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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다짐으로 맞서는 남·북녘이기 때문에

[책읽기가 즐겁다 387] 셋넷학교 엮음, <꽃이 펴야 봄이 온다>

등록|2010.12.02 13:39 수정|2010.12.02 13:39
― 꽃이 펴야 봄이 온다 (셋넷학교 엮음,민들레 펴냄,2010.2.27./9000원)


▲ 겉그림. ⓒ 민들레



<꽃이 펴야 봄이 온다>를 읽는다. 남과 북으로 갈라졌을 뿐더러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로 뿔뿔이 흩어진 채 살아가는 이 한겨레 조그마한 땅에서, 남녘땅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북녘땅 푸름이들 삶과 넋과 꿈이 무엇인가를 담은 조그마한 책.

<꽃이 펴야 봄이 온다>는 북녘땅에서 살다가 남녘땅에서 살아가는 푸름이들 삶과 넋과 꿈을 담는 가운데, 사이사이 '남녘땅 셋넷학교 교사 목소리'를 곁들인다. 교사란 아이들을 이끄는 사람이고, 교사란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아이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잘 알거나 많이 안다면서 이런저런 앎조각을 나누어 줄 사람이겠지.

지난 2007년에 나온 <금희의 여행>(민들레)이라는 책을 떠올린다. <금희의 여행>은 함경도 아오지에서 태어나 살다가 7000킬로미터를 거치고 헤치면서 남녘땅에 자리를 잡은 작은 아이 삶을 작은 아이 목소리 결을 고스란히 살린 이야기책이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 또한 아이들 목소리 결이 잘 살아나 있으나, 남녘땅 교사들 목소리가 섣불리 자꾸 끼어든다. 아이들 글을 읽거나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람기'와 같은 구경꾼 글을 끼워넣자면 맨끝에 몰아서 적바림을 하거나 아예 덜어야 하지 않았을까. 오늘 이 땅 이 둘레 사람들이 '다름을 안다지만 다름이 어떠한 다름인가는 모른다'고 한다면, 이들 푸름이들 목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들을 노릇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길·김영심·김하늘·박영명·박정혁·윤나영·최금희·하복란, 이렇게 아이들 이름을 당차게 적바림하고, 이 아이들 스스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곁이나 뒤에서 조용히 거드는 한편, 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어떤 꽃이 피어야 어떤 봄이 올까' 하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도록 이끌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 처음 버스를 탈 때 잘못 타게 되었는데 '푸른마을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물거리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국사람들이 순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것이 달라 있었다. 한국 아이들이 입은 옷도 나와 달라 보였고, 그들의 말투 행동도 달랐다. 내 고향 아오지와 전혀 다른 서울에서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 '도대체 왜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한 거야? 함경북도 아오지가 내 고향이라고 말하면 어때서?' … 차라리 굶더라도 북한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말하고 뛰어놀며, 어디를 가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어서 낯설거나 두렵지도 않았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 나 아오지 여자야. 그래서? 너희 한국사람들은 북한사람 사귀면 감옥에 가냐? 그게 그렇게 창피한 일이야?' ..  (19∼21쪽)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한테 꼬리표나 이름표를 붙이려 한다면 '탈북 청소년'이 아닌 '함경도 아이 아무개'라든지 '평안도 아이 아무개'라든지 '해주 아이 아무개'처럼 불러야 옳다고 느낀다. <꽃이 펴야 봄이 온다>라는 책을 살피면, 책날개에 아이들 소개하는 글을 적어 넣을 때에 '탈북 청소년'이라 하고 '아이들 학력'을 달아 놓았다. 책날개에서 '탈북 청소년'이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학력을 굳이 달아야 했을까. 달아야 한다면 아이들 고향마을 이름을 달아야 옳지 않은가. 아이들은 남북녘·일본·중국·러시아라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 같은 한겨레임을 느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기를 바랄 텐데, 이 아이들을 언제까지 이런 눈길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이들은 탈북 청소년이 아닌 그저 청소년이다. 꼭 대학교를 다녀야 무언가 일할 솜씨가 생기는 아이들이 아니다. 대학교라는 곳이 아닌 삶자리를 찾으며 아름다운 나날을 일굴 아이들이고, 분단과 전쟁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꿈꿀 아이들이다.

