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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왜 파업 벌이게 됐나

[취재수첩] 무리한 폭행·연행이 예상 못한 공장 점거 파업 불러

등록|2010.11.26 18:49 수정|2010.11.26 21:32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고 있어요."

지난 15일이다. 오전 9시가 체 안 된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울산지역 노동계 인사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지난 15일 오전 울산 북구 효문동 현대차 시트1공장 앞에서 경찰과 현대차비정규직이 대치하고 있다. 8시 30분쯤 경찰은 취루액을 발사했다 ⓒ 울산노동뉴스



그의 말에 따르면 오전 6시 30분쯤 울산 북구 효문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시트1공장 안에서 폐업에 반발하는 하청업체 동성기업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됐는데, 이들을 지원하러 나온 민주노총 조합원 등에게 최루액이 발사됐다는 것. 그는 "급히 현장에 나와서 취재해달라"고 재촉했다.

순간,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골리앗투쟁, 현대차노조투쟁 등으로 강성노동자의 이미지가 강한 울산이지만, 취루탄이나 취루액이 발사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년도 더 된 것 같다. 그런데 취루액이 발사됐다고 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확대 간부들과 민주노총 상집자 등은 이미 사태가 난 시트1공장을 출발했다. 이들은 최근 새로 난 오토밸리 도로를 점거해 울산공장이 있는 동쪽으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 10시쯤 현대차 울산공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시트2공장 부근에 다시 집결했다.

당시 확대 간부를 제외한 현대차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2시간 잔업 거부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공장 점거 전면파업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법 판결 이후 300여 명이던 조합원이 급속히 늘었다지만, 2000명도 안 되는 비정규직노조가 5만 명에 가까운 정규직노조도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공장 점거 파업을 감행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기 때문.

오전 10시쯤 시트2공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동성기업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심하게 폭행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10여 명의 노동자가 다치고 5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고 했다. 쇠로 된 자재로 맞아 맞아 피를 흘린 조합원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노동계는 물론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가 술렁였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오후 2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비정규직에 가해진 폭행에 항의, 집회를 연다는 문자메시지가 올 즈음 다시 긴급히 전화가 왔다. 오후 1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1, 2공장에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는 것. 이렇게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은 시작됐다.

이후 경찰이 15일 진압에 대비해 며칠 전에 미리 작성한 대책문건도 나왔다. 이날의 무리한 진압을 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파업 시작은 둘 중 하나로 비롯됐다. 회사측이 강제진압하면서 파업을 유도, 비정규직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려 했거나, 혹은 본보기로 동성기업 노동자들을 강제진압해 아예 비정규직의 기를 눌리려 했다는 것. 후자대로라면 회사는 '이렇게 해도 설마 비정규직들이 공장 점거까지야 하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파업 일지
- 7월 22일  대법원 3부 "2년 이상 일한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판결"-이후 조합원 급증
-11월 12일 서울고법 민사2부 "2년 이상 근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판결", 비정규직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 가결
-11월 15일 시트공장 하청업체 동성기업 폐업 강행, 항의 조합원 폭행연행
-11월 15일 오후 1시 비정규직노조 공장 점거 파업
-11월 17일 2,3공장 파업조합원 연행
-11월 18일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가족대책위 구성
-11월 19월 15일 연행 당시 비정규직 폭행 당하는 동영상 공개
-11월 20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중 비정규직노동자 분신
-11월 21일 민주노동당 전국 당원 2000명 현대차 울산공장 거리행진
-11월 26일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 300여명 1공장 점거 파업 12일째. 금속노조와 현대차정규직노조 전 조합원 잔업거부


누구도 생각 못한 점거 파업, 절박함의 증거

▲ 지난 24일 현대차울산공장 정문앞에서 열린 금속노조확대간부 파업에 참가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 박석철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300여 명이 26일로 12일째 울산1공장 점거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연일 현대차 회사 측의 교섭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에서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울산공장 정문앞에는 철야농성을 위해 천막을 설치한 단체가 늘고 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사태를 보면 지난 2007년 6월, 해고에 맞서 이후 15개월간 농성을 벌인 이랜드그룹 산하 홈에버 울산점 비정규직 아줌마들이 떠오른다. 당시 회사 측은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해 길고 긴 농성 투쟁의 불을 지폈다.

"반찬값 벌려고 매장에서 일하는 아줌마" 정도로 치부됐던 이들의 끈질긴 투쟁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이었다. 아줌마들은 15개월이나 찬 땅바닥에서 농성하며 정규직을 외쳤고, 결국 2008년 11월 홈프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이들 중 일부가 정규직으로 계속 근무하게 된 것.

당시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지내며 아줌마들의 투쟁을 지원했던 하부영씨. 그는 또 다른 민주노총 간부 등 두 명과 함께 이 일로 불구속 재판 중 법정구속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그는 파업이 시작된 15일 저녁 "앞으로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예견은 며칠 뒤 그대로 적중했다.

보수언론을 비롯한 지역언론들이 15일 이후 "파업손실 눈덩이처럼 불어" "파업 손실금액 1000억원 넘어" "검찰, 불법파업 엄중 대처"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반면 "왜 현대차 비정규직은 파업을 벌이게 됐나"는 원인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이런 것들을 예견했다.

파업시작 며칠 뒤, 보수단체와 친기업단체, 경제계의 "파업 중단 촉구" "파업으로 인한 경제 침체 심화" 등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린 것도 그가 예견한 일정표 중 하나였다.

▲ 보수단체 및 친기업단체로 구성된 행울협이 지난 23일 오전 울산 북구 양정동 현차 울산 4공장 문앞에서 파업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울산노동뉴스



이에 반해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자기 자식도 비정규직일텐데" "손실금액 1000억원이면 정규직화 해도 될텐데"라는 성명서가 이어진 것도 예견 중 하나다.

사실 말이 노동자의 도시이지 울산에서 민주노총으로 표방되는 노동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노동계 스스로 "시민지지율이 3~5%대"라고 말할 정도다. '파업' 이라는 뉴스와 기사가 나오면 "또 파업이냐"는 시민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다른 것 같다. 최근 나온 울산사회조사연구소의 시민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73.9%가 '현대차가 교섭에 나서라'고 한 반면 '강제해산'을 바라는 시민은 3.4%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를 대변해 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정규 확대를 우려하고 비정규직의 처지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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