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앞에 선 MB, 벌거벗은 임금님이 따로없다
[주장] 침묵과 방관으로 과학자들도 일조... 천안함 진실규명 해 넘기나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4일 오전10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천안함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리영희 선생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로 시작된다. 선생에 의하면, 이 우화는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용기나 순수함을 칭찬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언젠가 진실은 진실대로 밝혀지고야 만다는 인간 사회의 이치를 전달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선생은 이런 것들보다는 우화를 구성하는 일련의 인과적 요인들이 엮어내는 '과정'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금에게 있지도 않는 옷을 입혀 놓고 아름답다고 아부한 그 측근배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해 있었던 것인지, 또한 옷을 걸치지 않고서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지 아니면 측근 아첨배의 것인지,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비단옷이라는 것을 팔러온 형제 상인은 어째서 그토록 맹랑한 술책이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선생은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의 속성이어야 하는지, 허위가 진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또한 어떤 것인지, 게다가 그 많은 사람 중에 임금의 알몸을 본 사람도 많았을 터인데 왜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는지 혹은 못했는지 등을 보다 더 긴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해를 넘기는 천안함의 진실, 이대로 봉인된다면?
천안함이 침몰된 지 9개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며칠 지나면 해가 바뀌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천안함에 관한 한 이명박 대통령은 옷을 입고 있는지 아니면 벌거벗은 알몸인지, 혹시 왕국의 임금님처럼 알몸이면서도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옷이 아름답다고 칭송한 측근배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 나아가 보이지도 않는 비단옷을 대통령에게 팔아먹은 형제 상인의 정체는 대관절 무엇인지...
때를 맞춰 27일 방송된 이명박 대통령의 제55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들으니 일말의 불안과 공포가 문득 엄습한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단합된 힘을 보이면, 북한은 감히 도전할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올해 가장 참기 힘들었던 일로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을 함께 거론했다. 그는 "천안함 사태 때는 안타깝게도 국론이 갈렸다"고 하면서, "우리 젊은이 수십 명이 희생됐지만, 일각에서는 이념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결과조차 부정하는 일이 있었다"고 강변했다.
이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앞에서만은 영락없이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옷을 입지 않고도 아름다운 비단옷을 걸치고 있다고 환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그의 대북발언 수준은 70년대 박정희의 것을 넘어서 한국전쟁 직전 이승만의 것으로 퇴행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알지 못한다.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대북강경발언에서 국민이 체험하는 것은 천안함 장병들이 겪은 것과 같은 '불안과 공포의 바다'일 뿐이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해군 46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말고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규명된 것이 없다. 물론 국방부 합동조사단(아래 합조단)은 지난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되었다고 공식발표한 데 이어, 9월 13일에는 천안함 최종보고서를 발간하여 기왕의 발표 내용을 확인했고 이것을 상당수 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자행된 후 합조단 발표를 믿는 국민은 급격히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합조단의 공식발표나 최종보고서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김용옥 교수는 합조단의 발표를 0.0001%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은 천안함 침몰을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을 무산 시키기 위해 미국이 조작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CIA 출신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러시아 조사단 조사를 근거로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 사고 침몰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학계에서는 서재정 존스홉킨대 교수,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 박선원 브루킹스 연구원 초빙연구원 그리고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 등이 연대하여 합조단의 발표 내용을 비판하는 활동을 주로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벌여왔다. 이들 중 물리학 회절분석이 전공인 이승헌 교수는 합조단의 발표 내용에 고의적인 조작이 개입됐다고 확신하고 있다.
"당신은 아주 용감하거나 아주 심심해"... 침묵과 방관이 무기?
▲ 이승헌 버지니아 대학 교수 ⓒ 연합뉴스
합조단이 내세운 어뢰와 관련된 증거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데이터와 결론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황당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황우석 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줄 알았는데 한국 정부와 군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열린 민주사회는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 면에서 한국 사회는 후퇴한 것 같아 슬픕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본질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려 노력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분들이니 미리 알려 드립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세 명의 국내 과학자 중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두 사람은, "윤덕용 교수(카이스트대 명예교수)는 아주 훌륭하고 덕망이 있다. 그 분이 (합조단) 단장으로 있으니 합조단의 조사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투의 답장을 보내더니, 이후 이 교수가 보내는 추가 편지에는 일절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사람의 교수는 어땠을까? 그는 몇 차례의 간략한 토론을 이 교수와 주고받던 어느 날, 이 교수에게 "(당신은) 아주 용감하거나 아주 심심한 것 같다. 나는 너무 바빠 이 문제에서 비켜 있겠다"고 말한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란 사회와 정치 문제에 대해 식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절대 다수의 국내 과학자들은 왜 천안함에 대해 침묵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외국 체류' 교수들이 학구적이고 용감하긴 하지만 그들이 외국 체류인이라는 점은 반증적으로 국내 교수들의 무능과 비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어디 과학적 양심 때문에 감옥에 간 과학자가 하나라도 있었던가?
