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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연장하려는 외과의사의 연쇄살인

[리뷰] 더글러스 프레스턴, 링컨 차일드 <살인자의 진열장>

등록|2010.12.15 09:49 수정|2010.12.15 09:49

<살인자의 진열장>겉표지 ⓒ 문학수첩



중세 유럽에 살았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부인은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백 명의 처녀들을 잡아와서 죽인 후에 그 피를 마시고 핏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바토리 부인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일 것이다. 바토리 부인은 여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자체를 즐겼다고도 한다. 늙지 않으려는 강박과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얻는 엽기적인 쾌락이 합쳐져서 엄청난 살인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글러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가 함께 쓴 작품 <살인자의 진열장>에도 이런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 이 연쇄살인범은 바토리 부인과는 달리 살인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살인자의 진열장>의 배경은 현대의 뉴욕이다. 맨해튼에 있는 건축현장의 지하터널에서 우연히 36구의 유골이 발견된다. 유골들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칼로 베인듯한 자국이 있고 어떤 뼈는 쪼개져 있다. 오래 전에 누군가가 시체를 토막내서 터널벽 안쪽에 쌓아놓은 것이다.

130년 만에 다시 벌어지는 연쇄살인

주인공인 FBI 특별수사관 펜더개스트는 여성 고고학자 노라 켈리와 함께 이 현장에 도착한다. 뉴욕의 유적 보존 법령에 의하면,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뭔가가 발견되면 발굴과 기록작업이 끝날 때까지 진행중이던 공사를 멈춰야 한다. 펜더개스트는 노라에게 그 발굴작업을 지휘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난색을 표한다. 공사가 중단되면 매일 4만 달러씩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게다가 건축을 담당한 회사는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이며 연줄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회사의 대표는 뉴욕시장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결국 정치적인 입김 때문에 펜더개스트와 노라의 발굴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도 펜더개스트와 노라는 이 사건에 묘한 흥미를 느껴서 독자적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유골이 발굴된 지하터널은 189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유골의 주인공도 그 이전에 그곳에 묻혔다는 이야기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난다. 130년 전에 건축현장 자리에는 일종의 개인박물관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에 그 박물관에서 에녹 랭 교수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어린 청소년들을 실험용으로 사용해왔다. 이 아이들은 산채로 해부당한 뒤에 죽어서 터널안에 묻힌 것이다. 그 이후에 에녹 랭 교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펜더개스트와 노라가 이런 사실들을 알아낼 때쯤, 맨해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젊은 여성으로 사체를 부검하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130년 전에 에녹 랭이 아이들에게 했던 수술과 똑같은 방식의 수술이 피해여성에게 가해진 것이다.

뉴욕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지만 같은 수법의 살인이 연달아서 터진다. 수사진은 정체불명의 범인에게 '외과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범인은 130년 전의 살인을 모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명연장에 성공한 에녹 랭 박사가 아직까지 살아서 살인을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

독특한 FBI 수사관 펜더개스트

<살인자의 진열장>은 '펜더개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다. 시리즈물의 주인공은 보통 화려하게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에 이 작품에서 펜더개스트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는 흰색에 가까운 금발머리를 가졌고 피부도 죽은 사람처럼 희고 창백하다. 언제나 조용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좀처럼 흥분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특유의 대화법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간다. FBI 소속이면서도 항상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것 같다. 130년 전의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조사를 할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펜더개스트도 수명연장의 비밀에 접근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작품 속의 한 등장인물은 그런 비법이 발견된다면 그 즉시 없애버리라고 주장한다. 그 처방법이 값싸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제공된다면 지구는 인구 과잉으로 멸망한다. 만일 그것이 비싸서 부자들에게만 제공된다면 폭동과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쪽이건 그런 처방법은 인류에게 고난만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아인슈타인이 200년을 살았다면 세상이 좀더 좋은 쪽으로 변했을 수도 있다. 대신 야만적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수명도 그만큼 늘어나기에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200살까지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적의 영약이 만들어지더라도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살인자의 진열장> 더글러스 프레스턴, 링컨 차일드 지음 / 최필원 옮김. 문학수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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