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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새알심 둥둥 동지팥죽

동지팥죽 한 그릇으로 안 좋았던 기억 떨쳐버리자

등록|2010.12.21 10:09 수정|2010.12.21 10:11

▲ 동지팥죽의 붉은빛이 액운을 몰아낸다고 한다. ⓒ 조찬현



동지팥죽의 붉은빛이 액운을 몰아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고 음의 기운이 강한 동짓날 귀신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붉은 동지팥죽을 쑤어 담장과 대문, 집안 곳곳에 귀신이 싫어하는 팥죽을 뿌려 귀신을 쫓아내는 풍속을 행해왔던 것이다.

22일은 작은 설 동짓날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동지팥죽을 쑤어 먹는 날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하다. 24절기의 하나인 동지가 지나고 나면 차츰 밤이 짧아지고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동짓날은 양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의 새해를 알리는 날이다. 중국의 주나라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중국의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옛 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여겨 경사스럽게 지냈다. 어린 시절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어르신들 말에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어 동지팥죽 두세 그릇씩 비웠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 들깨음식 전문점의 동지팥죽이다. ⓒ 조찬현



해마다 집에서 식구들과 모여앉아 새알심을 빚어 동지팥죽을 쑤어먹곤 했는데 올해는 식당음식으로 대신했다. 재래시장으로 갈까 했는데 그냥 가까운 곳을 택했다. 들깨음식 전문점의 동지팥죽이다.

"세팅해드릴까요?"

▲ 때깔이 유난히 고운 배추김치가 동지팥죽과 썩 잘 어울린다. ⓒ 조찬현



항아리에 담긴 배추김치, 미역초무침, 큼지막한 깍두기 한 개, 찰밥 한 공기다. 동지팥죽에 찰밥은 덤이다. 찰밥 한 공기만 먹어도 한 끼니는 때우겠다.

"동지팥죽입니다."

새알심이 둥둥 떠 있다. 동지팥죽을 끓일 때 새알심이 다 익으면 이렇듯 위로 떠오른다. 숟가락으로 몇 번을 저었더니 새알심이 이내 가라앉는다. 세상사 모든 일이 잘 해결되어 이렇듯 순조롭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 달콤하고 진한 국물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다. ⓒ 조찬현



찰밥을 한두 숟갈 떠먹어서일까, 동지팥죽의 양이 엄청 많다는 느낌이 든다. 설탕과 소금 약간으로 간을 맞추니 달콤하고 진한 국물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다. 재래시장에서의 그 풍미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름 괜찮은 편이다. 때깔이 유난히 고운 배추김치와 새콤한 미역초무침이 동지팥죽과 썩 잘 어울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지팥죽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이 좋다. 우리음식 고유의 소박한 맛이다. 찹쌀가루로 반죽한 뜨끈한 새알심은 차지고 부드럽다. 동지팥죽을 먹으며 오래전에 써놓았던 시 한 편을 다시 읊조려본다.

 동지팥죽
     - 조 찬현

새알심 하나에는
정겨움이
새알심 하나에는
고향의 푸근함이
또 다른 새알심 하나에는
포만감이 담겨있네

나이만큼 빚어낸 
새알심과 조잘조잘
세월을 지껄이다보니
동지팥죽 그릇은 어느새 텅 빈 바닥
빈 숟가락은 여전히 내손에 붙잡힌 채로

▲ 장성의 재래시장에서 맛보았던 동지팥죽이다. ⓒ 조찬현



동지팥죽에는 고향의 아련한 푸근함과 세월이 담겨있다. 이제는 지금껏 나이만큼 빚어먹었던 새알심을 헤아리기가 문득 망설여진다.

열량이 높은 팥은 겨울철 보양식으로도 아주 그만이다. 잡귀와 액을 막아주는 동지팥죽 한 그릇으로 올 한해 안 좋았던 기억들을 다 떨쳐버리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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