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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대강, 6대강, 8대강으로 이익 좀 챙긴 놈이다"

촌철살인의 해학과 풍자, <마당놀이전>... 고별공연 펼치는 '전설의 3인방'

등록|2010.12.06 17:17 수정|2010.12.06 17:17

▲ <마당놀이전> 자료사진 ⓒ 극단 미추


"어쩜 저이들은 늙지도 않니? 저렇게 신명나게 한바탕 놀고 나면 가슴 속이 후련해서 화병같은 것은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아직도 저렇게 신명이 살아있는 국민광대들이 왜 그만 한다니? 저이들도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거지? 그래 저번에 방송에서 보니 다들 환갑이 넘긴 했더라."

지난 3일 금요일 칠십대 중반을 넘기신 친정엄마와 함께 마당놀이의 대명사 격인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전>을 관람했습니다. 마당놀이라면 1981년 TV로 보았던 허생전을 비롯해 별주부전, 놀보전, 심청전, 춘향전에 배비장전과 변강쇠전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보셨던 엄마는 마당놀이 왕팬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윤문식(67), 김성녀(60), 김종엽(63)씨의 30년 고별공연을 대하는 심정 역시 남다르신 모양이었습니다.

눈물 흘리던 70대 노모... "우스워 죽겠다, 어쩜 저리 재담을 잘 허냐"

▲ <마당놀이전>의 김성녀(60), 윤문식(67) ⓒ 극단 미추


본격적인 무대를 열기에 앞서 관객들의 흥을 한껏 돋우어 주는 엿장수들의 흥겨운 가위질 소리에 평소에는 즐기지도 않던 엿가락을 사드신 엄마는 길놀이가 끝나고 든든한 꼭두쇠 김종엽씨의 무대 인사를 겸한 여는 소리 한 자락에 눈물을 찍어내고 말았답니다.

"흐르는 세월 따라 홍안은 백발이 되고, 풋감처럼 탱탱하던 청춘도 곶감 마냥 쪼글쪼글해져 버렸지만~"

그것은 마당놀이 30년에 청춘을 바친 초로의 광대들 삶이기도 하거니와 그들의 소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노인이 되어버린 당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입니다.

잠시 눈자위를 붉히던 엄마는 바로 이어진 춘향전의 한 대목 중 춘향모 월매의 걸쭉한 입담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언제 눈물을 흘렸더냐하며 파안대소로 허리를 잡으십니다.

"아이구 우스워 죽겠다. 어쩜 저렇게 재담을 잘 허냐. 참 재주들도 좋아." 

대한민국 마당놀이의 전설인 김종엽, 윤문식, 김성녀 3인방의 마당놀이 30년을 총 결산하는 이번 공연 <마당놀이전>은 갈라쇼의 형식으로 그동안 객석에서 가장 많은 박수와 사랑을 받았던 주옥같은 대목들만 모아 모아 선보인 알토란같은 무대입니다.

춘향전과 심청전, 변강쇠전과 춘향전, 이춘풍전과 홍길동전 등 작품을 넘나들며 팔색조의 변신 연기를 선보인 세 광대는 30년이라는 세월의 내공을 한껏 뽐내듯 무대 위에서 거침이 없습니다. 다만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스토리를 따라가기에는 관객들의 평균 연령이 조금 높았다는 것이 염려되는 부분일 뿐이지요.

"그래 내가 4대강, 6대강, 8대강으로 이익 좀 챙긴 놈이다"

▲ <마당놀이전> 자료사진 ⓒ 극단 미추


"그래 내가 4대강, 6대강, 8대강으로 개발이익 좀 챙긴 놈이다. 어쩔래?"
"요즘 제일 무섭다는 대포폰 쓰는 영포라인이냐?"

마당놀이에 풍자가 빠지면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을 터. 지난 29년을 해왔듯 이번 30주년 공연에서도 역시나 민초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풍자, 사회풍자가 빠질리 없습니다.

세도가들의 위세가 서릿발처럼 등등했던 조선시대에도 왕이며 양반이며, 스님들까지 세치 혀끝에 올려 신랄하게 풍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마당놀이였기에 그들에 대한 서민들의 사랑은 요즘 걸 그룹이나 아이돌 사랑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를 일삼는 관료들과 매관매직으로 재산을 불리는 세도가들,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한 양반들과 축첩과 축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종교인들까지. 이 모두를 두려울 것 없이 비판하던 그들이야 말로 서민들의 말을 대신해주는 입이며 서민들의 주먹질을 대신해주는 손이고 그들의 화난 발길질을 대신해주는 발이었기에 시장판 마당에서 펼쳐진 마당놀이는 서민들의 놀이터인 동시에 해우소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서슬 퍼렇던 1981년 신군부 시대를 시작으로 30년간 수많은 정권과 권력을 지켜보며 마당놀이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서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었던 마당놀이 3인방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광대며 인간문화재 칭호를 받아도 전혀 아깝지 않은 최고의 배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당놀이 3인방 후배들도 '신랄한 풍자와 비판' 이어가길

첫 회 허생전 공연을 올릴 때만 해도 30년간의 장기 공연이 될 줄 몰랐다는 여배우 김성녀. 그녀는 객석에 앉은 백발의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드리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영광스러운 30주년 공연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 거듭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한 30주년 공연으로 마당놀이 3인방 김종엽, 윤문식, 김성녀는 물러가겠지만 더 훌륭한 후배들이 마당놀이의 뒤를 이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재미와 시원함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혀 관객들의 뜨거운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마당놀이계의 전설이 된 3인방은 물러나지만 서민들의 위로가 되고 어르신들의 놀이가 되며 젊은이들의 신명이 되어주던 마당놀이는 영원할 것입니다. 마당놀이를 사랑하는 배우가 있고, 그들을 기다리는 관객이 있고, 그들이 놀만한 마당이 있는 한 앞으로도 30년, 60년은 끄떡없이 이어 갈 것이니 말입니다.

관객을 대신해 지난 30년간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싸매주며, 슬픈 마음에 웃음을 주었던 전설의 3인방. 김종엽, 윤문식, 김성녀씨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그들의 뒤를 이을 후배들에게는 선배 못지않은 신랄한 풍자와 비판으로 우리사회에 한줄기 희망이 되는 공연을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마당놀이전> 3인방인 김종엽(63), 김성녀(60), 윤문식(67)씨 ⓒ 극단 미추

덧붙이는 글 극단미추의 마당놀이 <마당놀이전>은 2010년 11월27일부터 2011년 1월2일까지 서울월드컵 경기장 마당놀이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며 자세한 문의와 예약은 극단 미추 02-747-5161로 문의 하시기바랍니다.

극본 김지일·배삼식, 작곡 박범훈, 안무 국수호, 미술 박동우, 조명 김창기, 연주 중앙국악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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