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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던 '부엌협약' 세계적 명성 얻은 까닭

[유러피언드림-사회협약의 나라 네덜란드⑫]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등록|2010.12.04 16:04 수정|2010.12.06 15:35
<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 네 번째 대상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집단들의 평화로운 합의'를 이루어낸 '사회협약의 나라' 네덜란드다. 미국식 소득의 양극화 없이 고용성장을 이룬 인간적인 모습의 사회협약모델을 심층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 98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올해 9월 30일 본위원회 모습. ⓒ 노사정위원회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제도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탄생과 약동의 시기가 있는가 하면 침체와 해체의 시기도 있다. 노사정위원회로 대표되는 한국의 사회적 대화도 생로병사의 숙명을 타고 났다. 탄생 초기의 열망과 지지는 희미한 기억으로 사라지고 최근에는 '식물 노사정위원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한국의 사회적 대화는 이미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고, 새 정부의 등장은 대화체제의 해체를 재촉할 수도 있었다. 노동부의 존폐가 논의되고 대부분의 대통령자문위원회가 문을 닫는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의 사망을 예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사정위원회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법과 한국노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별도의 독립된 법으로 그 지위가 보장되어 있는 데다가 한국노총-한나라의 정책협약은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약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한동안 노사정위원회에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대량 실업의 공포가 밀려오면서 노사정위원회는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협약기구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워크셰어링을 골자로 하는 노사정위원회의 2009년 일자리협약은 가능하면 사람을 자르지 않고 위기를 넘겨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영-미 모델과 달리 노조를 개혁의 동반자로 인정한 네덜란드 모델

▲ 네덜란드 헤이그의 TNT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 ⓒ 조명신

사회적 대화의 모델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도 한때 지금 우리의 사회적 대화기구처럼 무기력증에 빠진 경험이 있다. 바세나르협약 이전의 사회적 대화는 그야말로 깊은 침체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대방에게 책임 떠넘기기와 보여주기 식의 대화가 판을 쳤다. 노동재단과 사회경제위원회(SER)는 대화만 무성하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함으로서 오히려 개혁을 지체시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82년의 바세나르 협약은 침체기의 무기력과 냉소를 일소하는 사회적 대화의 일대 혁신이었다. 빔 콕 당시 노총위원장은 대타협의 주역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임금삭감과 근로시간 단축을 묶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타협안은 일방적인 노동시장유연화와 구조조정에 대한 참신한 대안이었다. 이런 유형의 합의는 노사관계의 일대 혁신이었고, 고질적인 유럽의 고용위기에 대한 노동조합의 능동적인 대처였다.

네덜란드의 사회협약 모델은 1980년 대 후반에 이르러 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호주로 확산되며 영⋅미식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두 모델은 구체적인 정책 내용보다 추진방식에서 달랐다. 세계화의 충격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영미형은 노동조합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돌진형 개혁의 길을 갔다면, 네덜란드형은 노동조합을 개혁의 동반자로 끼고 가면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한다는 식이다.

OECD 모든 국가들이 1980년대 이후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 노동⋅복지개혁에 몰두했던 것은 다 마찬가지였다. 다만 네덜란드의 경우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조합의 임금양보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절충안을 만들었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서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정책이라는 타협안을 창안했던 것이 차이다.

깊은 불신과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사회적 대화기구가 일거에 네덜란드 경제기적의 일등 공신이자 세계의 대안모델로 떠오르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경제위기와 고용위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노사정 리더십의 의기투합이 있었고, 의욕이 넘치는 젊은 총리와 노총위원장의 등장은 무엇인가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결단은 단순했다. 1982년의 대타협은 경총 회장과 빔콕 노총위원장이 경총 회장의 집 식탁에 마주 앉아 임금과 근로시간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때 맺은 둘 간의 합의문은 반쪽 분량의 메모에 불과했다. 합의메모를 기초로 양 측의 협상팀이 구체 협약안을 다듬어가는 일은 절차에 불과했다. 반대파들이 바세나르협약을 '부엌에서 맺은 협약'(kitchen accord)이라고 조롱했지만 이것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에는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바세나르협약이 네덜란드모델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의 임금삭감 결단 때문이다. 이 양보를 고리로 하여 근로시간 단축과 고용창출 그리고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의 합의 패키지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 계속되는 네덜란드의 사회협약의 핵심에는 워크셰어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임금과 근로시간을 주고받는 식의 일자리 창출 비법은 적어도 이번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사회적 대화 모델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