"북미에 있는 절친한 물리학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천안함에 대해 한국의 물리학 교수들과 이야기를 했을 때 느낀 것은 상당수의 교수들이 비과학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래서 실망이 컸다는 것이에요. 합조단의 과학적 데이터에 문제가 있어도, 결정적 증거가 없어도, 의당 북한의 소행일 거라는 심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데요. 그런 심증만 가지고 설령 합조단이 잘못한 게 있더라도, 결론은 역시 북한의 공격이 아니겠느냐고 넘겨버리는 교수들을 보며 절망스러웠다고 하더군요."(이승헌 교수의 책 260쪽)
유폐된 진실과 거부된 정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되었다는 합조단의 발표를 신뢰하는 데에는 그다지 복잡한 조건이 수반되지 않는다. 사태를 분명하게 헤아리기 위해서 우리는 논점을 최소한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이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배타적 증거만 검증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논의가 가능하다.
첫째,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물인 어뢰추진체(일명 1번 어뢰)가 북한제임이 밝혀져야 한다.
둘째, 어뢰 폭발이라면 물기둥이 일어났어야 하고 그 물기둥의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
셋째, 함선에서 폭발 흡착물인 산화알루미늄이 검출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합조단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첫째, 어뢰가 'Made In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산) 혹은 북한에서 수입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둘째, 물기둥은 일어났는가? 섬광을 보았다는 병사, 눈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병사는 있다만 섬광이나 물방울이 물기둥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함선에서 검출된 흡착 물질은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으로 밝혀졌지 않은가? 그런데 수산화알루미늄은 물속에 오래 있으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 아닌가?
물론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특정인이 했다는 증거는 요구할 수 있어도 특정인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가 된다. 따라서 북한이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지 못한다고 해서 곧장 북한이 저질렀다는 추정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국도 아니고 러시아도 아니라면 북한이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실로 무책임한 그에게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전형을 본다. 또한 이런 발언을 유의미하게 보도하는 언론도 있다는 점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어느 누리꾼은 북한이 했다는 합조단의 발표를 믿느니 차라리 U.F.O가 했다는 주장을 믿겠노라고 냉소를 던지기도 했다.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대통령,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열린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우리의 언론과 지식인은 한마디로 반공 이외의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식과 사상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자세를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 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책무이자 의무이다.(전환시대의 논리, 21쪽)
지금 우리는 진실이 유폐되고 정의가 거부되는 시간 속에 몸담고 있다. 북한을 두둔하는 언론이나 지식인은 물론 북한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여지없이 '좌빨'이라는 생경하고도 익숙한 칭호가 부여된다. 미국인 판사 라네트 핸드는 "시민이 이웃을 적이나 간첩이라는 생각으로 살피도록 명령될 때 그 사회는 이미 와해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고 경고한 바 있다.
1937년 중일전쟁 때 일본 군대는 중국 난징에서 30만이 넘는 양민을 학살했다. 놀라운 것은 이를 보도한 언론이나 문제 삼은 지식인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8년 후 일본제국은 패망해 버렸다. 1950년 미국 본토를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은 반세기 후 미국의 쇠퇴와 몰락을 예언한 징조였다고 하면 지나친 억설일까?
우리는 천안함의 진실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먼 훗날 한 소년에 의해 폭로될 때까지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의 비굴과 타락이 강요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자기모독과 비인간화는 이 사회의 독소가 되어 우리의 양심과 이성을 수치스럽게 균열시킬 것이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지에 발표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에밀 졸라는 이 격문을 통해 독일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밝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은 그들의 영예로운 특권을 행사할 의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만 우리 모두가 소크라테스가 아니듯이 우리 모두가 에밀 졸라일 수는 없다. 우리는 위대한 철학자나 명성 있는 작가가 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낱 무명의 소시민일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우리에게 들려준 경구 하나 정도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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