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분 토론>을 책으로 만나다
[서평] <한겨레> 이창곤 기자가 쓴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프롤로그
안병직 "저런 국가와 어떻게 상대를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백낙청 "남북 사이에 느슨한 연합제도라도 만드는 것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말해주시겠습니까?"
…
안병직 "연합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백낙청 "아니, 내가 지금 당장 연합이 된다고 했나요? 왜 이렇게 못 참고 …"
'잃어버린 100분 토론'을 다시 보는 듯했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맛보지 못했던 진보와 보수의 맨 얼굴"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화려한 '타이틀전', 7라운드 모두 쟁쟁한 '패널'들
<한겨레> 이창곤 기자(전 기획취재팀장·논설위원, 현재 영국 연수 중)가 최근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도서출판 밈)를 펴냈다. <한겨레> 독자라면 친숙할 제목이다. 창간 22돌 기획으로 지난 5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를 그대로 옮겨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제목이다. 그 '무게감'을 일곱 논쟁에 나눠 실었다.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급격하게 떠오른 '선진화와 복지국가'의 충돌은 물론, 사회 양극화, 성장 전략, 사회 민주화, 정치 개혁 등 '오늘'을 관통하는 주제를 고루 다뤘다.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1라운드'를 시작으로,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과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의 7라운드에 이르기까지 '패널' 또한 쟁쟁하다. 여기에 다시 김호기 교수 등 전문가 7명이 논쟁 해설자로 가세했다.
독자 이해 높이기 위한 탄탄한 구성 돋보여
하지만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와 같은 '타이틀'이 아니다. 일단 신문기사를 적당히 '가공'한 재활용품이 아니다. 위 '프롤로그'에서 드러나듯 '원본(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신문을 통해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토론의 생생함을 되살려냈다.
그 구성에 있어서도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각 논쟁의 '예고편'격으로 저자의 '논쟁 이해'가 실려 있으며,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논쟁 해설'이 따라 붙는다. '경기'를 재미있게 즐기기에 탄탄한 구성을 갖춘 셈이다.
충실한 각주 역시 논쟁의 이해를 돕는다. 일상에 쫓기는 독자가 모를 만한 말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상당히 절묘하다. 그 문장이나 전달력에 있어서도 무슨 논문처럼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다. 상당히 친절한 편이다.
다만 일부 논쟁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된 바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사회자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편차'로 보인다. 토론의 성패가 진행자에 따라 확연히 엇갈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진보 대 보수라는 틀이 사실을 드러내기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음'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특히 "진보 대 보수라는 틀이 사실을 드러내기보다도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학자나 지식인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에 대해 정말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면서 '너는 진보를 대표하고, 나는 보수를 대변한다' 그런 식으로 자기 위안을 하거나 미화를 하고 넘어가는 데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가 쓰입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미래 논쟁'도 이 책의 백미로 꼽힌다. 무엇보다 '다름과 같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충돌이 미래를 향해 이뤄져야 한다"는 저자의 기획의도가 잘 나타나는 대목이다. 박 이사장의 '밑줄' 한 대목도 소개한다.
"자유라고 막 떠들면서 몰려다니다가, 나중에 방향성이 없으면, 성숙한 자유가 못 되고, 우파든 좌파든 선동에 의해 쉽게 움직여버리는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적 콘텍스트 없이는 미래에 대한 사명감이 안 나옵니다. 그런 속에서 발랄함만 있으면 쉽게 내적 공허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집단적 내적 공허감, 그때 등장하기 딱 좋은 게 파시즘이고 볼셰비즘입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연일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어떤 신문은 사설을 통해 적의 불법적 도발에 대해 그들의 숨통을 끊어 응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과 안병직 이사장의 토론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논쟁에서 잘 나타나지 않던 남북관계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다름'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이 때,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같음'은 무엇일까.
안병직 "북한은 사정이 어렵습니다. 때릴 데가 별로 없습니다. 남쪽은 산업화가 잘 되어 있고 지상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북한은 무력을 잔뜩 축적하지 않았습니까? 서로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이 받을 상처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백낙청 (천안함 정부 발표)"그 진실성을 신뢰하는 안 교수께서 '전쟁은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그야말로 합리적 보수의 태도가 아닌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를 읽고 나면 도달하는 간단한 결론이다.
