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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인을 모시고 산다

김밥 그리고 사기꾼 아내

등록|2010.12.08 14:04 수정|2010.12.08 14:04
동네에 늙수그레한 아줌마 한 분이 계셨다. 겁도 없이 골목 후미진 곳에 김밥집을 차렸다. 그리고는 아내를 찾아왔다. 한다는 말이 애 엄마 믿고 차렸으니 알아서 하란다. 우리 부부는 자다가 벼락 맞은 꼴이 됐다. 누구 돈이건 간에 천오백만 원 버릴 수 없어 아내가 일 년을 뒤를 봐줬는데, 허허하고 웃음밖에 안 나온다. 성당이고 동네 유치원이고 이웃집이고 모두가 애 엄마가 하는 김밥집인 줄 알고 참 무던히도 들락거리며 팔아준다.

수제비와 만두아내가 가장 자신있게 만드는 요리. ⓒ 조상연


대로변 김밥집도 망해 나가는 판에 별나게도 아내가 손을 댄 김밥집은 잘 됐다. 가만히 옆에서 하는 것을 보니 손님들이 밥이 모자란 듯하면 밥 그릇 뺏어가 다시 수북이 담아내 주고 찬도 다시 챙겨주고 저래서 뭐가 남나 싶을 정도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도저히 아내의 건강에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식재료를 대주시는 분이 인수를 하셨다. 재료 소비하는 것이 대로변의 제법 커다란 김밥집 이상으로 가져다 쓰니 딴에는 횡재했다 싶었나 보다.

인수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 이 양반이 돌아다니며 아내를 사기꾼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아니 누가 억지로 하란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많던 단골이 보름 만에 모두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왜 그런가 하고 3일을 함께 일을 해봤더니 우선은 쌀을 너무 싼 것으로 사용하니 밥맛이 없고 김치도 중국산을 사용하니 좋을 리가 없었다. 음식 장사는 넉넉한 인심이라 했던가? 젊은 장정이 밥 한 공기가 어찌 대수랴? 밥 한 공기가 더 나가도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고 지나가던 노인네 배는 고프고 돈은 없고 김밥 한 줄만 달라면 김밥 대신에 소금을 한웅큼 뿌려대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장.조그만 깁밥집이지만 김치는 직접 담근다. ⓒ 조상연


저녁 밥상 위에 소주 한 병 놓고 아내와 마주 앉았으니 웃음만 절로 나오는데 아내가 뜬금없이 한마디 한다. 김밥집 인수하신 분이 잘 됐으면 좋겠지만 석 달 넘기기가 힘들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어찌 그러냐 했더니 한마디 하는데 걸작이다.

있는 사람들 입에 들어가는 밥장사도 아니요 배고프고 없는 사람들 입에 들어가는 밥장사 하면서 돈에만 관심이 있지 밥 먹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이다. 어허! 아무래도 내가 도인을 모시고 사는가보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아무리 이득을 추구하는 장사라 할지라도 도덕적인 목표 또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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