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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20cm 이발사의 특별한 고객, 부럽죠?

[장애인 커밍아웃 ⑥] 뇌성마비 1급인 남편의 머리를 손질한 날... 함께인 것이 감사하다

등록|2010.12.13 10:02 수정|2010.12.13 10:02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 필자가 남편의 이발을 할때 사용하는 이발기기들. 이발하는 시간이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 우지은


장롱 구석에 있던 보자기를 꺼냈다. 변기뚜껑을 닫고 보자기로 덮은 뒤 그 위에 물을 채운 분무기, 제일 얇은 빗, 일회용 면도기, 가위를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앉을 수 있도록 욕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이제 남편을 불러 윗옷을 벗기면 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아무 옷도 입히지 않는다. 처음에 옷을 입힌 채로 머리를 깎았다가 머리카락이 옷에 온통 달라붙어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바닥에 앉힌 후 이발기를 손에 들고 욕실 문턱에 섰다. '드르르, 드르르' 소리와 함께 뒷 머리카락이 신문지와 욕실바닥에 흩어졌다. 이윽고 남편은 옆으로 돌아앉았고 지저분하게 뻗쳐 나와 있던 옆머리도 말끔해졌다. 그리고 앞머리. 앞머리는 가위로 살짝 살짝 여러 번 가위질을 해야 한다. 한 번에 싹둑 자르면 일명 '호섭이 머리'가 된다. 남아있는 뒷머리 털과 옆 부분을 면도기로 다듬어 주는 것으로 내 임무는 끝. 욕실 문을 닫고 나오면 남편이 머리카락이며 이발기 따위를 말끔히 정리한다.

몸이 힘들어 대충 깎은 남편 머리... "고맙다"는 남편 말에 미안해진다

▲ 필자 부부의 모습. 남편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데, 장애인 부부 역시 비장애인 부부들과 다를 바 없이 삶의 희노애락을 겪는다. ⓒ 우지은


남편 머리를 내가 직접 잘라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결혼 전까지 구례에 살던 남편은 결혼 후 광주로 이사 오면서 머리 자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구례에 갈 일이 생기면 가는 김에 늘 머리를 자르던 그곳에서 이발을 하고 왔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지 남편은 나에게 이발 부탁을 해왔다.

그 때 내 미용 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작 길어진 내 앞머리나 살짝 다듬는 정도가 다였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머리 깎는 것은 아주 쉬우니 걱정하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결국 나는 머리를 깎아주기로 결심하고 전기이발기까지 구입했고 벌써 열 두어 번 정도 사용했을 것이다.

남편은 이발을 마치고 나면 항상 말끔한 모습으로 깨끗이 씻고 나오면서 환하게 웃는다. "수고했어요, 점점 솜씨가 좋아지네" 하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원래 잘 웃고 칭찬도 잘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이런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제는 머리를 자르면서 좀 짜증이 났다. 120센티미터의 내 키는 남편의 머리를 자를 때 참 불편하다. 남편을 의자에 앉히자니 너무 높고,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게 하면 또 너무 낮아 허리를 약간 구부려야 한다. 3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내 체구로 버티기에는 약간 힘이 들었다. 이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허리와 다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남편 머리를 그야말로 '대충' 깎아 줘버린 것이다. 속도 모른 남편은 그저 고맙다고만 했다.

뇌성마비 1급인 남편도 나 못지않게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작은 자극에도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조금이라도 덜 움직여 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내 몸이 힘들다고 "수고했어, 여보"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서로 격려해주고 믿어주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인 것을 왜 난 잊고, 또 잊고, 자꾸 잊어버리고 사는 것인지. 그래도 이런 내가 좋다고 입을 헤벌리고 웃는 남편이 있어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아무래도 우리 부부는 사랑의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우지은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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