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학교 뒤에 포탄 떨어져...섬에 돌아가지 않겠다"

연평도 주민 346명, 해경 경비정 타고 인천항 도착... "밤새 너무 추웠다"

등록|2010.11.24 11:17 수정|2010.11.24 21:05
play

폐허된 연평도 민가... 주민340여명 새벽 대피해경은 24일 북한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연평도 민가의 사진과 새벽에 대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영상 - 해양경찰청 제공> ⓒ 이종호


[2신 : 24일 오후 3시 50분]

"학교 뒤에도 포탄 떨어져... 밤새 너무 추웠다"

▲ 24일 오후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이 해경 경비정에서 하선하고 있다. ⓒ 최지용


아이를 가슴에 품은 젊은 엄마와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은 남성들이 줄지어 경비정에서 내렸다. 커다란 짐가방을 든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맨손이었다. 선착장에서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백여 개의 카메라 렌즈였다. 주민들은 빽빽하게 모인 기자들 속에서 어렵게 가족들을 찾았다. 선착장에 나와 이들을 기다리던 뭍에 사는 친인척들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한의 폭격이 있은 지 만 하루가 지난 24일 오후 1시 40분경, 346명의 연평도 주민을 태운 해경 경비정 두 대가 인천항 해경부두에 도착했다. 500톤급과 300톤급 경비정에 나눠탄 주민들은 해경들의 호위를 받으면 경비정에서 하선했다.

주민들은 영락없는 전쟁 피난민의 모습이었다. 고령의 노인들, 초중고 학생,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9명의 부상자도 포함돼 있었다. 어깨 탈골과 이마가 찢어지는 등 부상을 입은 주민들은 몹시 피곤한 표정으로 배에서 내렸다. 이들을 이송하기 위해 선착장 위쪽 주차장에는 구급차 6대가 대기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24일 오후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이 해경 경비정에서 하선하고 있다. ⓒ 최지용

경비정에서 내린 주민들은 아직까지 폭격당시의 공포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연평도 주민 함아무개(55, 어업)씨는 "다시 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어떻게 들어가겠냐"라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두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43)씨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이 걱정이다"라며 "집도 정리하고 짐도 가지고 나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그곳에서 다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섬에서 나와 사는 일이 막막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섬에) 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포격을 맞은 섬의 상황을 상세히 전하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김아무개(61)씨는 "포격 당시 하루에 한 번 있는 여객선이 나가는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부두에 나와 있었고 어업을 나간 배는 많지 않았지만 갯벌에 굴을 따러 나간 사람들도 있어 마을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라며 "그래서 민가에 폭탄이 십여 발 떨어졌지만 인명피해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두 자녀와 함께 섬을 빠져 나온 이아무개(36, 민박업)씨는 "집이 세 채가 있었는데 민박을 하는 집이 완전히 무너졌다"라며 "다행히 손님이 없었지만 큰 일 날뻔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쾅' 하고 문을 세게 닫는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난다"면서 아직까지 포격으로 인한 후유증이 있어 보였다.

섬을 빠져 나온 주민들 중에는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랐다. 무서웠다"라고 말하며 취재진을 피해 선착장을 빠져나갔다.

학교 인근에도 포탄 떨어져... 어린 학생들 추운 대피소에서 밤 보내

▲ 24일 오후 연평도를 빠져나온 주민들이 해경 경비정에서 하선하고 있다. ⓒ 최지용


연평면 마을에 떨어진 포탄은 학생들이 수업중인 학교도 피해가지 않았다. 연평도에 있는 연평초등학교, 연평중고등학교 인근에도 포탄이 떨어진 것.

