기도 많이 서운하단다. 그러시냐며 씨익 웃고 나오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덕분에 우표만 오천원 어치를 사가지고 나왔는데 스무 번은 편지를 쓸 수 있는 양이다.

우표를 혓바닥에 얹어서 쓸어내리면 알싸한 향의 뒷맛에 '에퉤퉤'를 해가면서도 그 쓴 맛의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상대방의 모습을 그리며 편지를 쓰는 맛도 좋지만 혓바닥에 얹어놓은 우표에서 묻어나오는 쌉사름한 맛도 일품인 것이다. 편하게, 편하게? 도대체 어디까지 가서 어떻게 해야만이 편하게라는 말이 수그러들지 모르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