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없는 결혼식, 사회자는 무지 바쁘네
신혼부부 중심의 결혼예식... 어머니의 편지 낭독에 눈물 쏟기도
▲ 주례없는 결혼식 전경. 으레 있어야 할 주례 단상에 주례 선생님이 없다 ⓒ 오승주
"예전에 결혼식에 갔는데 주례 선생님이 하객들한테 왜 이리 시끄럽냐고 야단을 치는데 황당했어. 밥 먹으러도 못 가게 하고. 결혼식은 잔치이어야 하는데 교수 같은 권위적인 분들이 주례를 서면 교실이 되어 버린단 말이지."
주례 없는 결혼식 직접 진행해보니
얼마 전 친구의 부탁으로 결혼식 사회를 봤다. 결혼이 원만히 성립되었다는 것을 만인에게 선언하는 성혼 선언은 신랑측 아버님이, 주례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주례사는 양가 부모님이 직접 덕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대체했다.
예식 전반에 대한 진행은 사회자가 총괄해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예전에 사회를 봐주면 양복 한벌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사회자는 진행 이외에도 신랑신부와 부모님의 동선을 확정하고 안내를 하는 일을 하며, 하객들에게 반응을 유도하는 일을 맡았다. 일이 좀 많은 듯했지만 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 주례 없는 결혼에서 책임감이 막중해진 사회자의 진행 원고. 좀더 근사한 결혼식이 되게 하려고 업체에서 제공한 원고에 살을 붙인 흔적이 보인다. ⓒ 오승주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직접 감사의 편지를 읽거나 전달하고, 평생 귀한 자식을 키운 부모님의 심정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진전이다. 좀 심한 말로 이제까지 양가 부모님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주례가 하라는 대로 해왔던 게 사실이다. 양가 부모님이 직접 결혼을 관장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결혼식이 결혼식답게 느껴졌다.
에피소드도 있었다. 신부 어머니께서 덕담 편지를 읽다가 눈물을 못 참으시는 바람에 이모님이 편지를 읽고 순간 예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딸 가진 부모의 심정이 한순간 전해진 것이다. 감정을 억눌러 참아야 했던 것이 봇물 터지듯 예식장 안에 흘러넘쳐서 하객들도 상당히 인상적인 결혼식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에 주례가 사라진다고? "글쎄..."
결혼식에 참여해 진행 전체를 지켜봤던 하객 박아무개씨는 "인상적인 결혼식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주례가 없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례 선생님 중심의 결혼 관습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은사님이나 꼭 덕담을 듣고 싶은 분을 모셔서 주례 있는 결혼을 하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결혼 풍속도이기 때문이다.
결혼 풍속도의 조그만 균열에 불과하지만, 주례 없는 결혼은 관습과 권위 대 소비자의 합리성이 시장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의 조그만 부분에 불과하다. 결혼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와 부모님, 하객들이며 제품의 주인은 소비자이며 정치사회적 권력의 주인은 시민 당사자이다. 모두 한결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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