연평중학교 3학년 이아무개(15) 학생은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학교 전산실에서 친구들과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왔다"며 "선생님이 대피소로 가라고 해서 모두 밖으로 나와 대피소로 향하는데 학교 건물 뒤에도 (포탄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군은 이어 "포탄이 떨어져 큰 소리가 났고 학교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라고 전했다. 당시 45명의 학생이 이군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군은 또 "마을이 불바다가 됐다. 집들이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나 TV에서 보는 전쟁터 같았다"며 "친구들과 대피소에서 밤새 이야기 하며 보냈다. 몹시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연평초등학교 인근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박아무개 학생(연평초5)은 "수업 중에 포탄이 떨어져 엄마가 있는 대피소로 갔다"며 "학교 유리창이 깨졌고 아이들이 모두 울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오후 3시 즈음에도 주민들을 실은 해군 공기부양정이 해경부두 바로 옆 해군기지에 도착했다. 이 배에는 모두 179명의 주민들이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500여 명의 주민이 섬을 빠져 나옴에 따라 현재 연평도에는 400여 명의 주민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뭍으로 보내고 남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섬에 남아 무너진 집을 정리하고 구호작업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도 섬을 떠나기를 원하고 있어 곧 해군 경비정과 해군 함정을 이용해 주민 대부분이 연평도를 빠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시청은 주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동인천역과 인천버스터미널로 가는 관광버스 8대, 미니버스 2대를 준비했다. 또 인천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찜질방 '인스파월드'를 임시숙소로 정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3시 30분 현재 대부분 주민들은 친척집 등 연고지를 향해 떠났고 주변 찜찔방으로 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 1신 수정 : 24일 낮 12시 50분 ]

▲ 24일 오전 옹진군청은 전날 오후 북한군의 포격으로 대피호로 피신한 연평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 옹진군청 제공


북한이 포격한 다음날인 24일, 날이 밝자 다수의 연평도 주민들이 섬을 빠져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은 이날 오전 8시경 주민 341명을 태운 해양경비정 두 척이 연평도를 출발했다고 밝혔다. 주민들을 실은 경비정은 오후 1시 30분시경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로 들어올 예정이다.

연평도와 인천항 사이는 여객선으로 2시간여 거리지만, 경비정은 여객선보다 속력이 느리고 많은 인원이 탑승해 안전상의 이유로 천천히 운항하고 있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포격 첫날 200여 명의 주민이 여객선과 어선을 이용해 섬을 빠져나온 것에 이어 총 500여 명이 육지로 이동하게 됨으로써, 연평도에는 900여 명의 주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일 낮 12시 30분에 연평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은 오전 10시 현재까지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해경 관계자는 "여객선 운항은 경찰이 아니라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통제하고 있으며, 배 운항이 장기간 중단될 경우 언론 통제 논란의 여지가 있어 곧 언론의 출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는 오전 내내 연평도 구호를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100여 명의 경찰이 동원돼 두 대의 경비정에 구호물품을 실어 날랐다. 해경은 어제(23일) 1차 구호물품을 투입한 데 이어 이날 이불, 치약, 양말, 생리대 등 구호품이 들어 있는 상자 2000개를 실은 경비정을 오전 10시 30분경 연평도로 출발시켰다.

이 배에는 끊어진 무선통신을 복구하기 위해 각 통신업체의 기술인력 40여 명이 동승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현장에 가봐야 알겠지만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 24일 오전 옹진군청은 전날 오후 북한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 옹진군청 제공


▲ 24일 오전 옹진군청은 전날 오후 북한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연평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 옹진군청 제공


송영길 시장 "주민들이 나가고 싶어 한다"

밤사이에도 구호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23일 비상식량과 의료품을 들고 현장을 방문한 송영길 인천시장은 이날 오전 YTN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연평도 주민들이 있는 대피소 시설이 낙후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주민들도 대피 명령으로 피신한 상황이지만 그곳 역시 대피소 시설이 좋지 않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 시장은 이어 "소방대원들을 투입해 진화 중이라 민가들은 대부분 진화가 완료됐지만 5가구 정도가 전소됐다. 산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송 시장은 "긴급 식량이 제공됐지만 주민들이 불안한 심정으로 대피해 있다. 전부 인천으로 가고 싶어 한다"며 "해양경찰청의 도움으로 일부 인천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여객선 출항이 현재 허용되지 않아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 여객선 출항에 대해 군에서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민간의 지원도 시작됐다. 인천적십자는 23일 1차 구호품을 전달한 데 이어 이날 오전 5시 30분 물 3000병, 컵라면, 양초, 구급낭, 빵 등 의료품과 비상식량 등을 긴급 지원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두 번에 걸쳐 지원물품이 전달됐고 추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식당차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며 "가능하면 복구 인력까지 지원하기 위해 인천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24일 오전 해경이 인천항 해양경찰 전용부두에서 연평도로 가는 경비정에 구호물품을 싣고 있다. ⓒ 최지용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