안병직 "저런 국가와 어떻게 상대를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백낙청 "남북 사이에 느슨한 연합제도라도 만드는 것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말해주시겠습니까?"
…
안병직 "연합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백낙청 "아니, 내가 지금 당장 연합이 된다고 했나요? 왜 이렇게 못 참고 …"
'잃어버린 100분 토론'을 다시 보는 듯했다. 저자의 표현 그대로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맛보지 못했던 진보와 보수의 맨 얼굴"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화려한 '타이틀전', 7라운드 모두 쟁쟁한 '패널'들
▲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표지 ⓒ 도서출판 밈
결코 가볍지 않은 제목이다. 그 '무게감'을 일곱 논쟁에 나눠 실었다.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급격하게 떠오른 '선진화와 복지국가'의 충돌은 물론, 사회 양극화, 성장 전략, 사회 민주화, 정치 개혁 등 '오늘'을 관통하는 주제를 고루 다뤘다.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의 '1라운드'를 시작으로,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과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의 7라운드에 이르기까지 '패널' 또한 쟁쟁하다. 여기에 다시 김호기 교수 등 전문가 7명이 논쟁 해설자로 가세했다.
독자 이해 높이기 위한 탄탄한 구성 돋보여
하지만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이와 같은 '타이틀'이 아니다. 일단 신문기사를 적당히 '가공'한 재활용품이 아니다. 위 '프롤로그'에서 드러나듯 '원본(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신문을 통해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토론의 생생함을 되살려냈다.
그 구성에 있어서도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각 논쟁의 '예고편'격으로 저자의 '논쟁 이해'가 실려 있으며,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논쟁 해설'이 따라 붙는다. '경기'를 재미있게 즐기기에 탄탄한 구성을 갖춘 셈이다.
충실한 각주 역시 논쟁의 이해를 돕는다. 일상에 쫓기는 독자가 모를 만한 말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상당히 절묘하다. 그 문장이나 전달력에 있어서도 무슨 논문처럼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다. 상당히 친절한 편이다.
다만 일부 논쟁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된 바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사회자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편차'로 보인다. 토론의 성패가 진행자에 따라 확연히 엇갈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진보 대 보수라는 틀이 사실을 드러내기보다도..."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밈> 제공 ⓒ 한겨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음'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특히 "진보 대 보수라는 틀이 사실을 드러내기보다도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학자나 지식인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에 대해 정말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면서 '너는 진보를 대표하고, 나는 보수를 대변한다' 그런 식으로 자기 위안을 하거나 미화를 하고 넘어가는 데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가 쓰입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미래 논쟁'도 이 책의 백미로 꼽힌다. 무엇보다 '다름과 같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충돌이 미래를 향해 이뤄져야 한다"는 저자의 기획의도가 잘 나타나는 대목이다. 박 이사장의 '밑줄' 한 대목도 소개한다.
"자유라고 막 떠들면서 몰려다니다가, 나중에 방향성이 없으면, 성숙한 자유가 못 되고, 우파든 좌파든 선동에 의해 쉽게 움직여버리는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적 콘텍스트 없이는 미래에 대한 사명감이 안 나옵니다. 그런 속에서 발랄함만 있으면 쉽게 내적 공허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집단적 내적 공허감, 그때 등장하기 딱 좋은 게 파시즘이고 볼셰비즘입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 과도한 보정으로 이른바 '뽀샵' 논란을 불러일으킨 24일자 <조선일보> 1면 ⓒ PDF
연일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방송에서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는가 하면, 어떤 신문은 사설을 통해 적의 불법적 도발에 대해 그들의 숨통을 끊어 응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과 안병직 이사장의 토론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논쟁에서 잘 나타나지 않던 남북관계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다름'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이 때,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같음'은 무엇일까.
안병직 "북한은 사정이 어렵습니다. 때릴 데가 별로 없습니다. 남쪽은 산업화가 잘 되어 있고 지상에 올라와 있기 때문에, 북한은 무력을 잔뜩 축적하지 않았습니까? 서로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이 받을 상처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백낙청 (천안함 정부 발표)"그 진실성을 신뢰하는 안 교수께서 '전쟁은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그야말로 합리적 보수의 태도가 아닌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를 읽고 나면 도달하는 간단한 결론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