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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대법원 판결,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주다

인권·민중의 따스한 삶 배어 있는 진정한 법 세우기 위해 노력할 때

등록|2010.11.24 17:59 수정|2010.11.24 17:59
11월 11일 대법원은 용산참사사건 철거민들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표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농성 중인 철거민들에 대해 경찰은 단 하루 만에 폭압적인 진압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철거민 5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었고 수많은 철거민들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진압작전이 정당한 공권력행사라는 제1심 및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화재의 원인에 관해서도 철거민들이 망루 내부에서 던진 화염병 때문이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 경찰의 강제진압은 적법함이 보증되었고, 결국 용산참사사건 망루농성 철거민들만이 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용산참사사건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강제진압의 적법성 여부였다. 누가 진짜 범죄자인가를 가르는 기준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당시 망루농성으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심각한 침해의 가능성이 인정되고 당시의 현장 상황을 고려할 때 경찰의 강제진압이 "현저히 합리성을 갖추지 못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제1심 및 항소심법원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강제진압을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인정했다.

나는 수긍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의 법학적 양심에서는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에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먼저 경찰권발동의 요건인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심각한 침해가능성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자. 검찰은 용산참사사건 직후부터 줄곧 철거민들을 거리에 많은 화염병을 투척해 시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테러범으로 몰아가는데 골몰한 바 있다.

하지만, 망루농성 철거민들은 경찰의 비호 아래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물대포를 쏘는 철거용역들에 대항하여 화염병을 몇차례 던지고 경찰의 강제진압이 임박하자 경찰을 향해 화염병 등을 몇 차례 투척한 것이 전부이다. 철거민들은 경찰 및 철거용역회사 직원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도 건물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화염병 투척 등 대항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의 건물 난입 시도 등이 없었던 동안에는 화염병 투척도 없었다. 그들은 공공의 안녕을 심각하게 해치는 범죄자가 아니라, 재개발 과정에서 강제퇴거로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것뿐이다. 그들은 결코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범죄자가 아니다.

다음, 대법원의 판단처럼, 경찰의 진압업무의 경우 진압의 시기나 방법 등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재량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용산참사사건에서 경찰이 보여준 강제진압이 과연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강제진압과 같은 국가공권력의 행사는 적법한 요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이는 법치주의의 지엄한 요청이다.

적법성원칙과 비례성원칙에 어긋나는 폭력적 진압은 불법적인 공권력행사로서 국가의 폭력행위이자 시민을 향한 테러행위이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횡포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이것을 최종적으로 보증하는 기관이 바로 사법부이다. 비록 경찰의 강제진압에 어느 정도의 재량적 판단이 인정되더라도 그 재량의 일탈 여부는 엄격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경찰비례의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제1심 법원과 항소심법원 그리고 대법원 모두 경찰권 발동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의 판시대로 하면, 경찰은 진압장비를 다소 불충분하게 갖추었더라도 상관없으며, 1차 진입 후 화재의 위험에 대한 대책도 없이 곧바로 2차 진입을 지시한 것도 당시의 현장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판결은 국가의 폭력적인 공권력행사에 대한 사법부의 통제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민의 상식으로 보자

건전한 시민의 상식으로 판단해 보자. 경찰은 당시 망루 안에 시너 등 다량의 인화물질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화재발생에 대비한 안전조치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채로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설득과 대화의 노력도 없었다. 경찰은 남일당 건물 옥상을 장악하고 철거민들이 모두 망루 안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망루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1차 진입) 일단 건물 옥상으로 철수한 것이 2009년 1월 20일 07:00-07:10경.

망루 안으로 다시금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2차 진입)이 1월 20일 07:18경인데, 화재참사는 2차 진입시 발생했다. 이미 1차 진입 때 철거민들이 경찰특공대원들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이로 인해 망루 안팎에서 크고 작은 불길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이미 망루 화재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우리의 상식에 부합한다.

망루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 2차 진입은 좀 더 신중했어야 마땅하다. 이미 건물 옥상을 경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철거민들은 망루 안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극렬한 저항이 예상되고 화재의 위험도 충분히 인지한 마당에 과연 그토록 무지막지하고 성급하게 2차 진입작전을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고 봐야한다.

나중에 공개된 2,000여 쪽 수사기록을 보면, 경찰 간부들은 "철거민들이 그렇게 위험한 인화물질 등을 다량으로 소지하고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면 강제진압을 중지시켰을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경찰간부들의 고백은 특히 2차 진입작전이 비례성원칙을 위반한 것이었음을 시인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사법부(항소심 법원)는 이러한 진술을 경찰간부의 단순한 의견차이일 뿐이라고 관대하게 봐주고 있다.

강제진압은 국가의 공권력 행사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것이다. 그러한 만큼 가장 엄격한 법치주의의 잣대를 적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법부는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해 다른 어떤 공권력행사보다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니 이번 판결은 가히 '법치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법하다. 법치주의와 인권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에서 국가폭력에 대하여 이처럼 관대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고 또 우려스럽다.

나는 망루농성 철거민들이 진짜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민의 생존권 보장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거대자본의 이익만을 위해 재개발사업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 '법질서 확보'라는 미명 하에 철거민들의 망루농성을 도심테러범으로 규정짓고 살인적인 진압을 감행한 경찰, 수사기록조차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검찰, 이들이 용산참사사건의 주범이다.

유엔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물론 우리 헌법도 주거권 및 생존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유엔인권위원회는 적절한 주거권보장의 대안 없이 세입자들을 강제퇴거시키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선언하고 있다. 강제퇴거로 생존권박탈의 위기에 처한 이들이 선택한 마지막 외침의 수단이 망루농성이었다. 반면에 그들의 생존권의 외침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철거민들을 못 잡아 안달인 철거용역업체 사람들을 비호한 것은 바로 경찰이었다.

살인진압을 적법하다고 보증한 사법부

백번 양보하여 철거민들의 망루농성이 주거침입, 업무방해, 폭처법위반 등의 범죄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들을 도심테러범으로 간주하여 살인적인 진압작전을 수행한 경찰의 공권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2009년 1월 20일의 진압작전보다 더 무지막지한, 더 폭력적인 진압작전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사람이 있노라고 외치기 위해 망루를 지은 그들이었다. 각목 들고 물대포를 쏘는 철거용역업체 사람들에게는 화염병을 던졌지만 길가는 시민들이 있으면 멈춘 그들이었다.

경찰은 철거민들의 마지막 생존권의 외침마저 철저하게 막기 위해 단 하루만에 전격적으로 강제진압작전을 감행했다. (경찰은) 망루 안의 인화물질로 인하여 섣불리 진압작전을 수행할 경우에 화재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망이나 상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염병을 소진하도록 유도하는 등 사전적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로, 온갖 무지막지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전격적으로 진압작전을 감행했다. 이쯤 되면 시민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관심조차 없는 살인진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살인진압마저 사법부는 적법성의 보증을 해주었다.

사법부의 법적 판단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그 법적 판단이 편파적인 진실의 왜곡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리고 국가의 폭력적인 공권력행사에 관대해지는 순간법은 법이 아니다. 시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에서 멀어지는 순간 법은 진실을 거부하는 수단이 될 뿐이고 시민을 향한 국가의 테러행위를 미화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원리에 터 잡은 진정한 법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의 민주화 노력에도 인권과 민중의 따스한 삶이 배어 있는 진정한 법을 세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이제 시작일 듯싶다.
덧붙이는 글 이호중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운영위원이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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