한국의 사회적 대화도 15년여의 짧지 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1987년의 정치민주화와 1997년의 외환위기와 같은 커다란 정치경제적 변화를 거치며 노사관계도 요동을 쳤지만 그 때마다 노사정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노동법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한 '따라잡기 노동개혁'(catch-up reform)에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특히 노동법 개정은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 속설을 증명하듯이 지난 20여 년간 항상 노사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주요한 노동법 개정을 철저하게 사회적 대화의 틀 속에서 추진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사회적 대화 기반이 그렇게 허술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양적으로도 매우 풍부한 대화 경험을 축적했다. 1996-1997년의 노동법 개정과 1998년의 사회적 대타협, 2003년의 근로시간 단축과 2006년의 비정규직 보호법 등의 법개정 경험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일자리 중심의 사회협약과 대비되는 한국적 특성이다. 2004년과 2009년에 있었던 일자리 협약은 미약하나마 한국 사회적 대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사정위원회 경험은 일본⋅중국⋅베트남⋅몽고 등에서 벤치마킹하는 모범사례가 되었다.

노동조합의 조직체계를 보거나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볼 때 한국의 정치사회 구조는 사회적 대화에 매우 척박한 토양이다. 그럼에도 OECD 국가에서 특이할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사회적 대화의 전통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한국사회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밑으로 부터의 민주화 개혁이 있었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운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성장한 강한 노동운동의 존재로 인하여 정부가 일방적인 돌진형 개혁이 아니라 대화하고 타협하는 개혁방식을 선택해 왔다고 하겠다.

사회적 대화의 생로병사를 결정하는 두 가지 변수

▲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화'는 30년간 정치 경제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네덜란드의 행정수도 헤이그 시내 모습. ⓒ 조명신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의 값진 과거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사정위원회는 지금 새 정체성을 찾아야 할 역사적 전환기를 맞았다고 봐야 한다. 사회적 대화의 생로병사를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 변수다. 하나는 제도적 안정성이고, 둘째는 여론의 지지다.

이 점에서 영국과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화는 좋은 비교대상이다. 영국은 1970년대 화려한 사회협약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1980년대 침체기를 거쳐 1990년대 초 제도적 해체의 길을 걸었다. 이에 반하여 네덜란드는 극적인 반전에 성공하여 이후 30년간 사회적 대화는 네덜란드 정치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바세나르협약을 전후하여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변화가 있었다면 국민적 지지와 기대가 달라졌을 뿐이다. 한국의 사회적 대화도 그 선택의 기로에 섰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13년을 미뤄오던 전임자⋅복수노조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타협의 해법을 마련했다는 것은 노사정위원회가 내세울 수 있는 최근의 가장 큰 공적이다. 특히 전임자⋅복수노조 제도의 정비는 한국의 사회적 대화뿐 아니라 전체 노사관계에 하나의 전환기적 의미를 갖는다.

복수노조⋅전임자 제도의 정비를 끝으로 1987년 이후 매년 반복되던 노동법개정투쟁도 끝이 났다. 노사관계 민주화 의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동시에 그동안 한국의 사회적 대화를 꽃피웠던 핵심 의제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법 개정은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특성이자 노사정위원회의 일용할 양식과도 같았다.

앞으로 사회적 대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하는 문제는 무슨 의제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법이 정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기관사명은 근로자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사회 정책에 대하여 협의하는 것과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것이다. 지금 근로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는 누가 뭐라 해도 일자리 부족과 일자리의 질적 악화이다. 즉 고용위기이다.

