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상납·홍콩쇼핑...상류 로열층에게만 허용된 말
[서평] 대기업의 검은 뒷거래를 신랄하게 파헤쳐 준, 조정래의 <허수아비춤>
▲ 책겉그림<허수아비춤> ⓒ 문학의문학
사실 4·19혁명과 5·18 광주혁명이 없었던들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룰 수 없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은 희생자들이 있기에 이만큼의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경제까지 민주화가 되기에는 너무 아득하기만 하다.
그것이 겉과 속이 다른 한국의 현대사였다. 겉으로는 토실토실한 정치민주화를 만들어왔지만 그 속에서는 부패한 열매만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절차적인 민주화를 위해 달려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민주화가 되지 못한 것도 대기업들의 썩은 횡포와 검은 뒷거래들 때문이다.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조정래, 문학의문학)은 일광그룹을 빗댄 우리나라 대기업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강기준은 물론 박재우와 윤성훈 같은 핵심 참모들이 어떻게 남 회장을 보좌하는지 투명하게 그려낸다. 이들이 쓰는 말들은 전관예우, 스톡옵션, 편법·불법 상속, 차명계좌, 비자금, 상납, 홍콩 쇼핑 관광 등이다. 상류 로열층에게 허용되는 말이다.
책 속 일광그룹은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면서도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문화개척센터라는 게 바로 그것. 그것을 필두로 대학교에 몇백 억짜리 건물을 지어주고 사주의 이름값을 새겨 넣는다. 그 그룹 이름의 장학생도 선발하여 관리한다. 또한 전관예우 법조계 인사들과 퇴임기에 달한 고위공무원들도 그룹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곤 모든 조직원들을 머리꼭대기에서 감시하고 관리한다. 그것이 이제껏 그 기업이 주도한 성공신화였다.
그 아래 직원들과 구직 청년들은 어떨까? 사실 기업권력이 국가권력보다 한층 강화된 때이지 않던가. 당연히 국가는 기업의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 않겠는가. 그 아래의 직원들과 88만 원 젊은 세대들은 그 기업을 우상으로 삼지 않겠는가. 나이든 부모들은 그런 대기업에 들어간 자식들을 대견스럽게 여기지 않겠는가.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322쪽)
과연 경제민주화는 요원하기만 한 걸까? 이 책을 보니 그럴 것만 같다. 돈과 권력 앞에 자기 영혼을 파는 세상인데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책에도 나온 바 있지만 본래 억(億)이란 글자도 사람 인(人) 변에 뜻 의(意)자가 합해진 거라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실재하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만 담고 있는 수였다고 말이다. 그런 억만금들을 스톡옵션으로 뿌려댈 정도니, 우리 사회의 경제민주화는 정말로 아득하기만 한 건 아닐까.
물론 그것들을 바로 잡고자 전직 검사 정인욱과 해직 교수 허민이 시민단체와 함께 싸워나간다. 하지만 어떤가? 도덕성의 흠집과 함께 그들도 하나 둘 발걸음을 빼내지 않던가. 결국 대그룹과의 싸움은 골리앗에 맞선 다윗과 같은 꼴, 63빌딩을 계란으로 치는 꼴과 다름 없는 일임을 비춰준다. 그러니 불법상속과 불법승계가 확실한데도 우리의 법조계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 않던가.
잊지 말자. 아무리 정치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해도 경제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수 없음을 말이다. 그것 없이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언제나처럼 대기업의 허수아비, 곧 꼭두각시로 살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은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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