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길 사퇴로는 부족"... 여당 지도부 책임론 부글부글
"예산안 날치기, 2012년 총선·대선 악재될 것"... 안상수-윤증현 책임공방도
▲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날치기 무효 국민 걷기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정부·여당의 예산안 날치를 비판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지난 8일 한나라당이 '이것이 정의'라며 밀어붙인 2011년도 예산안과 각종 법안처리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2일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는 지도부 책임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심 악화, 장기적 문제될 듯...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당장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난감한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기자와 만나 "주말 동안 민심이 좋지 않다는 건 확인했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넋두리했다.
이 의원은 "당장의 여론악화가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며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한 대응 미흡으로 민심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예산안 처리 문제까지 겹쳤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말하는 '장기적인 문제'는 다가오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이번에 예산안과 법안들을 밀어붙인 것이 악재로 작용할 것 같다는 우려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부·여당 견제심리'가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증폭된 형태로 재연될 수 있다는 것.
지난 8일 UAE파병동의안, 서울대 법인화법, 친수법 등이 예산안과 더불어 직권상정돼 처리된 것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당 내부의 토론도 필요했던 사안인데 그렇게 쉽게 처리해버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금 '지도부 물러가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민들 앞에 당이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며 선뜻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했다.
"국회 예산심의권 무시, '당권 대권 분리' 당헌에도 위배"
한 초선 국회의원은 기자가 예산안 처리 얘길 꺼내자마자 "정책위의장이 책임지네 마네 이런 얘기하는 것은 단선적인 얘기이고 당장 아프니까 아까징기(빨간 소독약) 바르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도 앞서의 의원과 같이 "근본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면 내년에도 반복될 문제"라고 못 박았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무시당했고,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규정한 한나라당 당헌 정신에도 어긋난 일이었다는 것.
이 의원은 "예산심의라는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유야 어떻든 정부가 시간적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예산 심의가 이렇게 졸속으로 된 것은 행정부가 입법부의 권한과 권능을 무시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한나라당 당헌에는 당권과 대권은 분리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청와대 주문'에 따라 이유와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언제까지 끝내라'고 못 박아서 한 것은 적절치 않다"며 "기획재정부의 참견이 심하다고 해도 거대 여당의 지도부가 '어디다 대고 지시를 하느냐'고 한 마디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지도부의 책임을 거론했다.
'떠넘기기'도 만만찮네, 안상수-윤증현 '예산 누락' 책임 공방
▲ 지난 8일 오후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점거농성중인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면서 본회의장앞 로텐더홀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김형오 전 의장, 이주영 의원이 당직자들에게 둘러싸여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권우성
이날 안상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도 한나라당의 대국민 약속을 존중하고 예산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이 정부는 한나라당 정권이 만든 정부임을 이 정부는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템플스테이 예산이나 춘천-속초간 고속화철도 기본설계비, 아동 양육수당 등 일부 예산이 누락된 것에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를 찾아 안상수 대표에게 일부 예산 누락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안 대표가 윤 장관에게 요구한 것은 사과였지만 윤 장관은 유감 수준에 그쳐 '정부 책임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쳤다.
안 대표를 만나기 전 윤 장관은 기자들에게 "국회가 예년과 달리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안 및 부수법안을 통과시켜 연평도 사태나 구제역 문제 등에 예산 배정이 용이해졌고, 내년에 즉시 예산집행이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당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예산 누락 등 정부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예산과 재정이 지켜야 할 기준과 원칙을 당도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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