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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우리가 산타집으로 찾아가면 되죠"

가난한 동네, 부자 아이들 이야기

등록|2010.12.07 17:55 수정|2010.12.07 17:55
두툼한 양말을 신은 신발 속 발끝까지 시려오는 겨울이 되니, 추운 교실에서 손바닥을 호호 불어가며 덧셈 뺄셈 수학문제를 잘 깎은 연필로 사각사각 쓰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다.

부자동네의 가난하지만 마음만큼은 부자였던 우리학원의 초등부 저학년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그저 신이 났던 건지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거의 한 달 동안을 "영어쌤, 내 선물 뭐줄껀데요?"라고 쫓아다니며 졸라댔다. 그때마다 "너희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달라 해야지. 쌤한테 달라하면 어쩌노"라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피하기에 바빴다. 그 많은 아이들을 다 챙겨주려니 추위만큼 시린 지갑 속의 사정 탓에 어깨가 무거워졌던 게 사실이고, 또 확신이 안서긴 하지만 산타의 '존재'를 어느 정도 믿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동심을 되살려주기 위한 착한 거짓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얘들아, 산타마을이 저기 미국 알래스카 쪽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산타마을에서 각 나라마다 대표 산타들을 보냈거든. 그니까 우리나라에도 대표 산타들이 진짜 있는거다."

처음엔 믿지 않던 아이들도 '쌤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 탓인지 점차 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사실 굴뚝 타고 들어온다는 건 순 거짓말이지. 너희가 봐도 너거들 집에 굴뚝 없다 아이가. 맞제? 아파트에는 어떻게 들어 오겠노. 그래서 요즘 산타들은 자기 자동차 타고 돌아다니면서 집 주소 적힌 거 보고 직접 찾아간다. 똑똑똑- 이렇게 문 두드리고 말이야."

이때부터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야 우짜노. 내 착한일 한 거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아싸! 내는 오늘 엄마 설거지 도와줬고~!"

시끌벅적해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자, 그럼 산타는 당연히 외국사람이겠제? 그러면 너희 이렇게 공부 안하고 놀고만 있으면 얘기 어찌하겠노.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보자!"라고 말해줬다.

지금까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태도로(?) 수업에 열중하는 우리 아이들. 특히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는 말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아이들은 나에게 '고맙습니다'를 가르쳐 달라고 보챘다.

"자, 산타가 찾아오면 먼저 'Nice to meet you'하고, 그 다음에 선물을 주면 'Thank you'라고 하는 거다. 연습!"

특히 어려웠던 'Thank you'의 th 발음을 아이들은 열심히 외치며 연습하기 바빴다.

또, 갖고 싶은 선물을 하나씩 얘기해보라는 말에 '분명 많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줘야 되니깐 산타는 돈이 없을 것'이라는 아이들만의 마음 착한 추측(?)으로 소시지, 캐러멜, 사탕 등 소박한 선물을 나열했다.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또 괜한 거짓말을 했나 싶어 미안함에 다음날 사탕을 한 움큼씩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물론 산타가 거짓말이었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올해는 특히나 사회 전반의 골머리 아픈 문제들을 하도 많이 접하다보니 마지막이 보이는 12월에 이렇게 진이 빠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같이 놀라운 뉴스에 입을 다물지 못하기도 하고, 대한민국이 '삼재(三災)'인가 싶을 정도의 잦은 비보는 특히나 많은 눈물이 보였던 한해를 만들어준 것 같다.

이렇게 기분을 들쑥날쑥하게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크리스마스란 그저 '착한일 한 사람만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이고, '어른이 되면 수학문제도 안 풀어도 되고, 먹고 싶은 컵라면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우리 아이들의 생각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어느새 연인들의 날로 변질돼 크리스마스 마케팅을 이용한 상술, 그리고 복잡한 시내 구석구석에 음주가무를 즐기는 터져나갈 것만 같은 젊은이들의 무리.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됐지만 앞으로도 살아가는 데 헤쳐 나가야할 시험은 너무나도 많다는 것과 반드시 '돈'이 있어야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살 수 있다는 사실. 이 모두를 다 알려면 얼마가 지나야 할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라줬으면 하는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나 또한 아이였다 어른이 됐으니 괜한 기대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아이들의 남들보다 착한 마음은 나만큼의 나이가 되도 분명 조금은 남아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대로 그저 착한 일을 해서 조그만 선물을 받고 'Thank you!'하고 외치기만 하면 되는 그런 크리스마스를 가지고 있는 따뜻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얘들아, 근데 사실은 너희가 너무 착하지만 여기 쪼매난 동네까지 찾아오기가 너무 멀어가지고, 차를 타고 오다가 기름이 다 떨어져버리면 어떡하노?"라며, 사실은 진짜 산타를 만나지 못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말투로 이렇게 말해줬다.

역시나 날 실망시키지 않고, 마음만큼은 세상 최고 부자인 우리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렇게 힘드시면 우리가 한국 대표산타 집까지 간다고 해야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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