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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짐승이 죽어서 하얀 뼈를 남겼나?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61] 강릉시 경포대해수욕장에서 속초시 중앙시장까지

등록|2010.12.28 13:56 수정|2010.12.28 20:41

11월 20일(토)


지난 밤 영양 보충을 아주 심하게 했다. 저녁을 먹은 지 4시간도 안 돼, 다시 매운탕을 앞에 놓고 공깃밥을 비우는데, 마지막에는 식도까지 밥알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때 잠깐 소화제를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무언가 먹을 게 생겼을 때 최대한 뱃속을 채워 두는 식습관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밤 배탈은커녕 포만감 속에 잠이 들어서는 밤새 '배부른 돼지'가 돼서 나뒹구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 강릉의 자전거도로 ⓒ 성낙선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강릉의 자전거도로

▲ 소나무 숲 아래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 ⓒ 성낙선

다시 아침이다. 후배들과 작별을 하고 나서는 바로 경포대 앞을 지나가는 해안도로로 올라탄다. 이 해안도로는 얼마 안 가, 녹색 아스팔트가 깔린 자전거도로로 이어진다. 그곳에서부터 자전거도로가 바닷가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간다.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강릉은 지난 몇 년간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지금은 이곳의 자전거도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은 물론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데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게 됐다. 그럼 점들을 인정해 행정안전부는 올해 강릉을 우리나라 '10대 자전거 거점도시' 중에 하나로 지정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강릉처럼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전거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물론이고, 해안에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동해안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많은 갯바위들을 보아 왔지만, 강릉 지역에서 보게 되는 갯바위처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사천진항에서 가까운 곳에 교문암이 있다. 바위가 거대한 알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옛날 이 바위 밑에서 이무기가 용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이 현실이 되는 게 쉽지 않다. 더군다나 세상에 용꿈을 꾸는 '이무기'가 어디 한둘인가? 그런데 이 바위에는 마침내 이무기가 용이 되어 떠나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떠나면서 바위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 교문암 ⓒ 성낙선



▲ 아들바위공원. ⓒ 성낙선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 놓은 것 같은 바위들

주문진항을 지나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소돌항이 나온다. 그곳에 아들바위공원이 있다. 이곳의 갯바위들은 기암괴석에 가깝다. 아들바위, 코끼리바위, 소바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다.

'아들바위'는 '아들을 원하는 부부가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바위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고, 진짜 반죽을 짓이긴 듯 손자국이 남아 있어 꽤 신비한 느낌을 준다.

속칭 '코끼리바위'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위 표면이 마치 촛농처럼 녹아내리다 굳어진 형국이다. 아들바위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데다가, 바위 표면이 대부분 녹아서 사라진 모습이 바위라기보다는 어느 거대한 짐승이 죽어서 남긴 하얀 뼈처럼 보이기도 한다.

▲ 왼쪽이 '소바위', 오른쪽이 '코끼리바위' ⓒ 성낙선


이 바위가 왜 코끼리바위인지는 바닷가 쪽이 아닌 바위 너머 도로 쪽에서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바위가 워낙 형태가 기괴해 코끼리 모양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다. 코끼리바위와 코를 마주대고 있는 바위가 소바위다.

어려서 이곳에서 학교를 다닌 한 주민은 이 바위를 '해골바위'라고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주변 환경도 심하게 변한 탓인지, 이제는 이 바위를 해골바위라고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바위는 목포의 갓바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양은 다르지만 풍화와 해식 작용을 거친 과정은 비슷해 보인다.

▲ 아들바위공원. 아들바위 앞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 ⓒ 성낙선


천천히 쉬어 가라는 말하는 작은 절, 휴휴암

소돌항을 지나면 양양군이다. 양양은 바닷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휴휴암은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다. 이 작은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의 바위들이 꽤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다.

푸른 바다 위에 넓은 등을 드러내고 있는 너럭바위가 이곳을 찾은 나그네에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으니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바라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느긋해지는 풍경이다.

▲ 휴휴암, 너럭바위 ⓒ 성낙선


휴휴암을 지나서는 하조대 입구에서 잠시 망설인다. 안쪽으로 자동차들이 줄을 이어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관광객들로 길이 비좁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그 길을 다시 되돌아나가는 차도 있다.

하조대는 하광정리의 바닷가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를 말한다. 바닷가에 기암절벽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절벽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풍경이 절경이다. 하조대는 그 바위 절벽 위에 올라서 있는 정자의 현판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낙산사로 들어설 무렵, 하늘 한쪽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해가 지려 하고 있다. 휴휴암과 하조대에서 잔뜩 여유를 부리던 마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가능하면 오늘은 속초에서 여행을 마칠 생각이다. 양양 낙산사에서 속초 청초호까지 약 10여 km다. 아무리 늦어도 1시간 거리다. 너무 먼 거리는 아니다 싶어 여행을 강행한다.

▲ 낙산사 의상대 ⓒ 성낙선


벌써 속초, 1만리 바닷가 여행의 끝이 보인다

▲ 대포항 밤 풍경 ⓒ 성낙선

청초호에 다다르기 전에 대포항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대포항은 설악산과 가까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항구로 유명하다. 마침 주말을 맞은 저녁 시간, 대포항이 가까워지면서 도로 위로 승용차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항구로 들어서는 길 입구부터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발을 옮겨 딛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파다.

도로 위에서는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가 귀를 찌른다. 조용하고 한가한 동해 바닷가에서 목격하는 풍경치곤 다소 기이한 느낌이 드는 광경이다. 대포항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만약 주말에 대포항을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점을 미리 알고 가는 게 좋겠다.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횟감으로 지목한 생선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야구 방망이로 기절시키는 기술을 보여준다. 생선을 손님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바꿔치기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위라지만, 그렇게 품위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 나쁜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다. 가능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대포항에서 청초호까지는 금방이다. 청초호를 남쪽으로 돌아서 아바이마을로 들어선 다음 갯배를 타고 중앙시장 쪽으로 넘어간다. 어두운 밤 흐린 불빛 아래, 갯배에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척 수다스럽다. 약간 들떠 있는 목소리들이다. 나 역시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벌써(!) 속초라니, 꿈같은 일이다.

내일 드디어 이 길고도 먼 해안선 여행에 종지부를 찍는다. 속초에서 통일전망대 출입국신고소까지 아무리 길어도 하루 거리다. 그리고는 간성읍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다음, 내일모레는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앞으로 짧으면 3일, 길어도 4일 후에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0km, 총누적거리는 4672km다.

▲ 주문진항, 오징어 통구이와 도루묵 구이. ⓒ 성낙선


▲ 주문진항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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