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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김호기 교수의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2 ③]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등록|2010.11.28 14:09 수정|2010.11.28 14:09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로 인한 대규모 방사능 오염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서부 유럽의 국가들은 동부 유럽에서 오는 야채들을 모두 수입 금지 시켰습니다. 야채뿐만이 아니죠. 젖소들은 풀을 먹습니다. 풀에 묻은 방사능 물질이 들어가니 우유도 마실 수 없어요. 어린 아이들은 놀이터에 나가서 모래장난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고는 소련이 쳤는데 모든 나라가 위험을 공유하게 됐습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세계적 위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 이것이 위험사회입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불평등을 얘기하는 집회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데,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는 백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던 걸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분석을 빌려 답해 보자면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평등이나 계급의 문제보다도 위험이나 안전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열린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 2' 세 번째 강의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교재로 과학기술 발전이 낳은 위험사회의 양상과 대처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는 생태주의적 사고와 성장주의적 사고가 갈등을 빚었던 국책사업들이 대부분"이라며 "개인의 성찰과 하위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벡의 위험사회 처방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평등보다 안전이 더 중요한 '위험사회'

▲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1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사회학 고전 읽기 - 생태위기와 한국사회'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권우성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오늘날 위험사회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최근 사회학 분야에서 가장 대중적인 학자로 꼽히고 있는 벡은 이 책에서 산업사회에서 위험사회로의 변환과 사회의 개인주의화가 증가하면서 생겨난 현상들을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분석하고 있다. 

벡의 '위험사회'란 위험이 사회의 중심적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한다. 여기서 '위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하며, 최초 진원지에 국한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위험사회에서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위험에 대한 의식이 더욱 고조되며 '안전'이라는 가치가 '평등'이라는 가치보다 우위를 차지하면서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재가 된다.

"서구적 문맥에서 볼 때 근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평등입니다. 그런데 이제 안전이 그것들보다 더 중요해졌습니다. 벡은 이러한 변화를 짚으며 마르크스와 베버가 쌓았던 '계급사회'라는 견고한 사회분석적 틀이 위험사회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존의 사회적 궁핍이 계급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반면 위험은 계층을 가리지 않아요. 지난 2008년, 다양한 한국 시민들이 처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던 이유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지요."

증대된 위험은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벡의 <위험사회>가 갖는 의미는 산업사회에서 위험사회로의 전환을 강조할 뿐 아니라 위험사회가 가져오는 개인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벡에 따르면 위험사회 속 개인은 개인주의의 발달로 높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과거보다 선택의 폭이 넓지만 모든 위험과 불안을 자기가 감당해야만 하는 처지다. 김 교수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며 "자기 삶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 알려주는 경영 전문서가 많이 팔리는 것도 위험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적극적 참여만이 위험 막는다

벡은 위험사회와 개인주의 발달에 대한 해법으로 현대적 기술 및 과학에 대한 성찰적 반성과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하위정치(sub-politics)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생태학 등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현대 과학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생겨났다는 증거"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환경·평화·반핵운동 등을 통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정치적 참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걸고 졸속협상을 했고 야당도 처음에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럴 경우 국민이 의사당 밖에서 운동을 벌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식이 없는 것이죠. 벡은 지구적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정치적 개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벡은 <위험사회>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서 <지구화>라는 책에서 위험사회의 해법으로 거시적 차원의 글로벌 민주주의와 하위정치의 활성화를 내놓고 있다"며 "그가 유럽연합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기업이 싼 임금을 찾아서 포르투갈이나 그리스에 공장을 세운다면 독일의 노동조합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우므로 국가의 틀을 넘어선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한국 사회 역시 벡의 위험사회론에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장주의와 생태주의의 갈등, 부모세대들보다 인생 선택에 있어 월등한 자유를 갖는 '촛불 2.0 세대'의 등장 등 한국 사회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한국 사회에 유효한 대응책으로 시민 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꼽았다. 그는 "최근 G20기간 중 한·미 FTA가 결렬된 그 1차적 이유는 시민사회로부터의 압박 때문이라고 본다"며 "이러한 영향의 정치가 실질적인 정치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강의를 마치며 "정치적 운동 이외에도 공동체 운동 같은 경우 불안한 개인들에게 연대·유대의식을 느끼게 하고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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