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브리 DVD, 왜 할인 안 해도 잘 팔리는가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①] 문화가 우리 경제의 대안인 이유

등록|2010.12.09 14:47 수정|2010.12.09 14:47
"국내 영화 DVD 중 가장 비싼 DVD가 뭔지 아세요? 보통 국내에서 영화 DVD는 1000장 정도 찍는데 그걸 다 못 팔기 때문에 1년이 지나면 반값으로 떨어지고, 2년 지나면 9900원 6600원에 팔리게 됩니다. 그런데 발매된 지 10년이 지나도 정가 2만9천 원을 다 받는 DVD가 있습니다. 2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박사가 꼽은 한국 경제의 유력한 성장 동력은 '문화'였다. 우 박사는 지난 1일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응용경제학' 첫 번째 강의에서 문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한국의 열악한 문화 현실에 대해 강의했다. 우 박사는 이날 강의에서 "문화계가 국가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지탱해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21세기 고용은 문화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우석훈 박사가 지난 12월 1일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응용경제학 특강에서 강의하고 있다. ⓒ 김동환


21세기형 경제대안 문화에서 나온다

국가나 사회같은 단위의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전까지 경제학자들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해왔다. 단위당 생산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경제 성장률은 점점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인식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1980년대 중반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인 폴 로머가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무시했던 생산요소로 '지식'을 끌어들이면서부터다. 인적자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문화 등의 무형자산이 경제 발전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며, 이를 고려했을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 박사는 "한국은 경제 성장을 하면서 에너지와 자원을 많이 쓰는 유형"이라며 "이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에서 국민 총생산은 노동과 자본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합이라고 보거든요. 한국은 석유수입은 세계 3, 4위이면서 국민소득은 30등 정도밖에 안 나옵니다. 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자원과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느냐는 건데요, 이에 대한 유효한 답 중 하나는 문화 수준을 높이는 것이죠."

우 박사는 문화를 통해 고용 안정을 누리고 경제 성장으로 가는 것을 가구 만드는 일에 비유하며 "21세기 고용은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구를 만들 때 못과 망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못과 망치를 만드는 기계가 필요하지요. 또 그 기계로 못과 망치를 만드는 걸 가르치는 사람, 못과 망치를 만드는 사람들이 즐겁게 작업할 때 듣는 노래를 만드는 가수 등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GDP는 부가가치의 총합이기 때문에 이런 우회생산이 많을수록 커지게 됩니다."

"다양한 문화 포용하는 구조 만들어야"

우 박사는 '문화가 밥 먹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를 꼽았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 <이웃의 토토로> 등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철저하게 2D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면서 내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수준이 뛰어난 게 아닙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작품들은 제작비 문제로 한국이나 북한에 하청을 주고 있어요. 같은 철학을 가지고 함께 작업하는 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에는 이런 팀이 없지요. 그런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만화가들 중 단행본 엄청 잘 팔리는 작가가 보통 만 권 정도 나가는데 그럼 저자한테 돌아오는 돈은 천만 원 정도밖에 안 되지요. 그 수준의 수입으로는 1년 못 살잖아요?"

▲ 수강생들이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왜 문화 관련 업종으로는 한국에서 밥 먹고 살기가 어려울까. 우 박사는 문화를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문화계 곳곳이 비정규직화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이 뛰어난 실력을 가졌더라도 대우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50미터 레인이 있는 수영장에서 강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국제대회) 메달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이 비정규직입니다. 근무 환경도 열악하죠. 수영장 가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강사들이 대부분 잠수복처럼 생긴 수영복을 입고 가르쳐요. 강습생들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강사들이 시간 내내 물속에 들어와서 가르쳐주기를 요구합니다. 이렇게 종일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저체온증에 걸립니다. 특히 여성강사들은 오랜 기간 이게 반복되면 불임이 되지요."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우 박사의 결론. 우 박사는 "오페라 하우스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작은 밴드들이 일하는 아담한 공연장 1000개를 만드는 것이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강한 나라가 되는 길"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