임금과 근로시간 유연화로 고용위기-비정규직문제 해결해야

정부는 마침 지난 10월 '2020 국가고용전략'을 발표했지만 명실상부한 국가전략으로 평가받지는 못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3분기 고용실적이 개선되면서 정부가 당초 가졌던 문제의식이 많이 퇴색한 상태에서 그냥 밀린 숙제를 마지못해 한듯하다. 그렇다보니 고용전략의 메뉴도 과감하고 참신하지 못하다. 더구나 정부는 국가고용전략을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리지도 않았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고용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지금의 고용위기는 이번 경기회복으로 극복될 수 없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위기의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 정책만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위기도 아니다. 정부가 비록 2020년 70%의 고용률 달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10년 장기정책이라고 내세울 만한 정책메뉴는 없다.

명실상부한 국가고용전략이 되려면 3가지의 기조가 필요하다. 첫째는 고용문제를 경제사회정책의 중심에 놓고 고용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장기 구상이 제시돼야 한다. 성장과 고용의 복합전략뿐 아니라 고용과 교육, 고용과 복지의 융합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고임금-고복지-장시간노동의 노사 담합구조를 깨고 일자리 분배구조의 극심한 불평등을 시정하는 범사회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이를 위해 노사가 중심에 서되 대화와 타협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고용전략 차원에서 다뤄야 할 노동시장 개혁정책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임금⋅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하고 다양하게 개편하여 일자리의 분배구조를 보다 평등하게 재분배(워크셰어링)하는 것이다. 1997년 이후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직접고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정규직들과 고임-고복지-장시간 근로의 타협구조를 형성했다.

노동조합도 대기업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insiders)만의 담합에 탐닉해 왔다. 비정규직과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해고의 범퍼로 활용하면서 권리신장을 위한 이들의 노동조합 가입(또는 결성)에조차 대기업 노동조합은 소극적이었다. 이들의 조직화로 야기될 분배 몫 나누기를 꺼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대화와 타협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다.

연공임금체계와 노사 협약에 의한 정규직 중심의 연례적인 임금상승 압박은 장기고용을 위협하고 신규 일자리 창출을 줄이게 마련이다. 또한 사무 관리직과 연구기술직 등 화이트칼라의 만성적인 연장근로 관행은 한국기업의 비밀병기이지만 이 역시 매우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여성 취업과 일-가정 양립(work⋅life balance)을 방해한다는 차원에서 반사회적이기까지 하다.

임금과 근로시간의 유연화는 고용창출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기업의 고용 유연화 수요를 다양한 근무형태와 임금의 유연화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한국적인 문제에 대한 한국적인 해법이기도 하다.

남성 외벌이 모델에서 맞벌이모델로 근무형태와 생활 패턴을 바꿔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러한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화이트칼라에 만연하고 있는 서비스잔업(무보수 연장근로)관행이나 정액수당으로 연장근로수당을 가름하는 포괄역산의 임금지급 관행도 타파돼야 한다.

양대 노총이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먼저 요구해야

▲ 네덜란드의 사회협약 모델은 1980년 대 후반에 이르러 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호주로 확산되며 영·미식 신자유주의 개혁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 조명신


이러한 과제의 성격상 정부의 정책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파트너와의 협의와 공조가 필수적이다. 노동시장의 구조를 개편하고 유연안정성의 기조 하에서 사회안전망을 재설계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위원회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공론화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 편집증을 객관화하여 장시간-고임금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노사정위원회는 당분간 지나치게 합의도출이라는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좀 더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정책협의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정책협의 형식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2020 국가고용전략'은 좋은 정책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고용사정에 대한 진단과 중장기 전망에 대한 전문가보고서(wisemen's reports)를 작성하여 이를 기초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누가 첫 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고용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열 비밀의 열쇠는 노동조합 손 안에 있다. 바세나르 협약이 네덜란드 모델의 튼튼한 기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의 임금양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의 고급화를 위해 노동조합이 선택한 길은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양보였다.

한국이 아시아의 네덜란드 모델이 되려면 지금의 고용위기에 대한 한국적 노사타협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노동운동의 리더십의 몫이다. 양 노총이 워크셰어링을 내걸고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먼저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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