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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인문고전을 왜 안 가르쳤을까?

[서평]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록|2010.12.24 17:34 수정|2010.12.24 17:34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인문고전이라고 하니 나의 독서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것 같아서 감히 엄두를 못내는 영역으로 굳어 있었다. 인문고전 독서법 <리딩으로 리드하라> 저자 강연회가 있음을 알고 인문고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강연을 통해서 학교에서 인문고전을 왜 안 가르쳤을까? 라는 의문은 조금 풀렸다.

▲ 이지성, 문학동네 ⓒ 문학동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고,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을 합병하고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적으로 공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 했으며, 교육내용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평민에게는 교육은 물론 문자사용도 허용하지 않던 이들 국가는 군사력과 경제력의 필요에 의해 공교육을 만들었지만, 교육내용에는 귀족들에게 실시했던 인문고전은 빠져있었다.

이들의 교육시스템은 이후에 미국과 일본의 공교육 제도로 자리잡았고, 귀족(상류층)들은 사립학교에서 여전히 인문고전을 통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구조를 유지했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본문 중에서-

일본은 식민사관(植民史觀) "일제강점기 한국의 식민통치를 합리화 하기 의해 정책적으로 조작된 역사관" 교육을 통해서 우리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열등의식을 주입하는 교육정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는 친일 지식인들과 언론이 있었고, 그들은 해방후에도 기득권층으로 남아서 학교 교과서에 존경받는 인물로 재등장한다.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후대에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근·현대사를 통해서 경험했으며 그 잔재는 아직도 우리사회에 암세포처럼 끈질기게 남아있음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 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인이 되기는 커녕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공교육의 출발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군사, 노동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면 귀족교육은 지배계층의 구조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차원에서 인문고전은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인문고전이 뭐길래? 기득권층의 필독서가 되었을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고전(古典)과 비고전(非古典). 고전은 짧게는 100-200년 이상, 길게는 1,000-2,000년 이상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천재들의 저작이다. 생각해보자. 만일 앞으로 10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매일 두 시간 이상 개인지도를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다. 아니 세계 최고의 두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략) 인문고전은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진정한 천재들이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놓은 책이다. 아인슈타인,레오나르도 다빈치,존 스튜어트 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정수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누구나 다음 세가지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등의 자본주의 최고의 승자들과 이병철,정주영 외에도 국내의 많은 재벌회장들은 인문고전을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필독서로서 공부했다고 한다. 경제와 인문고전이 관계가 있을까?

'철학 그 자체에만 매진하는 것은 경제와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철학으로 단련된 두뇌가 경제에 뛰어드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철학자의 두뇌를 가진 사람은 순식간에 경제를 지배해 버린다. 이유는 경제활동이 곧 두뇌활동이기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격은 우리나라의 경제는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IMF는 어린시절부터 인문고전을 독파한 한 천재 경제학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미국 경제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한국경제에 맞는 경제시스템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인문고전을 공부하여야 한다고 한다.

마침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 박사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위의 질문을 했다. 우 박사는 경제학자도 인문고전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 시대에 쓰여진 말들이 현재와는 거리가 있어서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필요하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이들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부분이 소개되고, 경제에 대한 부분도 많이 나온다.

'인문고전 독서법을 다루는 책에서 갑자기 자본주의니 부자니 투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반감을 가진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인문고전은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우치기 위해서 읽는것 아니냐는 반론을 펼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달콤한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중략) 인문고전 독서의 본래 목적은 당연히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세상에는 인문고전 독서에서 얻은 사고력과 통찰력을 '돈'과 관련된 쪽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는것을.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세계 경제학계와 금융계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을.'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현대 경제학의 근원이 된 고전경제학파가 탄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문고전 독서광이자 철학고전 및 경제학 고전의 저자들이다. 즉 자본주의는 인문학 전통에서 만들어졌다. 자본주의의 첨병 미국은 중·고등학교에서 인문고전 독서를 충실히 하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울때 철저하게 다시 한번 공부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문고전에 대한 공부없이 대학에서 바로 경제학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나중에 누가 세계의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며 저자는 인문고전을 등한시 하는것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책의 중후반부터는 인문고전에 대한 독서법을 본인의 경험과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인문고전 공부법 등을 들어가며 독서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역사적으로 인문고전을 중시했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교훈도 담고 있다.

저자는 인문고전 독서에서 중요한 점은 일단 저지르라고 한다. 인문고전을 한 권 선택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써보라고 한다. 이런식으로 세 권에서 다섯 권만 독파하면 일종의 감(感)이 생긴다고 한다.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치기 위한 방법으로 반복독서를 택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던지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주자는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어서 알면 나는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 읽어서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 세종은 "구소수간"을 1,100번 반복해서 읽었고 정조는 주자의 "맹자가 내안에 들어
앉게 하려면 수백 수천 번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라는 말을 독서 좌우명으로 삼고서 '맹자'를 읽었다.'

위인들의 독서법 순서는 '반복독서->필사(베껴쓰기)->사색->황홀한 기쁨->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인문고전 독서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속담이 떠오른다.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부록편 인문고전 독서 단계별 추천도서에서 한 권을 택해 첫 인문고전에 도전해보리라. 아울러 이 책을 쓰는데 18년이 걸렸다는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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