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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험 가입 안됩니다"

[장애인 커밍아웃 ⑦]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2년이지만

등록|2010.12.14 11:51 수정|2010.12.14 11:51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보험 가입하러 왔는데요."
"고객님은 안 되는데요."
"네? 왜요?"
"아, 장애인은 원래 가입할 수 없습니다."

환자본인부담금을 보장해 준다는 실손의료비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보험회사를 찾았다가 퇴짜를 맞았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은 병원을 자주 이용하므로 회사부담이 커져서 가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뇌병변장애인인 나는 자주 다리와 머리 통증에 시달린다. 다리 아픈 것은 웬만큼 참아낼 수 있겠는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괴롭다. 그렇다고 아플 때마다 병원을 찾을 수는 없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병원엘 가는데, 한 번 갈 때마다 기본 1~2만 원은 든다. 의사선생님은 병 키우지 말고 아프면 바로바로 오라고 하지만, 우리 실정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실손의료비보험에 가입해서 병원비를 좀 줄여보려고 했는데 장애인은 가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2년... 하지만 "장애인은 보험가입 안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브이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 같은 장애인을 받아주는 보험이 생긴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희망을 안고 찾아가 보았다. 보험회사에서는 장애인용 스쿠터를 타고 간 날 보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안 된다고 했다. 또 한 번 실망했다. 정말 다른 수가 없는 것인지 고민하다가 문득 나에게 보험모집인자격증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혹시 이것이 있으면 가입이 되지 않을까 하고 알아보았다. 역시나, 그 자격증도 소용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우체국이었다. 우체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일반 보험업체와는 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상담원은, 장애인들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은 오래전에 시행되었던 곰두리 보험밖에 없는데, 지금은 그것도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보험가입이 모두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며칠 전, 다시 한 번 전화로 물어보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생겼으니 보험법도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보험의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지난 10월에 나는 기초생활수급자(장애1급)가 되었고 숨통이 조금 트였다. 물론 기초수급자라 해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상한선은 있다. 그 상한선을 초과할 경우 자기가 나머지 비용을 부담을 해야 한다. 당장 다리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런 이유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래도 기초수급자가 된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몸이 아파도 치료비용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 보험에 가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 돈이 없는 장애인들은 위급한 상황에 놓여도 병원 문턱도 못 밟아보고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다. 하지만 보험사의 장애인 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보험대상자의 장애 정도와 상태 등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검토해서 장애인들도 차별하지 않는 보험이 어서 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언제쯤이면, 얼마나 기다리면 그 날이 올까?

▲ 광주광역시 시청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단 기자회견 때 찍은 사진 ⓒ 윤진호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윤진호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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