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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땡깡쟁이 '까꿍이'의 위기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⑤] 아이의 자아 형성과 둘째 임신

등록|2010.12.21 17:53 수정|2010.12.21 18:15
땡깡쟁이

만족한 아이이제 호불호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 정가람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는 부쩍부쩍 자랐다. 금세 일어서는가 싶더니 이내 물건을 잡은 채 걷기 시작했고, 소파와 의자만 보면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용을 썼다. 기억력도 꽤 발달했는지 한 번 넘어지거나 떨어지면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조심스러웠다. 일어섰다가 다시 앉을 때 엉거주춤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란.

그러나 아이의 그런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신체적으로 성장하는 만큼 자의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막무가내 고집쟁이가 되어 갔다. 책에서는 이를 자아형성이라고 표현했지만 말이 좋아 자아형성이지, 제 마음대로 안 되면 생떼 부리는 아이.

덕분에 아내는 '안 돼'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어김없이 사고치는 아이에게 엄마가 그때마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끄럽던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엄습하는 불안감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내 힘으로 할꺼야불만 가득한 채 분노의 숟가락질을 하는 아이 ⓒ 정가람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평소에는 방긋방긋 잘 웃다가도 한 번 수가 틀리면 정말이지 세상 떠나갈 듯이 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에는 아이가 울어도 왜 우는지 몰라 쩔쩔매기 일쑤였는데, 아이가 호불호를 표현하게 되면서 대충 왜 우는지 알고 대응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밥을 먹을 때는 두 손에 뭔가 쥐어 주어야 하고, 그래도 찡찡대면 스스로 숟가락질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래도 찡찡대면 더 이상 식탁의자에 앉기 싫다는 표현이므로 의자에서 내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돌이 지나면 그 땡깡이 더 심해진다는데 아내는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지금도 제가 좋은 것만 듣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잔소리는 못 들은 척하는데 언제 커서 부모 말을 들으려나.

부모 욕심

아이가 자라서 이제 제법 사람 구실을 하는 듯싶으니 부모로서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냥 건강하면 다행이라고 했고, 시간이 좀 흘러서는 아이가 앞, 뒤, 좌우로 골고루 누워 예쁜 뒤통수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늘어가는 인지능력을 보다보니 아이가 좀 더 많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그러면 안 된다고 누누이 들었던 바였지만 부모의 욕심을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냥 넘기는 재미에 책을 가지고 노는 것뿐인데, 부모의 눈으로는 아이가 독서를 하는 듯 보이는 착시현상. 게다가 돌을 전후로 아이의 인지능력이 가장 발달한다지 않은가. 조금 더 뭔가 보이고 싶은 욕심일 들 수밖에.

이게 바다란다넓은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부정 ⓒ 정가람



동물원에서타조를 보고 난 뒤 ⓒ 정가람



아이가 나보다 좀 더 넓게 보고 깊게 사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우리 가족을 밖으로 이끌었다. 물론 회사 일 때문에 자주는 아니었지만 주말만 되면 되도록 아이와 함께 외출하고자 했다. 아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아이를 업고 지리산 종주를 하겠노라고 공언한 나.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동네 문화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워낙 낯도 안 가리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터라 문화센터만 가면 신나라 하니, 아내에게 그 하루는 매우 중요한 날이 되었다. 정작 대학로 회의에는 못 나가도 아이의 육아교실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아내.

신난 아이바닷바람에 신이 난 아가 ⓒ 이희동



포천 아프리카 문화원에서볼 것도 많아 신나하는 아이 ⓒ 이희동



그러나 아내는 문화센터에 나가면서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계속 고민했다. 그녀의 교육철학 중 하나는 사교육을 안 시킨다는 것인데, 문화센터 역시 엄밀히 말하면 사교육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이 자연스러운데 아이가 학생이 되고 성적이 잘 안 나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사교육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처음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나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시키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부모는 부모 인생을 살고, 자식은 자식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 그러나 막상 아이가 크다 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닌 듯싶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투영되는 나의 욕심. 과연 나도 우리 부모 세대처럼 자식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대리만족의 지양이야 말로 평생 나의 숙제가 될 것이다.

둘째 산들이의 등장

점차 말은 듣지 않지만 그만큼 예쁜 짓을 하는 아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출근을 하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내 다리를 잡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엄마한테만 매달리고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가 왜 갑자기 아빠의 바지춤을 잡는 거지?

임신 테스트기를 입에 물고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땡깡쟁이 ⓒ 정가람



아내는 그러려니 했지만 난 아내의 임신을 의심했다. 어디선가 엄마가 임신을 하면 첫째들이 그때부터 아빠한테 매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설마하며 테스트기를 산 아내. 그러나 역시 임신이었다. 7월께부터 계획했던 둘째가 들어선 것이다. 아내의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여 아이를 가지려면 되도록 빨리 갖자고 서두르던 둘째.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산과 들을 마음껏 뛰어다니라고 둘째의 태명을 산들이로 결정했다.

첫째와의 터울이 17개월. 다행히 연년생은 아니었지만 그 터울이 작은 터라 임신 소식을 들은 이들마다 아내가 힘들 것이라고 걱정을 했다. 때마침 둘째가 태어나는 바로 그 시기가 첫째의 땡깡이 극에 달했을 시기인데, 둘째까지 태어나서 동생이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게 되면 첫째의 땡깡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정작 자신이 힘들 것보다는 첫째가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아내 자신이 둘째인지라 첫째 아닌 서러움을 안다며 평소에 둘째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더 애착이 갈 것 같다고 하더니만 막상 임신을 하고 엄마를 애처롭게 쳐다보는 첫째를 보고 있노라니 엄마 마음이 그게 아닌 듯했다.

케익 맛나겠다동생 임신 기념으로 아빠가 사 온 케익을 바라보는 눈길 ⓒ 이희동



한 순간에 '낙동강의 오리알',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전락하게 될 위험을 간직하게 된 우리 첫째 까꿍이. 아이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까불 까불대며 아빠 엄마한테 매달렸고, 그렇게 부모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쌓아갔다. 내년 이맘때쯤 되면 조금은 늠름한 모습으로 동생을 보고 있으려니.

어라? 그러고 보니 곧 우리 첫째, 돌이구나.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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