남녘이든 북녘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이든 전쟁무기 만드는 일을 그쳐야 한다. 남녘이랑 북녘이랑 '군대 시설 현대화'는 집어치워야 한다. 남북녘 모두 군량미를 차츰 줄이고 군인 숫자를 나날이 줄여, 바야흐로 군대가 이 땅에서 모조리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한테는 군사훈련이 아닌,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을 갈고닦는 올바른 일거리와 놀잇감을 베풀어야 한다. 아이들은 손수 땅을 일구어 내 밥그릇을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 기운을 담아 고맙게 얻는 흐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살가운 동무와 이웃을 사귀는 즐거움을 맛보아야 한다. 씩씩한 넋, 튼튼한 얼, 착한 마음, 고운 생각으로 푸르디푸른 삶을 보듬어야 한다. 나라에서는 군부대에 쏟아붓던 돈을 사람들 누구나 골고루 아늑하면서 즐거이 살아갈 수 있게끔 써서 문화와 복지와 교육과 의료를 가다듬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고, 푸름이들은 서로를 한껏 사랑하고 아끼는 따스한 가슴을 북돋아야 한다.

.. 많은 교회가 북에서 온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 목적이 선교를 위한 것이다. 전도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중국에서 일 년 동안 하루에 열두 시간씩 무릎 꿇고 성경을 읽은 경험이 있다 … 사람들한테 굳이 이런 공연을 보여주지 않아도 어디 가서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데, 하필 어릴 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게 하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반발심이 생겼어요 … 문제는 남과 북 모두 서로가 다름을 알고 있으나,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27, 166, 251∼252쪽)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졌으니 황해도 해주에 폭탄을 돌려주어야 한다면, 황해도 해주에서는 인천이나 서울이나 경기도에 미사일을 되퍼부어야 할 테고, 인천이나 서울이나 경기도에서는 평양이나 평안도에 미사일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야 만다.

서로서로 얼마나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아끼지 못했기에 이렇게 툭탁툭탁 다투어야 하나. 서로서로 얼마나 살피지 못하고 보듬지 못하며 어루만지지 못했기에 이토록 주먹다짐에 윽박지르기에 손찌검으로 마주해야 할까.

총 한 자루 만드는 돈은 너무 아깝다. 총 한 자루 만든다며 바칠 땀은 몹시 슬프다. 총 한 자루 만드는 일꾼 품이랑 총 한 자루 움켜쥘 사람들 손길이랑 더없이 딱하다. 총이 아닌 쟁기를 쥐어야 하고, 총이 아닌 책을 들어야 하며, 총이 아닌 연필을 들어야 한다.

어른들부터 꽃다운 삶을 돌보고, 아이들 또한 꽃다운 삶을 가꾸도록 힘써야 한다. 어른들이 앞장서서 손을 맞잡고, 아이들이 나중에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 "아무리 내가 좋은 대학을 나와도 한국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어. 경쟁이 심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로선 이 땅에서 공부를 해도 힘들어." … '탈북자'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북에서 온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기보다, 살기 힘들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이름은 북한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이름이기도 하다 ..  (31, 243∼244쪽)

<꽃이 펴야 봄이 온다>를 덮으며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이 땅 남녘나라에서는 북녘땅을 고향으로 둔 푸름이들 목소리를 찬찬히 담아낸 책 하나 거의 없지만, 정작 남녘나라에서 예쁘며 착하게 살아가는 푸름이들 목소리를 알뜰히 실어낸 책 하나 거의 없다. 아프고 힘겨이 살아가는 푸름이들 목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글쎄, 찾아볼 수 있을까? 다문 몇 권이나마 찾아낼 수 있으려나? 열다섯 푸른 아이 목소리를 어느 책이 실었을까. 열여섯 푸른 아이 삶무늬를 어느 책이 보여줄까. 열일곱 푸른 아이 마음결을 어느 책이 껴안을까.

서로서로 사랑으로 꽃이 펴야 한다.

남녘나라 어른들이 남녘나라 아이들을 참다이 사랑하지 않으니, 이런 메마르고 거친 곳에서는 북녘나라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이건 일본땅이나 중국당 아이들이 찾아들 때이건 곱고 따스한 봄이 찾아오지 못한다. 찬바람 씽씽 부는 이 남녘땅에 무슨 꽃 무슨 봄이 있는가. 매몰찬 이 남녘나라에서 어떤 푸름이가 꽃다운 나이를 누릴 수 있는가. 꽃다운 푸름이를 군대에 집어넣어 살인기계로 바꾸어 내는 남·북녘 모두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없는 슬픈 불지옥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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