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화된 1등들과 싸울 책무가 있다"
[서평] 노회찬 외 4명이 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책겉그림〈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한겨례출판
무엇이 그런 사회를 부추겨 왔나. 누가 그런 사회 구조를 양산해 왔나. 정치권에서부터? 대기업 주도의 기업 운영방식에서부터? 상류계층 사회의 의식에서부터?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가 그에 동조해 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사회가 이렇게 흘러오지는 않았을테니.
노회찬 외 4명이 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한겨례출판 펴냄)은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의식세계를 그들 각자의 시선으로 파헤친 이야기다. 정치가를 비롯하여 명의 보정사, 소설가, 가난뱅이와 게릴라, 그리고 좌파 논객으로 불리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인 명징성만큼은 확실한 제 7회<한겨례21> 인터뷰의 특강을 모은 대담집이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진보신당 전대표 노회찬. 그는 말한다. 지역 선거구에서 진보를 대변하는 후보자가 30%의 지지율을 얻고서도 지역구는 한 석도 못 얻는 세상이라고.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도 그를 지지한 민의는 쓰레기통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고. 1등만 가려내는 선거법이 그것. 윗물이 그런 방식이면 아래물들도 그 흐름에 익숙하지 않겠는가.
소설가 공지영. 그녀는 본래 소설가가 꿈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욕하고자 썼던 글. 상상으로 그려낸 골목길에 관한 글. 그것들이 으뜸으로 뽑혀 글을 쓰기 시작. 한데 영문학과 학생 시절 전두환 덕분에 용산경찰서 지하 유치장에 끌려가고 난 뒤에 본격적인 소설가가 되었다. 아이러니다.
그녀가 소설가로서 초점을 맞추는 건 뭘까. 그녀는 피해당한 대중의 관심에 집중한다. 그녀는 얼굴도 미모라 그런지 CF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란다. 한 번은 자동차 CF가 들어왔는데 며칠 고민한 끝에 포기했단다. 이유가 뭘까. 여기저기 알려지는 게 싫고, 그걸 수용하면 부당하게 지배하는 엘리트들과 대결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 그녀가 밝힌 소설가의 책무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는 소설가로서 비인간화된 1등들, 즉 경쟁 사회에서 남을 제치고 올라서서 나머지 패배한 사람들의 쓰라린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그런 비인간화된 1등들과 싸울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그런 소설만 쓰겠노라 하는 말이 아니라, 소설가가 그렇다는 거죠."(117쪽)
마지막 여섯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규항. 그는 지난 10년 동안 급속하게 바뀐 한국 대중의 의식구조를 파헤친다.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답게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풀어낸다. 가장 큰 지적은 뭘까. 우리나라 대중은 윤리적 흠결이 있는 사람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스펙만 좋으면 사랑 없어도 얼마든지 결혼하는 게 요즘 젊은이들라 한다. 그건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변신 속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민중 다수가 그런 욕구에 길들여 있는 까닭이란다.
무엇이 결정적인 계기였을까? 1997년의 구제금융 사태를 그는 꼬집는다. 그때 실직자들은 거리로 내 몰리고, 자영업자들을 퇴출대상에 올라야 했다.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러니 생존만이 최고의 미덕이란 생각은 당연했다. 윤리가 문제되도 경제만 살려주면 만사 오케이라는 의식이 그때부터 지배해 왔다는 것.
그가 밝힌 설문조사 결과도 웃긴다. 현재 한국 사람들의 직업은 10,000개 정도.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이 써 낸 아이들의 장래 직업은 몇 개일까. 겨우 20개 밖에 안 된다는 것. 그러니 아이들이 사회초입에 들어갈 때부터 실패자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 나머지 9,980개 직업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게 모두 지난 10년 동안 축적해 온 의식구조라는 거다. 남의 탓이 아니라 모두가 탓해야 할 모순이란다.
그렇다면 해답은 분명하다. 각자 각자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식구조의 개조. 그 외에 답이 없다. 그건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함께 지향해야 할 바다. 의식의 변화 없이는 행동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그게 왜 바람직한 흐름인가? 로또 외에 동물의 왕국에 진입할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모두가 믿는 까닭이다. 그들만을 위한 위한 사회는 머잖아 자멸하고 만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야 진정한 나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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