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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가 곧 이득', 대통령의 이상한 한미FTA 셈법

[주장] 말로 주고 한줌 개평 얻은 꼴, 그래도 "큰 이익 얻게 됐다" 또 주장

등록|2010.12.14 17:44 수정|2010.12.14 17:44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KBS 1라디오와 교통방송, 유트브 등을 통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대통령은 "한미FTA 자동차 양보로 더 큰 이익을 얻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걸 내어준 재협상, 정부 그래도 개선장군 행세

정부가 기존 합의내용에서 대폭 물러섰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재협상이든 추가협상이든 절대 없다"고 장담하던 정부가 기존합의 내용을 지켜내지 못하고 많은 것을 양보한 재협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미안한 기색이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많은 걸 내어 주고 온 주제에 마치 개선장군인양 의기양양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미FTA는 우리에게 이익'이라는 상투적인 주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재협상 얘기는 싹둑 잘라낸 채,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우리에게 더 이익'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손해가 이득이라는 주장은 궤변입니다.

아주 이상한 대통령의 '셈법'

대통령의 셈범은 아주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100만 원의 이문을 남길 수 있는 장사가 있습니다. 100만 원을 버는 게 정상인데 어쩌다가 실수로 10만 원의 이문만 남겼습니다. 90만 원을 날린 셈이지요. 이런데도 그 장사치가 '10만 원이나 벌었으니 잘한 거다'라고 자화자찬한다면 뭐라고 할까요? 모두 그 장사치를 두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할 겁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상식도 없는 정권입니다. 먼저 "재협상은 없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맞는 순서입니다. 재협상의 결과에 대해서도 여권 어느 누구 하나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기존 합의내용 보다 훨씬 불리하게 됐다, 사실상 양보를 위한 재협상이었다, 이런 자세로 나와야 하는데 청와대와 정부여당 모두 사실과 마주서려 하지 않고 피하고 빠져나가는데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한미FTA 자체에 대한 불만 때문만이 아닙니다. 숨기려 하고, 은폐하고, 뻔한데도 아닌 척 딴전 부리고, 확실한 사실 앞에서도 말 바꾸기나 하며 시정잡배처럼 행동하는 정부여당의 모습에 국민들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지으며 실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주장, 지록위마보다 심한 지손위득

그런데도 여전히 대통령은 재협상 결과가 기존 합의내용보다 훨씬 낫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사슴을 두고도 말이라고 빠득빠득 우겨 진실을 호도하는 것을 두고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합니다. 여기에 빗대어 얘기하면 대통령의 재협상 인식은 손해를 이득이라고 우리는 지손위득(指損爲得)의 허위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승용차 관세를 4년 후 철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하나 내용을 보면 미국에게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화물자동차 관세 조항도 기존합의 내용보다 절대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합니다. 비관세 장벽도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양보해 주어 안전기준과 연비기준이 미국 입장에 맞춰졌습니다. 게다가 한국차의 미국내 수입을 전면 제한할 수도 있는 '세이프가드'까지 허용해 주었습니다.

"세이프가드 그냥 형식적 문구", 통상본부장까지 국민을 바보 취급

이래 놓고도 통상교섭본부장이란 사람이 하는 말이 참으로 '걸작'이더군요. 그는 "자동차 분야에서 세이프가드가 발동된 경우가 없다"며 형식적으로 집어 넣은 문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람도 국민에게 한 번 혼나야 정신 차리려나 봅니다. 외교 문서에 '그냥 형식적으로 집어넣은 의미 없는 문구'라는 게 있을 수 있나요? 제 눈에는 국민이 바보스러워 보이나 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대통령부터 인식이 그 모양이니 담당부처와 관계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정부가 돼지고기와 의약품 등에서 "우리도 얻은 게 있다"고 주장하나 자동차에 비해 파급효과나 영향은 미미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협상으로 3조원을 양보해 주고 3000억 원을 얻은 셈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입장에 서다니...

대통령이 또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자동차 부문에서 우리가 많이 양보했다고 하지만 올해 한해만 봐도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95만대에 이르고, 이에 반해 수입하는 자동차는 1만2천대에 그치고 있다." 뭔 얘긴가요? 아! 우리 대통령께서 자동차 분야의 한미 무역불균형을 지적한 거로군요. 그런데 불균형이 한국에 유리한데, 대체 어쩌자는 얘기인가요?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환장할 노릇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입장에 서있네요.

재협상을 두고 '잘된 협상'이라며 대통령이 제시한 논리가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 관세 4%가 즉시 철폐되기 때문에 부품수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현지 생산 경쟁력도 높아진다, 그러면 국내 중소 부품업체가 크게 좋아지고 고용이 증대된다, 이게 대통령의 인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자국에게 유리한 방법 찾으려 혈안인 되어 있은 미국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좋은 것 선뜻 던져 주었을라구요. 절대 그럴 리 없지요. 대통령이 크게 간과한 게 있습니다. 대통령의 주장은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측면만 추려내 만들어진 논리입니다. 실제 상황은 다른 쪽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4% 부품관세 철폐로 국내 중소기업 호황?

부품 관세 4%가 철폐된다고 해서 국내 부품수출업체가 크게 득을 볼 거라는 생각은 오판입니다. 4% 절감 부분이 국내 수출업체 이윤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때문입니다. 관세가 철폐되면 현지 수입업체가 수입단가를 깍으려 하겠지요. 관세철폐의 이득은 현지 수입업체가 누릴 몫이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부품관세 철폐로 현지 생산업체의 경쟁력은 향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생산업체 경쟁력 향상은 국내생산보다 현지생산 비중을 크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겠지요. 현지생산 비중이 커지면 현지(미국인) 고용이 늘게 되는 반면, 국내 고용은 오히려 감소하게 됩니다. 자동차 기업의 매출은 늘고 '돈'도 더 벌겠지만, 국내고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돈은 버는데 고용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품관세 철폐, 현지(미국) 고용 늘고 국내고용 줄어든다

부품 관세 즉시 철폐가 우리에게 마냥 유리하기만 한 것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불리한 점도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전망은 상당 부분 틀려 있습니다. 국민을 또 호도한 겁니다.

FTA를 왜 안보문제와 굳이 연결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안보 앞에서는 미국에게 늘 주눅 드는 게 우리 국민인 줄 아는가 봅니다. 대통령은 한미FTA를 '한미경제동맹'에 비유하며 "한미간에는 이번에 경제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안보동맹 역시 더 굳건해졌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듣기 거북한 얘기입니다. 연평사태로 인해 안보가 담보 잡힌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에 의해 절대 하지 않겠다던 재협상이 진행됐습니다.

퍼주기 '경제동맹'이 곧 굳건한 '안보동맹'인가요?

대통령은 "한미FTA에서 자동차 양보로 더 큰 이익을 얻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잘못된 겁니다. 유감천만의 주장입니다. 바로 잡자면 '한미FTA 재협상에서 자동차를 양보함으로써 큰 것을 손해봤다.' 이게 맞는 얘깁니다. 말로 주고 한줌 얻은 장사를 했으면 좀 반성하는 기미라도 보여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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