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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 수술로 '반인반마'가 됐습니다

[장애인 커밍아웃 ③] 고통스런 뇌성마비 수술, 장애등급 판정에선 '독'

등록|2010.12.06 14:33 수정|2010.12.06 14:33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 심하게 뒤틀려 있는 필자의 발. 발등에 볼록 튀어나온 곳은 뼈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고, 다리에는 수술로 남은 흉터 자국도 보인다. ⓒ 공병조


나는 비장애인입니다. 동시에, 나는 또 '뇌성마비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요?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장애를 숨기고 앉아 있노라면 저를 장애인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때는 제가 보통사람인 거죠. 그런데 누가 내게 말을 건네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전 긴장해서 삐뚤빼뚤하게 말을 하거나, 걷게 됩니다. 이때 저는 장애인이 됩니다. 전 이런 제 모습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라 일컫습니다.

어릴 적,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저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예뻐라 하는 엄마를 따라 의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의원 안까지 따라 들어가지 못하는 저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서 기대하며 봤더니, 엄마가 아닌 흰색 가운의 의사였습니다.

"얘, 넌 어디서 왔니?"
"……"
"쯧쯧! 자 이거 갖고 가거라."

의사는 참 온화한 말투로 제게 말을 건넸고, 얼음장 같은 내 손 위에는 100원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였을 겁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수업시간에 제 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엉덩이 밑에다 집어넣어 안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뒤틀리는 얼굴과 힘이 들어가는 말투도 연필을 입에 물고 책을 읽으며 교정했습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변형됐던 다리를 펴주는 수술과 기타 뇌성마비 관련 수술을 35살 되던 해까지 17번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겉모습은 거의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마음의 안정을 잃으면 바로 중증 뇌성마비로 돌아갑니다. 뇌 속 저 깊은 곳 기저에 '운동신경계 이상'이란 것이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장애인이라는 시선에서 탈피해 나름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좋았습니다. 아니 신났습니다.

엄격해진 '장애판정 기준'... 고통스런 수술 참았던 게 후회스럽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의 꿈이더군요. 그동안 무리하게 참아온 근육과 관절들의 통증, 그리고 수술 후유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수술이었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게 안 좋은 때도 있더군요. 이번에 국가에서는 장애등급 판정을 다시 받게끔했습니다. 장애판정이 2급 밑으로 하락하게 되면 기초생활수급과 장애연금, 활동보조, 장애인 콜택시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등급판정 기준을 엄격하게 해서 예산을 줄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거죠.

두려웠습니다. 전 분명 신체적으로는 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불수의(제멋대로 움직여지는 것), 경직·강직형 뇌성마비 1급인 기초생활수급권자입니다. 단지 외과적 수술로 일어설 수 있는 기능만 하나 추가 되었고, 근육의 강직을 참고, 몸이 움직이는 것을 참고, 강직을 피해 말을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은 것뿐입니다.

그토록 애썼던 게 후회가 되더군요. '과연 나는 누구한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하여 그렇게 기를 쓰고 애썼던 거지?'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나의 반인반마의 꿈! 저는 장애인들에게 이제 다시는 반인반마의 꿈을 꾸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공병조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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