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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찜질방엔 안 오십니까?"

[진단] 연평도 주민 '인도적 지원' 절실...정부대책은 오리무중

등록|2010.12.01 10:12 수정|2010.12.01 11:48

▲ 북한의 도발을 피해 연평도에서 피난을 나온 주민들이 29일 오전 임시숙소인 인천 신흥동의 한 찜질방에서 힘겨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명과 재산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가운데, 행정안전부는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은커녕 지위에 관한 분명한 방침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지난 25일 옹진군청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에서 "연평도 주민이 이재민인지 피난민인지 개념 규정부터 해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요청"했지만 인천시는 행정안전부로부터 6일이 지난 30일 현재까지도 명쾌한 해답을 전달받지 못했다.

지난 23일 발발한 연평도 포격 사건 발생 8일째 인천시내 한 찜질방에서 집단생활 중인 연평도 주민들은 "우리가 짐승이냐"며 "현재 머물고 있는 찜질방을 대신할 수 있는 안정된 거처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 채 "관련 법이 없다"는 말만 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전쟁이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우리 정부는 남측에서 발생할 민간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련 법규를 마련해 놓지 않고 있었던 게다. 

행정안전부가 분명한 정부 방침을 정하지 못하자 인천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비상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임시주거시설...미분양APT, 공무원연수원 등 알아보고 있으나 대안은?

윤관석 인천시 대변인은 "북한의 포격도발로 연평도를 떠나 인천으로 대피한 1200명의 주민 중 약 400명의 주민들이 현재 찜질방에 머물고 있다"며 "이 분들에게 모텔 등 다른 시설 등을 마련해드렸지만 대책논의와 정보수집 등을 이유로 모여 있다"고 전했다.

인천시는 현재까지 섬을 떠나 대피 중인 연평주민들이 사용 중인 찜질방 사용비와 식대 등은 일괄 시비로 정산할 것이라며 옹진군 또한 주민 1명당 일일 5만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학생 이상에게는 100만원, 중학생 이하는 50만원의 긴급지원금도 29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윤 대변인은 또 "전체 대피 주민 가운데 자녀 140명 중 107명은 인천 서구 영어마을에서 5박6일짜리 영어캠프에 참여하고 있다"며 "12월 6일부터는 영종도 운남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이 불 타 옷가지나 신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섬을 떠난 청소년들이 옷과 신발을 새로 구비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 인천시는 30일 오후 4시 인천시내 3개 백화점으로 나누어 107명의 학생들에게 옷과 신발을 구입하도록 지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문제는 임시거주시설이라고 걱정했다. 윤 대변인은 "30여명으로 구성된 주민대책위와 함께 논의한 결과 이분들은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이주단지를 원하고 있다"며 "지역도 연평도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주민들의 입장에서 후보주택들을 물색 중"이라고 전했다. 이주단지를 원하는 주민은 전체 155세대. 이들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윤 대변인은 전했다.

우선 검토한 대상은 LH공사의 미분양APT.  김포 양곡지구 내 LH공사의 미분양APT를 권했으나 주민들은 연평도와의 접근성, 인천이 아닌 타 지역 등의 이유로 거부했다. 인천시는 공무원연수원도 임시주거단지로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불발됐다. 인천시 공무원연수원이 96실이라 155세대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데다 '단기 워크숍' 시설이라 일반인들이 거주하기에는 주변 편의시설 부재 등으로 선택되지 못했다는 것.

이 같은 임시거주시설을 마련하는데 드는 예산 또한 만만치 않다. 인천시는 최소한 20억 원의 중앙부처 예산이 뒷받침돼야 이 같은 임시거주시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거주시설 마련에만 20억 원이 소요되는 것이지 여기에다 가재도구나 가전도구 등까지 합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다.

▲ 29일 오전 연평도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인천 신흥동의 한 찜질방에서 인천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들이 연평도 주민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북한의 국지도발 민간피해, 정부대책은 전무하다"

윤 대변인은 "문제는 관련 법령이 전무하다는 점"이라며 "대북 군사적 충돌과 관련된 법규는 있지만 만일의 경우 발생할지도 모르는 민간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매뉴얼이나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서 상당한 보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가 북한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작계5029 등의 작전계획은 많이 연구하고 보완해왔지만 정작 남측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시 민간피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상정해놓은 게 없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이 점과 관련한 몇 차례의 문의에 대해 "관련 부서와 협의해 결정하겠다"는 애매한 답변만 쏟아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국 윤종진 자치행정과장은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금년 안에 쓸 수 있는 예비비와 내년 예산확보를 통해 정부가 법률상 지원할 수 있는 최대치를 지원할 것"이라며 "기획재정부 등 사업담당부서와 국고지원 등도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인천시는 행정안전부의 이 같은 행보에 답답증을 토로했다. 정부부처 간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총리실 산하에 (가)연평주민대책본부를 꾸리고 한시적인 TF를 통해 일을 풀어간다면 훨씬 빨리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정부가 왜 이 같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태도였다.

윤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 담화에서 분명히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는데 30일 오전 8시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와 관련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며 "연평도 주민이 피난민인지 이재민인지 그것부터 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윤 대변인은 "꽃게를 잡고 굴을 따며 평화롭게 살던 연평도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게 된 게 아니냐"며 "8일째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는데 중앙정부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해 일의 가속도가 붙지 않으니 지자체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라고 개탄했다.

무엇보다 윤 대변인은 "연평도 주민들이 이 대통령님은 왜 찜질방에 안 오시냐고 묻는다"며 "천안함 사건 때는 즉각 달려가 희생자들을 위로했는데 연평도 주민들에게는 왜 직접 찾아오지 않는 건지 묻고 싶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긴급한 위기에 섬을 떠나 대피 중인 국민들을 최고통수권자가 왜 외면하는지 궁금하다는 것.

▲ 북한의 도발을 피해 연평도에서 피난을 나온 주민들이 29일 오전 임시숙소인 인천 신흥동의 한 찜질방에서 힘겨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정전협정 이후 57년간 '국내 피난민' 법적 규정이 없다니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정부가 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적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연평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그에 준하는 인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차원의 중앙재난대책본부가 마련되는 것이 사태해결의 빠른 길이라는 게다. 그는 연평도 피해주민들에 대한 사회권적 기본권을 마련할 대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시현 건국대 법대(국제법) 교수는 "북한의 무력충돌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전시냐 준전시냐 천재지변이냐를 따지고 논하느라 연평주민의 인권문제를 뒤로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며 "국내 피난민(IDP : Internal Displaced Person)에 대한 인도적 지원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또 "정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 이후 57년간 긴급 대피한 국내 피난민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규정이 없다는 점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라며 "이들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회에서는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29일 '연평도 피해주민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평도 주민에 대한 이주대책과 지원내용을 수립하라는 게 법안의 골자다.

또 연평도 주민들의 생업이 중단됨에 따라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 긴급 생계지원, 주거 지원 등을 담았다. 핵심적으로는 연평도 주민들에 대한 주거와 의료, 교육에 대한 긴급지원, 사망하고 부상당한 민간인에 대한 보상근거 등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회 내부 논의과정에서 '서해5도 특별지원법'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도 필요하다는 주문이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 법의 제정을 핑계로 차일피일 연평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윤 대변인은 "연평도 주민들이 바라는 진정한 대책은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꽃게잡이를 하고 굴을 따는 것 아니겠느냐"며 "평화협정을 맺어 연평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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