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 한잔으로 행복해지는 시간
[포토에세이] 12월, 그 끝과 시작을 위하여
▲ 눈 내리는 시간 ⓒ 송유미
12월은 마음이 따뜻한 계절. 타향에 있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계절. 모든 잘못을 무릎 끓고 회개하는 죄인처럼, 그렇게 잠시나마 마음이 성스러워지는 계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주 어릴 적 읽은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처럼, 12월은 혹독한 눈보라 같은 삶속에서도 추억, 희망, 그리움, 사랑, 보고픔, 기다림으로 아름답게 채색되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 눈 내리는 거리 ⓒ 송유미
내가 좋아하는 황지우 시인은 <12월>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生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같다
한 해의 끝, 삶의 무거운 부채를 청산하는 12월의 시적 화자는,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 놓고 있지만, 시인은 또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는 착한 계절이라고 긍정적으로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12월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계절입니다. 사랑의 종소리가 흐르는 거리 곳곳에 세워진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상점에 설치된 산타클로스 형상과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롤 송에 삶의 무거운 발걸음이 잠시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펑펑 눈이라도 내리면 그 털모자와 외투의 어깨 위에 눈송이를 몇개 얹고 공중전화 부스 속으로 들어가서 잊혀진 선생님이며, 소원했던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게 되는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창밖에는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대고 있지만, 따뜻한 난로 위에 끓고 있는 차 한잔의 행복, 그리고 한 편의 시, 평화로운 음악만으로도 또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 12월은 따뜻한 추억의 계절 ⓒ 송유미
얼음처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동상에 걸린 손바닥을 내미는 냉정한 삶에게도, 다른 계절과 달리 따뜻한 선물을 장만하여 전하게 되는 계절도 12월이 아닌가 합니다. 더구나 한해의 마지막의 계절이기에 새삼 주변을 돌아보며 아무 탈 없이 지냈던 지난 해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되는 거룩한 계절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청결히 표백하는 눈 내리는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하얀 백지 같이 정화된 새해에는, 태어나서 한번도 그려보지 못한 가장 원대한 인생의 설계를 계획해 보는 그런 계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가장 어두운 눈 내리는 숲에서 잠들기 전에 떠나야 할 길이 있다'고 나즉이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는 계절인 것도 같습니다.
▲ 12월은 끝이자 시작의 계절 ⓒ 송유미
눈 내리는 저녁, 숲에 들르다 - 로버트 프로스트 숲 주인이 누군지 알랴마는 그가 가까운 마을에 산다해도 나를 보러 여기 올린 없겠구나. 숲엔 눈만 가득할테니. 내 작은 말은 이상하다 생각하겠지. 농가도 없는 숲에 쉬어 가는 걸.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올해 가장 어두운 저녁 머물고 있다. 말은 목에 단 방울을 흔들어 본다. 마치 뭐가 잘못된 게 있냐 묻듯이. 또 하나 들리는 건 스쳐지나는 느긋한 바람과 포근한 눈송이들.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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