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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털기 (100) 리理

[우리 말에 마음쓰기 959] '여길 리', '알 리' 다듬기

등록|2010.11.25 12:07 수정|2010.11.25 12:07
- 리理 : 남자로 여길 리, 알 리가 없다

.. 내가 무슨 소문을 퍼뜨릴 염려가 있길 하나, 게다가 누나들은 어쨌든 나를 식물인간으로 생각했지 남자로 여길 리 만무할 테니까 … 두 분은 나를 사랑하긴 해도 진정으로 나를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리가 없다 ..  <테리 트루먼/천미나 옮김-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책과콩나무,2009) 75, 83쪽

'염려(念慮)'는 '걱정'이나 '근심'으로 다듬고, '만무(萬無)할'은 '없을'로 다듬으며, '진정(眞正)으로'는 '참된'이나 '참으로'로 다듬습니다. '절대(絶對)'는 '조금도'나 '끝내'나 '하나도'로 손봅니다. '식물인간(植物人間)'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겠으나 '풀사람'이나 '풀(꽃) 같은 사람'처럼 손질하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소문(所聞)' 같은 낱말은 한자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말로 녹아든 들어온 말일 텐데,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로 손질해 주어도 잘 어울립니다.

 ┌ 리(理) : '까닭', '이치'의 뜻을 나타내는 말
 │   - 그럴 리가 없다 / 도와줄 리 있겠소? /
 │     문은 잠겨져 있었으므로 나갔을 리 만무다 /
 │     비밀을 그의 처에게 고백하지 않았을 리 또한 없을 터였다
 │
 ├ 남자로 여길 리 만무할 테니까
 │→ 남자로 여길 까닭은 없을 테니까
 │→ 남자로 여길 일은 없을 테니까
 │→ 남자로 여기지 않을 테니까
 └ …

"그럴 리 없다"처럼 쓰는 말투에서 '리'가 한자말임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있기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텐데, '리(理)'라는 한자말이 우리 말투에 스며들기 앞서 우리 스스로 어떻게 말을 하며 살았는지를 떠올릴 만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어린 나날부터 "그럴 까닭 없다"라는 말투하고 "그럴 리 없다"라는 말투를 함께 들었습니다. 두 갈래 말투를 쓰는 사람을 어찌저찌 나눌 수는 없습니다만, 이 갈래이든 저 갈래이든 뜻은 같으며 느낌 또한 같습니다. 다만, 서로 쓰는 말투가 다를 뿐입니다.

학교에서 우리 말을 가르친다는 국어교사이든 한문을 가르친다는 분이든, 우리가 알맞고 올바르게 가다듬거나 추스를 말투를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어른을 만나기란 몹시 힘들었습니다. 아니, 아예 없었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어른들은 언제나 대학입시 지식만을 다루고 집어넣어 주려 했습니다. 삶을 가꾼다든지 삶을 북돋운다든지 삶을 살린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어깨동무하며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럴 리가 없다
 │→ 그럴 일이 없다 / 그럴 까닭이 없다 / 그럴 수가 없다 / 그럴 턱이 없다
 ├ 도와줄 리 있겠소
 │→ 도와줄 일 있겠소 / 도와줄 까닭 있겠소 / 도와줄 턱 있겠소
 └ …

우리는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든, 베트남이나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한국땅 시골로 시집온 아가씨이든,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한국땅에 돈을 벌러 왔다가 뿌리를 내린 이주노동자 또한 한국사람입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말을 해야 할 텐데, 우리는 우리가 나누는 한국말을 어떤 모양새로 돌보거나 다루거나 어루만지고 있는지 곰곰이 돌아본 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흔한 말로 '얘기만 되면(의사소통만 되면)' 그만이라 여기지 않나 궁금합니다. 알맞게 쓸 말과 글을 배우려고 생각하는 우리들인가요? 올바르게 가눌 말과 글을 익히려고 땀흘리는 우리들인지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자리에서 배우거나 익힐 말이며 글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깨띠를 매든 머리띠를 하든 주먹 불끈 쥐든 떨쳐 일어나며 학교 앞에서 싸움판이라도 벌여 우리 아이들이 허튼 지식쪼가리에 얽매이지 않도록 애써야 할 노릇입니다.

참으로 우리들은 우리 말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찌어찌 쓰고 있습니까.

 ┌ 앞으로도 절대 알 리가 없다
 │
 │→ 앞으로도 조금도 알 길이 없다
 │→ 앞으로도 하나도 알 수가 없다
 │→ 앞으로도 끝내 알 턱이 없다
 └ …

'까닭'과 '길'과 '수'와 '턱', 적어도 이렇게 네 가지 말씀씀이가 있습니다. 어쩌면 '理' 하나를 덧붙여 다섯 가지 말씀씀이를 펼친다면 내 말투가 더 넓어진다(표현력이나 언어구사력이 다양해진다)고 느낄까요. 책을 읽는 일을 두고 '책읽기'라고 하면 모자라다고 느끼니까 '讀書'라고도 하고 'reading'이라고도 해야 '표현 다양성'을 살리는 셈이 되는가요.

내 말길을 트거나 내 글결을 북돋우는 일이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삶을 가꾸며 내 넋을 일구는 일이란 어떻게 가다듬어야 하는가 곱씹어야 합니다. 내가 쓰는 낱말 숫자를 늘린다면 내 말길이 환하게 틀는지요. 내가 다루는 낱말 가짓수가 많아야 내가 펼치는 글결이 한결 넉넉하거나 좋거나 아름다울는지요.

 ┌ 나갔을 리 만무다 → 나갔을 까닭 없다 / 나가지 않았다
 └ 고백하지 않았을 리 → 털어놓지 않았을 까닭 / 입을 다물고 있을 까닭

말다운 말을 하도록 힘쓰면서 생각다운 생각을 하도록 애쓸 우리들입니다. 생각다운 생각을 하면서 삶다운 삶을 일구도록 땀흘릴 우리들입니다. 글다운 글을 쓰도록 마음을 쏟으며 글다운 글 한 줄에 우리 슬기와 사랑이 고루 깃들도록 생각을 바칠 우리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와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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